홍콩 52년만에 사실상 계엄령 “시위대 마스크 착용 못한다”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10월 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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람 행정장관 4일 ‘긴급법’ 발동할듯… 의회 승인 없이 기본권 제한 조치
임의체포-구금-추방-통신검열 가능… 실탄 맞은 고교생 폭동혐의 기소
印尼 여기자도 고무탄에 실명 위기, 홍콩인 분노 확산… 새벽까지 시위

시위대 공격에 중국인 도박장 풍비박산 2일 홍콩 시위대가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시내의 한 마작 도박장을 파괴하고 있다. 시위대는 1일 반중 시위에서 18세 고교생이 실탄을 맞고 중상을 입은 것에 분노하고 있다. 이에 2일 밤부터 3일 새벽까지 차이나모바일 대리점 등 중국 기업과 관련 있는 상점들을 집중 공격했다. 홍콩=AP 뉴시스
시위대 공격에 중국인 도박장 풍비박산 2일 홍콩 시위대가 중국인이 운영하는 것으로 추정되는 시내의 한 마작 도박장을 파괴하고 있다. 시위대는 1일 반중 시위에서 18세 고교생이 실탄을 맞고 중상을 입은 것에 분노하고 있다. 이에 2일 밤부터 3일 새벽까지 차이나모바일 대리점 등 중국 기업과 관련 있는 상점들을 집중 공격했다. 홍콩=AP 뉴시스
홍콩 정부가 행정수반인 캐리 람 행정장관에게 비상대권을 부여하는 ‘긴급법’을 52년 만에 발동해 시위대의 ‘마스크 착용 금지법’ 시행에 나설 것으로 알려졌다. 사실상 계엄령이 발동되는 셈이다.

일간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 인터넷매체 홍콩01 등 홍콩 매체들은 3일 정부 소식통을 인용해 “람 장관이 4일 내각인 행정위원들이 참석하는 특별행정회의를 주재해 긴급법에 따른 ‘마스크 착용 금지법’을 통과시킬 것”이라고 보도했다. SCMP에 따르면 이 법은 시위 때 마스크 착용을 금지하는 내용을 담았으며 행정회의 통과 이후 곧바로 시행될 예정이다.

상당수 홍콩 시위대들은 경찰이 신분을 추적하지 못하도록 마스크, 복면, 방독면 등으로 얼굴을 가린 채 시위를 벌였다. 이들이 지하철역, 상가 등 기물을 파손하고 불을 지르는 등 폭력성을 띠면서 홍콩의 건제파(建制派) 등 친중(親中) 친정부 정당들은 시위 진압을 위한 긴급법 시행을 강하게 요구해 왔다. 이 법이 시행되면 마스크 등을 썼다는 이유만으로도 경찰이 시위대를 체포할 수 있게 된다. 대규모 시위를 주도해온 민간인권진선(陣線)은 이날 “마스크 금지는 경찰부터 하라”는 성명을 내고 강하게 반발했다.

특히 긴급법이 발동되면 홍콩 시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는 계엄령에 준하는 조치들이 람 장관의 결정에 따라 언제든 시행될 수 있다. 정식 명칭이 긴급정황규례조례(緊急情況規例條例)인 긴급법은 긴급 상황에서 공중의 이익을 위해 행정장관에게 막대한 권한을 부여해 입법회(국회) 승인 없이 법령을 시행할 수 있도록 했다. 행정장관이 임의로 체포 구금 추방 압수수색을 시행할 수 있고 최대 종신형의 처벌을 결정할 수도 있다. 홍콩 출·입경을 포함해 모든 교통·운송수단의 통제, 출판 통신에 대한 검열과 금지도 가능하다. 이 법은 영국 식민지 시절인 1922년에 만들어진 뒤 현재까지 97년 동안 1967년에 딱 한 번 발동됐다. 한 소식통은 홍콩01에 “긴급법이 발동되면 정부는 사태 악화에 따라 언제든 시위를 진압할 더 많은 제한 조치들을 시행할 것”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건국 70주년인 1일 홍콩 시위 때 경찰이 쏜 실탄에 맞아 18세 고등학생이 중상을 입은 데 분노한 시위대는 2일 밤부터 3일 새벽까지 홍콩 도심 곳곳에서 중국 기업과 관련된 가게를 집중적으로 공격했다. 홍콩 시위대는 고교생 쩡즈젠(曾志建)이 가슴에 총을 맞은 췬완 지역에 있는 중국의 대표적 은행인 ‘중국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파괴했다. 중국 이동통신사인 차이나모바일 대리점 시설과 기물도 훼손했다. 이 지역에 중국인이 소유한 마작 도박장 내부 시설도 파괴했다.

이런 가운데 홍콩 당국은 쩡즈젠을 폭동 등 혐의로 기소해 시민들의 반발이 더 거세질 것으로 보인다. SCMP에 따르면 홍콩 경찰은 쩡즈젠을 포함해 1일 시위해 참여했던 남성 7명을 폭동과 방화 등 혐의로 기소했다.

또 지난달 29일 완차이 지역에서 시위를 취재하던 ‘수아라 홍콩 뉴스’ 소속 인도네시아인 베비 인다 기자(39·여)가 홍콩 경찰이 발사한 고무탄에 맞아 오른쪽 눈을 영구 실명할 처지에 놓인 것으로 2일 전해졌다. 1일 시위 때 경찰은 쩡즈젠에게 쏜 1발과 5발의 경고사격 등 6발의 실탄을 발사한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경고사격 5발이 시위대를 겨냥한 것으로 밝혀지면서 시위대를 자극했다.

베이징=윤완준 특파원 zeitung@donga.com
#홍콩 정부#계엄령#시위대 마스크#반중시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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