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총력전에도 ‘한일 중재계획 없다’는 미국

  • 동아일보
  • 입력 2019년 7월 12일 21시 56분


코멘트
한일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는 가운데 해리 해리스 주한 미국대사와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동아시아태평양 담당 차관보가 12일 잇따라 미국의 중재에 대한 부정적인 의견을 밝혔다. 앞서 11일(현지 시간) 미 국무부가 “한·미·일 관계강화를 위해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겠다”는 원칙적 입장을 밝혔지만 실제 중재 및 개입 여부에 대해서는 선을 그은 셈이다.

해리스 미국 대사는 12일 국회에서 윤상현 국회 외교통일위원장을 만나 “아직까지는 한일 양국이 이 문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으로 본다”며 미국이 당장 한일 갈등 중재에 나서지는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해리스 대사는 “일단 양 당사국이 직접 해결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며 “미국은 당사국간 문제 해결에 실패하고 여러 방법이 무산됐을 때 움직일 수 있지 지금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또 “한국과 일본은 성숙한 국가들”이라며 “양국간 정부, 기업, 의회 차원에서도 성숙한 관계를 갖고 있기 때문에 아직 문제 해결 능력이 있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미국의 이 같은 입장은 핵심 동맹국인 한국과 일본이 각각 외교채널로 협조를 요청하고 있는 상황에서 섣불리 중재에 나서기 어렵다는 뜻을 밝힌 것으로 풀이된다. 다만 해리스 대사는 미국의 개입 시점에 대해 “미국 기업이나 안보에 영향을 줄 때”라고 언급해 일본의 반도체 수출 규제 장기화로 미국의 경제피해가 발생하거나 한미일 3국 공조가 돌이킬 수 없이 훼손될 조짐이 나타나면 미국이 개입하게 될 것이라는 뜻을 내비쳤다.

11일부터 일본을 방문 중인 데이비드 스틸웰 미 국무부 차관보 역시 이날 NHK인터뷰에서 “중재 계획이 없다”고 밝혔다. 스틸웰 차관보는 “(한일) 양국 관계에 긴장이 생기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미국으로선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강력한 동맹관계에 균열이 생기지 않도록 할 필요가 있다”면서도 “나는 (양측을) 중개할 계획은 없다”고 밝혔다.

두 사람의 이번 발언은 한일 갈등에 미국이 중재에 나설 것이라는 일각의 기대와 상반된다. 워싱턴을 방문 중인 김현종 청와대 국가안보실 2차장은 11일(현지 시간) 기자들과 만나 스틸웰 차관보의 일본 등 아시아 순방 일정을 언급하며 “미국 측 고위급 관료가 아시아 쪽으로 출장을 가니까 이 기회에 3개국 고위급 관리들이 모여서 회담을 하려 한다”고 했다. 그는 “한국과 미국은 매우 적극적인데 일본 측에서 아직 답이 없고 좀 소극적”이라고 덧붙였다.

이날 모건 오테이거스 미 국무부 대변인도 정례브리핑을 통해 “일본과 한국은 친구들일 뿐 아니라 동맹들”이라며 “미국과 국무부는 3국의 양자 간, 3자 간 관계를 강화하는 방안을 추구하기 위해 모든 것을 공개적으로나 막후해서 해갈 것”이라고 밝혔다.

이에 대해 국무부가 원칙적 차원에서 한일 관계 개선 필요성을 밝힌 것과 별개로 한일 간 통상 분쟁에 대해서는 자체적으로 해결하는 게 우선이라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실제로 한일 관계 실무를 다루는 국무부 당국자들 사이에서는 “미국의 중재에 앞서 한국과 일본이 스스로 풀어야 될 문제”라는 지적이 나왔다. 11일 워싱턴에서 윤강현 외교부 경제외교조정관과 마크 내퍼 국무부 부차관보의 면담에 참석했던 한 국무부 관계자는 “한국이 공식 중재 요청을 하는 대신 ‘미국이 일본의 수출 규제를 중단시켜 달라’는 취지의 메시지로 이해했다”며 “미국이 현 시점에서 할 수 있는 것은 없고, 중재에 나서지도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미국을 설득하려는 정부 인사들의 총력전은 계속되고 있다. 김 차장은 이날 의회에서 코리 가드너 상원 외교위 동아태 소위원장과 스티브 데인스 상원의원, 테드 요호 하원의원 등과 연쇄 면담을 진행했고, 로버트 라이트하이저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 등 통상 분야 인사들은 물론 싱크탱크 관계자들 및 워싱턴포스트를 비롯한 현지 주요언론사 편집국장들까지 만나 일본 조치의 부당함을 설명하며 여론전을 펼쳤다. 그는 이어 11일에는 백악관 국가안보회의(NSC) 부보좌관을 만난다.

워싱턴=이정은특파원 lightee@donga.com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