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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08년 11월 7일 02시 58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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몸보신, 장수 열망 등 자기 향상 노력만이 본성인 줄 알았던 참삶의 이면에 도사린 자기 파괴성은 분명 생명의 모순이다.
기후변화의 ‘주범’ 탄소도 생명의 모순을 닮았다. 인체 주성분이 탄소이고 뭇 여성이 선망하는 다이아몬드 또한 탄소 덩어리다. 소망가치의 극치인 한편으로 사람들이 문명생활을 영위한다며 과다 배출한 이산화탄소는 온실가스로 모여 이상기후를 유발한다. ‘탄소 중립’ 또는 ‘탄소 저감’ 정책이 지구적 화두가 되는 사이, 탄소가 어느새 이산화탄소를 가리키는 말로 전락했다.
우리가 대기오염의 심각성을 안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절대 가난의 시절, 시골 아이들은 비포장도로 위로 덜컹거리는 자동차가 내뿜는 잿빛 매연 사이의 휘발유 냄새를 굶주린 사람이 빵 냄새 맡듯 뒤따랐다.
1960년대 초 산업근대화의 요람 울산의 중화학공장 굴뚝을 올려다보고 ‘저 번영의 연기를 보라!’며 당시 언론은 감격했다.
그 감격에 함께 젖은 나머지 공장, 발전소, 자동차 매연에 함유된 대기오염이 산성비를 오게 한다는 경고엔 퍽 무심했다. 환경주의의 세계적 선각들도 대기오염 특히 이산화탄소가 산성비 폐해 이상의 기상 이변 주범임을 1980년대에 들어서야 확인한다. 지구온난화의 심각성은 20세기 환경주의 확산의 전설인 미국 해양생물학자 레이철 카슨도 눈치 못 챘다 하지 않는가.
기후변화는 우리 발등에 떨어진 불이다. 1990년대의 집중호우 빈도는 이전 10년보다 1.5배나 증가한 325회에 이르렀다. 2002년 8월 태풍 루사 때는 강우량이 무려 하루 870.5mm를 기록했다. 일 강우량 100mm 이상의 비가 집중호우인데 그 여덟 배나 됐다. 봄과 가을 평균기온도 크게 높아져 한반도는 이제 사계절의 땅이 아니다. 겨울이 있는 아열대 지방이란 말이 적절하다. 이 때문에 말라리아 환자가 1994년 5명에서 2007년에는 무려 2227명으로 폭증했다.
지구온난화의 폐해가 뚜렷해지면서 등장한 대처방법도 갖가지다. 위성거울을 쏘아 올려 지구로 들어오는 태양열을 반사시키거나 바다에다 철분을 뿌려 이산화탄소 흡수율을 높이자는 방안까지 제시된다. 과학소설처럼 무척 기발하긴 해도, 하나같이 대증(對症)요법이다.
역시 윗길은 원인요법이다. 그래서 이산화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는 원천적 노력을 누구보다 시민 개개인에게 기대한다. 유감스럽게도 자신의 행동이 생색이 나지 않으면 동참할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게 사람 이기심이다. 기업은 급하게 됐다. 이를테면 2012년부터 이산화탄소 배출 한도를 규제한다는 유럽연합(EU)에다 자동차를 수출하려면 관련 업체가 서둘러야 한다.
과거를 살피면 미래가 보인다고 했다. 우리 현대사가 기록한 산림녹화가 정부 주도의 성공작이라면, 탄소 중립의 성공적 추진은 기업 몫이지 싶다. 민둥산을 푸른 산으로 탈바꿈시켜 세계를 놀라게 한 전철이 다시 탄소 중립의 녹색혁명에서 되풀이하리라 믿고 진력할 수밖에.
김형국 국가지속가능발전 위원회 위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