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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언론중재법도 ‘위헌 운명’ 따라갈 텐가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1-08-11 14:00수정 2021-08-23 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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꼭 15년 전 동아·조선이 동시에 청와대 취재 거부를 당한 적이 있다. 2006년 7월 28일 동아일보에 ‘세금 내기 아까운 약탈정부’ 칼럼이, 조선일보 1면엔 ‘계륵 대통령’이라는 홍준호 선임기자(현 대표이사 부사장)의 분석기사가 실린 날이었다.

청와대홍보수석은 이날 공개 브리핑에서 “조선일보는 국가 원수를 먹는 음식에 비유했고 동아일보는 대한민국을 약탈정부로 명명했다”며 “인내의 한계를 넘어서는 수준”이라고 격렬히 비난했다.

당연히 두 신문은 가만있지 않았다. 다음 날 동아일보는 1면과 4면에 비판기사를 내보냈고, 7월 31일자엔 ‘국민의 알권리 빼앗는 청와대의 취재 거부’라는 사설로 “청와대는 즉각 위헌적인 취재 거부를 취소하라”고 촉구했다. 조선도 해외 사례까지 들어 대응한 건 물론이다.

2006년 7월 29일 1면과 31일 사설


주요기사
● 문 정권과 비교하면 참여정부는 양반
…그 약탈정부 칼럼을 쓴 사람이 바로 이 몸이다. 논설위원실에 입성한 지 4년 차, 그때만 해도 젊었던 나는 ‘나 때문에 회사가 해코지당하면 어쩌지…’ 걱정했지만 선배들은 은근히 즐거워하는 분위기였다(청와대 출입기자는 한 달이나 고생을 했다. 미안하다).

2006년 7월 28일 김순덕칼럼


돌이켜보면 노무현 정부는 그래도 양반이었다. 문재인 정부는 ‘허위·조작보도’를 언론중재법에 규정하고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을 부과하는 개정안을 이달 중 강행 처리할 태세다.

이 법안 2조는 허위·조작보도를 이렇게 정의한다. “허위의 사실 또는 사실로 오인하도록 조작한 정보를 언론, 인터넷뉴스서비스, 인터넷멀티미디어방송을 통해 보도하거나 매개하는 행위를 말한다.” 현 정부를 약탈정부라고 하거나 대통령을 감히 먹는 음식에 비유할 경우, 허위·조작보도로 정신적 고통을 주었다며 3배 이상 5배 이하 손해배상을 청구당할 수도 있다는 얘기다.

● 한국 언론의 문제가 가짜뉴스라고?
더불어민주당이 이 개정안을 들고 나온 이유가 한국언론진흥재단의 ‘2020 언론수용자 조사’다. 한국 언론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네 명 중 한 명이 허위·조작정보(가짜뉴스)를 꼽았다는 거다(둘째 문제는 편파적 기사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순하게 받아들이기 쉽지 않다. 수용자들은 지난 일주일 동안 뉴스를 주로 TV(54.8%) 인터넷포털(36.4%) 온라인동영상플랫폼(2.8%)으로 봤지 동아일보 같은 종이신문(1.7%)이나 인터넷 뉴스 사이트에 직접 접속(1.3%)하는 수용자는 많지 않다(이 훌륭한 독자들은 가짜뉴스가 문제라고 답하지 않았을 거라고 본다).

자유언론을 위한 학자·전문가단체인 미디어연대는 2019년 토론회에서 “지상파방송이 민주노총 산하의 본부로 작동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노조의 정파성 때문에 당연히 가짜뉴스, 이념 성향의 편파보도가 판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같은 해 선문대 황근 교수도 문 정권 방송정책의 핵심을 ‘공공채널의 정치선전도구화’로, 신문정책은 ‘정부광고에 의한 친여신문사 지원’으로 꼽았다.

● 근대에 이르기까지 언론 자유는 없었다
노조가 장악한 공영방송·정부·지자체 소유 방송사, 그래서 판치는 가짜뉴스. 그런데 문 정권은 뉴스 보는 사람들이 가짜뉴스를 문제로 꼽는다며 위헌적 언론중재법 개정안을 밀어붙인단다. 노무현 정부 당시 강금실 법무부 장관 표현을 빌자면, 호호호 코미디야 코미디다.

8월 2일 허성권 KBS노동조합 위원장이 국회 앞에서 더불어민주당이 강행 처리한 언론보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반대하는 1인 시위를 하고 있다. 안철민 기자 acm08@donga.com


그럼 가짜뉴스를 그냥 두란 말이냐? 라고 성내는 분들이 냅다 댓글을 달기 전에 잠깐. 우리가 언론 자유를 중시하는 이유는 언론(인)이 잘나서가 아니다.

인류 역사를 통틀어보면 너무나 오랜 시간 우리는, 하고 싶은 말을 마음대로 못 하고 살았다. 표현의 자유는 물론 사상의 자유도 근대에 이르기까지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갈릴레오갈릴레이가 종교재판을 받은 뒤 “그래도 지구는 돈다”는 혼잣말을 했다는 ‘전설’이 있을 정도다. 오죽하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또는 신화)가 나라마다 존재하겠나.

● 어떻게 얻은 언론 자유, 표현의 자유인데
자유를 지향하는 인류 역사 발전에 따라, 민주주의 체제가 나타남에 따라 표현의 자유는 헌법상의 기본권으로 보장되기 시작했다(박용상 ‘언론의 자유’). 문 대통령도 2019년 신문의 날 축사에서 “영국 명예혁명에서 인류는 처음으로 언론의 자유를 쟁취했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는 1987년 6·29선언 이후 비로소 언론의 자유가 신장된 나라로 인정받기 시작했다. 민주화운동을 했다는 문 정권, 그 문 정권이 강행하는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헌법 제21조에 보장된 언론·출판의 자유를 심각하게 침해하고, 국민의 알 권리를 제약할 소지가 크다.

더불어민주당 윤호중 원내대표가 “‘논두렁 시계’ 같은 가짜뉴스, 수사정보를 흘리는 검찰의 인권침해와 그것을 받아쓰기하던 언론의 횡포에 당하셔야 했던 것이 노무현 대통령”이라고 천기누설함으로써, 문 정권은 고인의 비극을 검찰‘개혁’에 이어 언론‘개악’에 이용할 모양이다. 다름 아닌 집권세력의 비호를 위하여.

● 종합청사 앞 거대한 신문사가 그리 무섭나
문 정권의 ‘노무현 따라하기’가 한둘이 아니지만 검찰 장악에 이은 언론 장악 역시 판박이가 될 공산이 크다. 고 노무현 대통령은 살아생전 주요 신문에 대한 적대감을 노골적으로 내보이곤 했다.

“행정수도 반대 여론을 앞장서서 주도해가고 있는 기관들이 서울 한복판 종합청사 딱 앞에 거대한 빌딩 가지고 있는 신문사.”(2004년 7월 8일)

“삐뚤어진 것을 바로잡는 개혁은 이제 거의 마감질 단계다. 딱 남아있는 데가 정부 바깥에서는 언론 한 군데가 남아있고 정부 안에서는 검찰이 남아있다”(2007년 3월 13일 청와대 업무보고회의)고 했다.

단언컨대 집권세력이 언론중재법 개정안 국회 본회의 처리를 끝내 강행할 경우, 2006년 6월 29일 노무현 정부가 밀어붙였던 신문악법처럼 헌법재판소에서 위헌 판결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2006년 6월 30일 동아일보 1면


● 2006년 노무현 언론악법 위헌 판결
6·29선언으로부터 꼭 19년이 되는 2006년 6월 29일 헌법재판소 전원재판부는 핵심 쟁점이던 ‘시장지배적 사업자 지정’ 조항과 시장지배적 사업자가 되면 신문발전기금을 지원하지 않는다는 신문법 조항에 대해 각각 재판관 7 대 2와 전원 일치로 위헌 판정을 내렸다.

동아일보는 2005년 3월 신문법 위헌 여부를 가려달라고 헌재에 헌법소원 심판을 청구했었다. 더불어민주당 전신(前身)인 열린우리당은 1개 신문의 시장점유율이 전국 발행부수 기준 30% 이상, 3개 이하 신문의 시장 점유율이 60% 이상일 때 시장지배적 사업자로 추정해 불이익을 주는 법을 만들었고, 2004년의 마지막 날 야당과 야합해 통과시켜 버렸다.

헌재는 “다른 일반 사업자와 비교해 합리적 이유 없이 신문사업자를 차별하는 것이어서 헌법에 위배된다”고 위헌 결정의 이유를 밝혔다.

민주당이 만든 언론중재법 개정안 역시 합리적 이유 없이 언론사를 차별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징벌적 손해배상이 규정된 다른 법률은 손해액이 최대 3배의 배상책임밖에 부과할 수 없는 반면, 언론중재법 개정안은 최대 5배다. 위헌적 운명이 빤히 보이지 않는가.

● 사람만이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 외칠 수 있다
다시 한 번 강조하지만, 꼭 언론이 아니더라도 표현의 자유는 존중돼야 한다고 믿는다(댓글의 자유도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의 월급에는 악플을 감수하는 값도 포함돼 있으므로). 우리 헌법은 모든 국민에게 언론·출판의 자유를 보장하면서도 ‘언론·출판은 타인의 명예나 권리 또는 공중도덕이나 사회윤리를 침해해서는 아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타인의 명예를 침해한 경우 피해배상을 청구할 수 있다고도 했다.

그러나 공직자의 경우는 다르다. 2011년 대법원은 광우병을 다룬 MBC PD수첩의 다우너소, 아레사 빈슨, MM형 유전자 보도가 허위라고 판단하면서도 쇠고기 수입 협상을 한 공직자 명예훼손 혐의에 대해 무죄를 확정했다.

MBC PD수첩이 2008년 미국산 쇠고기와 광우병의 위험성에 대한 방송을 하면서 사용한 ‘주저앉는 소(다우너 소)’ 장면 캡처. 이 영상은 광우병과 관계가 없는 동물학대 고발 영상으로 드러났다.


“공무원의 명예는 공무원이 일한 결과에 대해 국민이 인정해주고 칭찬해줄 때에만 외부로부터 일시적으로 주어지는 것이지… 공무원에게는 애당초 본인이 나서서 보호하고 지켜야 할 명예라는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볼 수도 있다.” 이승선 충남대 교수가 ‘표현자유 확장의 판결’에서 소개한 판결문 일부다(서울남부지방법원이 2010년 2월 16일 선고한 2008가단96240판결). 공직자 방마다 액자로 걸어놓고 외워야 할 명구가 아닐 수 없다.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는 전래동화는 괜히 나오지 않았다. 권력자가 감추려는 진실을 말하지 못하면, 구덩이라도 파고 외쳐야만 살 수 있는 것이 사람이다. 문 정권의 언론중재법은 그걸 못 하게 겁박하는 법이다. 사람이 먼저라던 문 정권. 대체 무엇이 그리 무서워 사람의 입을 막으려 드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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