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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순덕의 도발]의회독재, 보이콧으론 못 막는다

김순덕 대기자 입력 2020-07-01 14:10수정 2020-07-01 15: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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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이 바뀐 걸 미래통합당만 모르는 모양이다. 4월 총선에서 참패는 했지만 웰빙당으로 살기엔 야당도 나쁘지 않다고 믿은 것 같다. 그래서 야당이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는 게 관행이라며 원 구성 협상에 임했을 것이다.

대통령이 비정규직 제로를 선언하면, 밀어붙이는 게 문재인 정부다. 취업준비생들이 반발하든 말든 상관없다. 대통령 취임 약속 30가지 중 지킨 건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나라’를 만든 것 하나라는 말이 있지만, 이 정부는 비정규직 해결 약속도 지켰다고 믿는 게 분명하다. 한다면 하는 정부가 ‘범여권 180석’이라는 보검(寶劍)까지 확보했다! 원하는 건 뭐든 법적으로 마무리할 수 있는 신천지가 도래한 거다.

“절대 과반 정당인 더불어민주당이 상임위원장 모두를 맡는 게 국회 운영의 기본 원칙”이라고 민주당 윤호중 사무총장은 4월 말 선언했다. 그때라도 통합당은 알아차렸어야 했다. 집권당이 법사위를 포함해 진짜 상임위 전체를 차지해버릴 수 있다는 것을.


지난 6월 30일 열린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전체회의 모습. 전날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독식’에 반발해 국회 일정 보이콧을 선언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의 자리가 비어 있다. 동아일보 D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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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두환 시절 뺨치는 집권여당 독주

2004년 노무현 정부 때부터 야당이 법사위원장을 맡는 아름다운 관행이 이어졌다고 해봤자 입만 아플 뿐이다. 여야가 2년씩 나눠 맡자는 통합당 제안에 민주당은 “대선 승리한 당이 맡자”고 약을 올렸다고 한다.

그러곤 6월 29일 정보위원장을 빼고 상임위원장 17개 전체를 독식함으로써 민주당은 전두환·노태우 시절 12대 국회(1985~1988년)로 끝난 독재의 유물을 이어받았다. 그 시절 민주화를 외쳤다는 자칭 ‘3기 민주정부’로서 역사의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통합당은 국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과거처럼 여당이 돌아와 주십사 애걸복걸할 줄 알았다면 이제라도 꿈 깨시라. 민주당은 눈 하나 깜짝 하지 않고 하루 만에 35조 원 규모의 3차 추경안 상임위 심사를 끝냈다. 국민의 대표답게 깐깐히 살피기는커녕 정부 제출안보다 3조 원이나 늘린 금액이다. 통합당의 자존심 때문에 벌써 국민이 피해를 본 것이다.

●공수처 출범시켜 윤석열 날리겠다?

추경안뿐 아니다. 여당은 곧바로 7월 임시국회를 소집해 대북전단 살포금지법, 5·18특별법 등을 처리하겠다고 밝혔다. 북한 김여정이 하명하고, 표현의 자유가 위협받는 주요 법안들도 단독 처리를 불사할 태세다.

법사위 여당 간사인 백혜련 의원도 “통합당이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 출범 날짜(15일)를 어기고 협조하지 않는다면 법 개정을 통해서라도 출범시키겠다”고 했다. 총선 직후 대통령이 여야 원내대표를 초청해 공수처 7월 출범을 언급 한 대로, 야당이 반대하든 말든 여당은 대통령 숙원사업을 국회에서 완성해 바치겠다는 얘기다.

집권세력이 공수처 출범을 서두르는 것을 보면 ‘윤석열 검찰’이 밝혀내선 안 될 정권 차원의 비리가 따로 있는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돈다. 울산시장 선거 개입이나 유재수 전 금융위 국장 감사 무마, 우리들병원 특혜 대출 의혹 등 지금까지 알려진 의혹을 능가하는 뭔가가 있기에 7월 15일 공수처 개문과 동시에 윤석열을 무장해제시키려 한다는 거다.

전원 상임위원 사임계 제출한 미래통합당 의원들이 6월 29일 국회 로텐더홀 계단에서 더불어민주당의 상임위원장 단독 선출에 반발하며 검은색 마스크를 쓰고 규탄대회를 진행하고 있다. 동아일보 DB


●웰빙야당이 거대여당 막을 수 있나

국민이 민주당에 177석을 안겨준 이상 통합당이 거대여당의 독주를 막을 방법은, 애통하지만 없다. 총선을 통과한 통합당 의원 중 9명이 이미 국회선진화법 위반으로 기소돼 있다. 500만 원 이상 벌금형을 맞으면 의원직을 잃을 처지라 몸으로 여당을 막는 건 언감생심이다. 4명만 의원직을 잃어도 개헌 저지선이 붕괴될 판이다.

통합당은 공수처가 삼권분립을 위반한다며 두 달 전 헌법재판소에 헌법 소원을 청구하긴 했다. 통합당 의원 103명 전체를 상임위에 강제 배정한 국회의장에 대해서도 헌재에 권한쟁의심판 청구를 할 ‘예정’이란다. 세상 바뀐 줄 모르는 봉창 두드리는 소리다. 헌재 재판관 9명 중 8명을 문 대통령이 임명했다. 헌재가 문제없다고 결론 내리면 그때 가서 통합당은 어쩔 셈인가. 아니 그때까지는 뭘 할 작정인가.

이제 와서 소속 의원들한테 희망 상임위를 써내라고 했다는 것도 자다가 봉창 두드리는 일이다. 총선에서 패한 지 두 달이 다 되는 동안 뭐하고 있었는가. 삭발이나 단식, 장외투쟁을 해봤자 구태 소리 들을 뿐임을 아는 게 다행이다. 안타깝게도 요즘 독재정권은 야당 보이콧에 콧방귀도 뀌지 않는다.



●보이콧은 독재에 주단을 깔아줄 뿐

베네수엘라 얘기는 하기도 싫지만, 극심한 경제난에도 2018년 니콜라스 마두로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이유를 아는가. 우파 야권연합이 부정선거가 의심된다며 대선을 보이콧했기 때문이다. 2015년 총선에서 야권연합이 다수를 차지하자 따로 제헌의회까지 설치한 마두로였다. 야권은 선거를 보이콧할 게 아니라 대선 단일후보를 내세워야 했다(물론 그게 안 돼 지금 그 모양이지만).

포퓰리즘에서 출발한 신(新) 독재정권이 쿠데타 대신 법으로 국가를 장악하면, 야당은 보이콧 빼곤 할 일이 없는 것도 사실이다. 프리덤하우스는 ‘전환기의 국가들 2020’보고서에서 “알바니아, 불가리아, 조지아, 몬테니그로, 세르비아 야당들이 입법 과정을 보이콧함으로써 의회의 정당성에 문제를 제기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보이콧은 단기적 정치적 자산을 안겨줄 수 있어도 결국 의회와 정당의 신뢰성을 떨어뜨린다는 게 영국 ‘민주주의를 위한 웨스트민스터재단’의 지난해 연구 결과다.

남의 나라를 봐도, 야당의 국회 보이콧은 바보짓이다. 민주당 독주가 오만하고 위험해도 “일하지 않는 국회의원과 정당은 도태시키는 제도를 만들겠다”는 데는 박수칠 국민이 적지 않다. 그래서 포퓰리즘 정권이 세계적으로 잘 나가는 거다(아직까지는). 통합당은 7월 임시국회 개최 상황을 보고 복귀 시점을 검토할 게 아니라 이제라도 밥값 할 길을 찾아야 한다.

● 당장이라도 국정 운영할 수 있나

2006년 소수야당 민주당(지금의 민주당과는 다른 당이다) 조순형 의원은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지명의 위헌 소지를 밝혀내 낙마시킨 바 있다. 노무현 대통령이 사법시험 동기 전효숙을 6년 헌재소장 시키려고 헌재 재판관에서 사퇴시킨 것이 ‘헌재 재판관 중에서 헌재소장을 임명’하도록 한 헌법규정 위반이라고 악 소리 나게 지적한 것이다. 실력과 의지만 있다면 소수야당이라고 무력한 것만은 아니라는 얘기다.

민주당의 ‘의회 독재’가 불길한 건 분명하지만 미국도 여당이 상임위원장을 독식한다. 상임위원장 전부 뺏겼다고 슬픈 척 할 때가 아니라는 소리다. 박병석 국회의장의 공수처장 후보 선임 요청에 통합당이 “공수처 독소조항까지 묶어 논의하자”며 뻗댈 만큼 한가한 때도 아니다. 차라리 야당의 공수처장 거부권을 활용하는 게 현명할 수도 있다. 이 절박한 상황에 우리에게는 비상한 야당이 필요한 것이다.

야당 상임위원이라도 여당 위원장 꼼짝 못하는 역량을 발휘한다면, 국민은 반드시 알아본다. 무능한 정부의 부동산정책을 비판만 할 게 아니라 통합당에서 똑 소리 나는 대안을 내놓으라는 얘기다. 진중권 한 사람이 열 야당 노릇을 하는 현실이다. 당장 정권이 바뀔 수도 있다고 상상해 보라(탄핵당한 전임 대통령 때처럼). 문재인 정부보다 더 잘 할 수 있는 통합당의 모습을 지금, 국회에서 왜 못 보여주는가.

김순덕 대기자 doba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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