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나무호 때린 탄두, 이란제와 유사”… 이란대사는 공격 부인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5월 28일 04시 30분


“나무호서 발견된 비행체 잔해
이란 누르 미사일과 같은 하늘색”
피격 23일만에 이란 소행 결론
초치된 이란대사 “개입 안해” 주장

외교부 청사 떠나는 이란대사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 HMM 화물선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초치돼 항의를 들은 후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정부는 이날 ‘나무호’ 피격 정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무호’를 공격한 주체로 이란을 사실상 지목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외교부 청사 떠나는 이란대사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가 27일 서울 종로구 외교부 청사에서 한국 HMM 화물선 ‘나무호’ 피격과 관련해 초치돼 항의를 들은 후 청사를 빠져나가고 있다. 정부는 이날 ‘나무호’ 피격 정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호르무즈 해협에서 ‘나무호’를 공격한 주체로 이란을 사실상 지목했다. 변영욱 기자 cut@donga.com
“여러 증거가 이란 쪽을 향하고 있다.”

박윤주 외교부 1차관은 27일 한국 HMM 화물선 ‘나무호’ 피격 사건에 대한 정밀 조사 결과를 발표하며 이같이 말했다. 미국과 이란 간 전쟁으로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나무호 피격 사건이 발생한 지 23일 만에 사실상 이란 소행으로 결론을 내린 것이다. 박 차관은 “(이란에)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다만 정부는 이란이 고의로 한국 선박을 공격했는지에 대해선 “확정하기 어렵다”고 신중한 태도를 보였다. 호르무즈 해협에 발이 묶인 한국 선박 25척의 통항 협상을 염두에 둔 행보로 풀이된다.

● 나무호 피격 23일 만에 “이란 미사일”

정부 합동조사단이 나무호를 타격한 미상 비행체를 이란 미사일로 결론 내린 데는 사고 현장에서 수거된 잔해들이 ‘스모킹건’(명백한 증거) 역할을 했다. 정부는 이달 4일 나무호가 피격된 뒤 현장 조사단을 보내 외부 공격에 의한 폭발이라고 결론을 낸 뒤 비행체 잔해를 국내로 들여와 국방과학연구소(ADD) 등에서 정밀 분석 작업을 진행해 왔다.

박 차관은 이날 브리핑에서 “나무호는 총 2번의 미상 비행체의 공격을 받았으며 첫 번째 탄두는 불폭(폭발하지 않음), 두 번째 탄두는 기폭(폭발)됐다”며 “탄두의 경우 형태가 다소 온전한 상태인 불발탄으로 추정되었으며, 이란 대함미사일 누르 탄두 형상과 유사했다”고 밝혔다. 이어 “(비행체) 기체의 경우 잔해물이 하늘색으로 도색돼 있는데 이란산 대함미사일 누르 계열의 도장 및 색상과 같다”며 “전자기판 잔해물은 약 20∼30년 전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며 생산 연도 고려 시 구형인 누르 미사일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누르 대함 순항미사일은 호르무즈 해협에 대한 통제권을 가진 이란 혁명수비대가 주로 사용하는 기종으로 중국의 C-802 대함미사일을 이란이 역설계해 개발한 모델이다. 이란 혁명수비대는 트럭형의 이동식발사대(TEL)를 호르무즈 해협의 해안가 동굴 등에 숨겨놓은 뒤, 이를 기습 전개해 발사하는 방식으로 해안을 방어하거나 고속정에 탑재해 주력 대함미사일로 활용하고 있다.

조사에선 미사일이 어디서 발사됐는지는 파악하지 못했다. 다만 국방부는 나무호가 이란 본토와 90∼100km 떨어진 곳에 정박하고 있었음을 고려할 때 미사일이 6∼7분가량 날아왔을 것으로 추정했다.

류윤상 국방부 국제정책차장(해군 준장)은 공격 주체에 대해 “이란에서 생산한 미사일은 주로 이란 해군과 혁명수비대, 친이란 세력에서 쓰이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공격 주체 의도를 알 수는 없지만 실제 지휘관을 해본 입장에서 보면 두 발을 쐈다는 것은 피해를 주겠다는 의도를 가지고 쏜 것으로 판단된다”고 덧붙였다.

박 차관도 “고의성은 주관적이고 주체가 인정하지 않는 한 입증하기 어렵다”면서도 “선박의 위치정보는 기본적으로 공개 정보”라고 말했다. 한국 선박임을 알고도 공격했을 가능성을 배제하지 않은 것이다.

● 이란은 전면 부인… 정부 “절제되고 종합적 대응”

박 차관은 후속 조치에 대해선 “(이란에) 우리 선박 피격에 대한 강력한 항의의 뜻을 전달할 것”이라며 “(이란에) 재발 방지를 포함한 책임 있는 조치를 요구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앞서 정부 고위 당국자는 나무호 공격 주체가 최종 확인될 경우 “응분의 외교적 공세를 가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이날 브리핑 직후 외교부 청사로 초치(招致)된 사이드 쿠제치 주한 이란대사는 취재진에게 “이란에서는 이 문제에 대해 다 부인한다”며 “절대 개입한 게 없다”고 주장했다. 특히 ‘한국 정부의 조사 결과를 인정하는지’, ‘이란 정부가 사과할 것인지’에 대한 질문엔 “적대국들의 ‘가짜 깃발’ 작전을 주의해야 한다”고 했다. 가짜 깃발 작전은 공격 주체가 자신의 공격을 적대국의 소행처럼 꾸미는 작전을 말한다. 이란 정부와 국내 진보 진영 일각에선 나무호 피격에 대해 미국과 이스라엘의 공격일 수 있다고 주장해왔다.

정부는 이날 이란에 대한 손해배상 청구나 제재 여부에 대해선 밝히지 않았다. 박 차관은 “절제되고, 종합적인 외교적 대응으로 우리 국민들의 안전과 호르무즈에 갇혀 있는 선박들이 안전하게 돌아올 수 있도록 노력하는 그런 과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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