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달 25일(현지 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탬파의 레이먼 제임스 스타디움. 평소 미식축구의 거친 숨소리와 육중한 충돌음이 가득한 이곳에 너무도 ‘낯설지만 익숙한’ 광경이 펼쳐졌다. 6만여 명이 운집해 거대한 ‘보랏빛 바다’로 뒤덮인 방탄소년단(BTS)의 월드 투어. 공연 도중 뜨거운 음악이 잠시 멈추자, 조용히 한국 민요 선율이 흐르기 시작했다.
우리로선 음만 들어도 아는, 아리랑. 하지만 진짜 놀라운 건 다음 순간이었다. 파란 눈의 청년들과 히잡을 쓴 소녀들, 심지어 나이 지긋한 백인 관객까지 일제히 아리랑을 목청껏 불러댔다. 국적과 인종을 불문하고 입을 맞춘 아리랑 ‘떼창’이라니. 잠시 K팝 무대가 아니라, 장엄한 전통 의례가 펼쳐진 듯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따져 보자. 아리랑은 우리 정서가 짙게 밴 곡이지만, 한국인이라도 일상적으로 즐겨 부르는 노래라 하긴 어렵다. 그런 민요를 타국 젊은이들이 발음도 음정도 정확하게 외워 부르는 게 예사로운 걸까. 미 뉴욕타임스(NYT)가 BTS 앨범 ‘아리랑’을 “한국 소프트파워가 세계로 피워올린 봉화(intended beacon)”라 했던 게 딱 들어맞는 순간이었다.
벽안의 청년들 위로하는 한국 민요
빅히트뮤직에 따르면 아리랑 떼창은 탬파에서 월드 투어가 열린 사흘 내내 이어졌다. 산술적으로 18만 명이 넘는 관객이 아리랑을 알고, 외웠고, 부를 수 있단 뜻이다. 이는 K컬처가 이제 새로운 단계로 나아가고 있음을 보여준다. 잘 만들어진 매끈한 상품을 넘어, 한국인 고유의 가치관까지 공유하는 커뮤니티 역할도 해내고 있는 셈이다.
실제로 BTS 팬덤 ‘아미(ARMY)’는 단지 음악을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그들은 BTS 철학에 동조하고 실천한다. 이른바 하나의 “에코시스템(ecosystem·생태계)”(미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BR)을 이룬다. 인종차별 반대 운동에 기부하고, 환경 보호 캠페인을 벌이며, 서로의 다름을 받아들이자고 설파한다. “나를 버리고 가신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는 애달픔을 그들이 얼마나 이해할진 모르겠다. 하지만 그들은 그 가사를 곱씹고 받아들이려 노력했다.
K컬처를 논할 때 ‘가장 한국적인 게 가장 세계적인 것’이라 흔히들 말한다. 그런데 그건 공감대를 형성하는 “연대의 미학(Aesthetic of connection)”(그레이스 카오 미 예일대 교수)이 바탕이 돼야 가능하지 않을까. BTS가 아리랑을 삽입한 곡 ‘Body to Body’ 가사를 보자. ‘from everywhere to Korea. 총 칼 키보드 다 좀 치워. 인생은 짧아 증오는 비워…좀 더 가까이 와 skin to skin.’ BTS는 아미가 기댈 수 있는 안식처를 음악으로 제공하려 했다. 그리고 그 안에 아리랑이 함께 머물렀다.
K컬처가 우리에게 내민 손길
BTS 등 K팝 뮤지션들이 진정으로 대단한 건, 그들이 우리 정체성이 담긴 문화를 지구 곳곳에 퍼뜨린 첨병 역할을 했기 때문만이 아니다. 그들 덕에, 한국인이 만든 콘텐츠가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의 삶을 다독이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심지어 머나먼 땅의 생경한 민요가 공감이란 옷을 입고 이역만리 청춘에게 위안을 주게끔 만들었다.
다시 탬파의 밤하늘을 떠올려 본다. BTS는 내년 3월까지 34개 도시에서 85회에 걸쳐 월드투어를 이어갈 예정이다. 앞으로도 80번쯤 이 가슴 벅찬 풍경을 더 빚어낼 거란 얘기다. 어쩌면 그들의 합창은 되묻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저 ‘국뽕’에 취할 게 아니라, K컬처를 매개로 세계와 함께할 준비가 됐는지를. 이 분노와 혐오의 시대에 그들은 그렇게 손을 내밀고 있다. 아리랑은 다시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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