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교 정책-군사 개입 역사 분석
국제법 무시하는 이중 잣대 지적
◇미국은 어떻게 세계를 위험에 빠뜨리는가/노엄 촘스키, 네이선 J 로빈슨 지음·심운 옮김/552쪽·3만8000원·메디치미디어
선과 악은 획일적으로 나뉘지 않는다. 복잡다단한 세상일에서 선과 악을 명확하게 구분하기도 쉽지 않지만, 세월이 지나 선과 악이 뒤바뀌는 경우도 허다하다. 미국이 ‘정의의 사도’인지, ‘깡패 국가’인지도 마찬가지다. 비록 독재자지만 남의 나라 대통령을 서슴없이 잡아가는 것은 분명 ‘깡패 짓’인데, 또 노벨 평화상을 탄 그 나라 민주·인권 운동가에게는 민주주의 회복에 한 걸음 다가가게 한 일이니 말이다.
세계적인 지성 노엄 촘스키와 대표적인 미국 진보 저널리스트인 네이선 J 로빈슨이 미국의 외교 정책과 군사 개입 역사를 통해, ‘민주주의 수호자’라는 미국의 이미지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파헤쳤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간의 분쟁, 나토(NATO)와 러시아 문제, 9·11테러와 이라크전, 미중 갈등에서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까지 고결한 명분으로 자기를 미화해 온 미국의 패권주의 대외정책 전반을 신랄하게 지적한다.
“미국의 이스라엘에 대한 지원은 이스라엘의 행위가 ‘미국·이스라엘’ 공동의 행위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스라엘 범죄’라고 할 때, 이는 오해의 소지가 있는 표현이다. 실상은 미국·이스라엘 공동 범죄이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의 모든 행위는 경제, 외교, 군사, 이념적 지원을 제공하는 미국의 암묵적인 또는 명시적인 승인 아래 이루어진다.”(5장 ‘미국, 이스라엘 그리고 팔레스타인’에서)
저자들은 미국이 표방하는 ‘선의’가 어떻게 자신들의 폭력을 정당화하는 도구가 돼 왔는지를 고발한다. 늘 ‘자유와 인권을 위해서’였다고 하지만, 그 결과는 미국의 많은 이익과 해당 국가 또는 지역의 전쟁과 장기적 혼란으로 반복해서 이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이중성은 미국이 ‘테러리즘’이란 말을 사용할 때도 잘 드러나는데, 다른 나라나 무장집단이 민간인에게 폭력을 사용할 때는 테러라고 규정하면서 정작 자신들의 무차별 폭격이나 독재정권 지원은 ‘안정 추구’ ‘강압 외교’ 등의 완곡한 표현을 쓴다고 지적한다. 똑같은 잔혹 행위도 적대국이 하면 ‘악마의 소행’이고, 자신들이 하면 테러를 막기 위한 행동으로 미화하는 이중 잣대가 미국 엘리트층 전반에 깊숙이 뿌리 박혀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건 이런 이중 잣대가 비단 지금 트럼프 대통령에게서만 보이는 게 아니라 전임 조 바이든, 버락 오바마, 조지 부시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저자들은 미국은 건국 이래 미국이 다른 국가와 구별되는 특별한 나라라는 ‘미국 예외주의(American exceptionalism)’를 전파해 왔으며, 그들이 종종 보이는 도덕적 원칙이나 국제법의 무시는 이런 인식에 기반한다고 지적한다.
작금의 세계 정세 때문에 저자들의 주장에 상당히 공감이 가지만, 그렇다고 너무 나쁜 쪽으로만 생각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비정한 국제 사회에서 ‘내 절친’이 여러 얼굴을 갖고 있다는 걸 잊지 않으면 되지 않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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