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 잡지 샘터가 경영난에 시달리다 올해 1월호를 낸 후 무기한 휴간에 들어갔다. 1970년 4월 창간된 후 처음 멈춰 선 것이다. 한데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났다. 정기구독자 가운데 수십 명이 환불을 정중히 거절한 것. 연간 구독료는 4만8000원으로, 10년 치를 미리 낸 사람도 많았다. 구독자별로 몇만 원에서 많게는 30만 원이 넘는 돈을 받지 않겠다고 했다. 이들은 “남은 구독료는 돌려주지 않으셔도 된다. 출판사 운영에 써 달라”고 당부했다.
샘터는 그동안 발행된 잡지에 실린 글 중 100개를 추려 지난달 출간한 필사책 ‘56년 샘터 잊지 못할 명문장’을 이들 독자에게 선물로 보냈다. 책에는 피천득, 박완서, 이어령, 법정 스님, 장영희, 이해인, 나태주, 한강을 비롯해 주부, 학생, 식당 주인 등의 글이 고루 담겼다. ‘평범한 사람들의 행복을 위한 교양지’를 표방하며 명사와 일반인의 글을 나란히 실은 샘터의 정체성을 압축적으로 보여준다.
평범한 이들이 건네는 다정함
휴간 사실이 알려지자 독자들은 샘터에 대한 추억을 떠올렸다. 한 독자는 “군 복무 시절 친구가 매달 샘터를 보내줘 힘든 시간을 버틸 수 있었다”고 했다. 또 다른 독자는 “중학생 때 빠듯한 용돈을 모아 샘터가 나오길 기다렸다 사서 돌아오는 길이 그렇게 행복할 수 없었다”고 했다.
필사책을 통해 다시 만난 글도 반겼다. ‘아이들 학교로 우산을 들고 갈 일이 있을 때엔 하나라도 우산을 더 챙겨서 갑니다. 우산이 없어 비를 맞는 것이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를 하나라도 줄이고 싶어서.’ 김미라 씨의 ‘우산 세 개’에 “마음이 촉촉해진다”는 반응이 많았다.
샘터에는 다른 출판사에서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예전에 발간된 샘터를 보고 싶다며 독자들이 종종 찾아오는 것. 본인 글이 실린 샘터를 보려는 어르신, 돌아가신 부모님의 흔적을 찾으려는 중년 등 다양하다. 글이 디지털로 저장돼 있지 않아 직원들은 엑셀 파일로 이름과 제목 등을 검색해 손수 해당 잡지를 찾아준다. 원고 마감으로 정신없을 때 오는 사람도 그냥 돌려보내지 않는다. 직원들은 “샘터 이미지를 생각하면 매정하게 거절할 수가 없다”고 말한다.
이는 샘터의 창간 정신과도 맞닿아 있다. 고 김재순 전 국회의장(1923∼2016)은 국제기능올림픽 한국위원회 회장을 맡아 기능인들을 만났는데 “집이 가난해 공부하지 못한 게 한이 된다”는 하소연을 들었다. 평범한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갖게 할 방법을 고민하다 샘터를 창간했다.
진솔한 글에 대한 목마름 여전
샘터는 2019년에도 경영난으로 휴간하겠다고 발표한 적이 있었지만 독자 기부와 기업 후원으로 발행 중단 없이 고비를 넘겼다. 하지만 더 버티기는 힘들었다. 월간지를 운영하려면 최소한 5만 권은 발행해야 하는데 최근엔 1만 권 정도로 줄었다. 국방부에 납품하는 물량까지 포함된 수치다. 샘터가 한창 인기 있을 땐 50만 권까지 발행했다.
기자가 어릴 땐 은행 병원 동사무소 등 사람들이 모이는 곳에는 샘터가 늘 있었다. 시간이 지나며 샘터를 볼 수 있는 곳은 서점, 도서관으로 급격히 줄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휴간은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하지만 샘터 휴간 후 구독자들이 보낸 정중한 격려는 사람 냄새 나는 글을 아끼는 이들이 적지 않다는 걸 확인시켜 줬다. 투박하지만 진솔한 글에서 위안을 얻었다는 독자들의 잇따른 고백 역시 사람들이 온기에 목말라 있음을 보여준다.
김 전 의장의 아들인 김성구 샘터사 대표(66)는 “단행본으로 실력을 키우고 에너지를 충전해서 돌아오겠다”고 했다. 돌아올 샘터가 어떤 모습일진 모르겠다. 분명한 건 온기를 머금은 글은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인다는 것이다. 은은하게 오래도록.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