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리핀에서 한국인 교민 3명을 사탕수수밭에서 총으로 쏴 살해하고, 두 차례 탈옥하고, 교도소 안에서도 텔레그램으로 국내 마약 유통을 지휘하던 박왕열이 9년 만에 이번 주 (25일) 한국 땅을 밟았습니다. 송환이 성사된 것은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3일 필리핀 국빈 방문 당시 마르코스 대통령에게 직접 임시 인도를 요청한 결과였습니다. 9년간 풀리지 않던 문제가 정상회담 한 번으로 3주 만에 전격적으로 해결되었습니다. 그를 한국 당국이 직접 조사함으로써, 급속하게 확대되고 있는 한국 사회의 마약 유통망에 대한 수사가 진전될 수 있다는 기대가 높습니다.
이날 오전 7시 16분, 남색 야구 모자를 쓴 박왕열이 인천공항 출국장을 빠져나왔습니다. 그는 마스크 없이 카메라 앞에 섰습니다. 수갑을 가린 천 옆으로 문신이 보입니다. 경찰과 법무부 직원 수십 명이 에워싼 가운데 3분 만에 호송차에 실렸습니다.
필리핀에서 이른바 ‘전세계’라는 활동명으로 마약을 유통했던 박왕열 씨가 25일 인천국제공항 제2터미널을 통해 송환되고 있다. 인천공항=공동취재
● 마약왕이 얼굴을 가리지 않은 이유와 눈빛
호송차로 이동하는 동안 박왕열은 취재진의 질문에는 답하지 않았지만 대신 자신을 취재한 후 사건을 공론화시킨 방송국 소속 특정 기자를 알아보고 “너는 남자도 아니다”라는 말을 던졌습니다. 현장을 팔로우하던 사진기자들이 이 장면을 촬영했습니다. 법적 판단과는 무관하게 이 장면은 보는 사람들을 아연실색하게 했습니다. 마스크를 쓰고 취재진에 노출되어도 된다는 경찰의 조언에도 박씨는 마스크를 쓰지 않은 채 국내로 송환되었다는 보도도 있습니다. 이런 심리에 대해 배상훈 프로파일러는 SBS 라디오에 나와 “그가 권력감과 우월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 카메라를 향해 발차기 했던 범인들
현장 취재를 하다 보면 점잖은 사람들도 만나지만 험상궂은 형사 피의자를 볼 때도 있습니다. 범죄자라고 느끼지 못할 만큼 당당한 표정을 볼 수도 있고, 위협적인 눈빛을 볼 수도 있습니다. 이번이 그런 경우입니다. 험악한 느낌은 카메라에 고스란히 담겨 국민들에게 전해집니다. 과거에 비슷한 사례가 또 있었습니다.
2021년 전자발찌를 끊고 여성 두 명을 살해한 혐의를 받던 강윤성은 법원으로 향하던 중 취재진의 마이크를 발로 걷어찼습니다. 이어 “보도 똑바로 하라”고 소리치기도 했습니다.
취재진을 향한 발길질 가운데 가장 강렬하게 기억되는 사진은 종교연구가 탁명환 피살 사건의 피고인 임홍천의 모습입니다. 1994년 5월 20일자 뉴스입니다. 법정으로 호송되던 그는 자신을 둘러싼 보도에 불만을 품고 취재진을 향해 다리를 뻗었습니다.
1994년 5월 20일자 동아일보 30면에 실린 임홍천의 발차기 장면 수갑이 채워진 상태에서 몸을 비틀어 공격 자세를 취한 순간이 플래시와 함께 포착됐습니다. 좁은 복도에서, 놀란 기자들과 교도관의 모습이 보입니다. 바로 앞에서 사진 찍던 카메라가 렌즈 안으로 들어오는 발을 그대로 잡았습니다. 엄청난 긴장감입니다.
● 카메라 앞 마지막 연출
압송 장면에서 피의자는 이미 사회적으로 패배한 위치에 있습니다. 그러나 카메라 앞에서만큼은 스스로를 연출할 수 있습니다. 무죄를 주장할 수도 있고, 욕설을 할 수도 있고, 발길질을 할 수도 있습니다. 물론 반성을 보여주는 침묵을 택하거나 고개를 숙일 수도 있습니다. 뉴시스의 기사에 따르면, “박왕열은 과거 국내에서 생참치를 수입해 백화점에 납품하던 촉망받는 기업인이었다. 언론 인터뷰를 통해 ‘참치 해체쇼’를 선보이며 대중적 신뢰를 쌓았던 그는 사업 실패와 사기를 겪으며 타락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2010년대 초반 필리핀으로 건너간 그는 사설 카지노와 불법 도박 사업을 운영하며 범죄의 늪에 빠져들었다”고 합니다. 혹시 동아일보 옛날 사진 중에 참치 해체쇼를 하고 있는 그의 사진이 있나 검색해 봤지만 특정되지는 않았습니다. 참치 해체쇼를 취재하더라도 진행자의 이름을 따로 설명에 남겨놓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다만, 그의 기억과 핸드폰 속에는 대중의 주목을 받던 퍼포먼스가 남아 있을 겁니다.
취재진을 향해 소리치며 응시하던 박씨의 눈빛은 위협적이고 표독스러웠습니다. 그 눈빛은 취재진을 넘어 화면 너머 국민에게 전달됐습니다. 어제 27일 경기 의정부시 의정부지방법원에서 열린 구속 전 피의자심문(영장실질심사)에 수갑을 찬 채 다시 공개된 박씨는 이번에는 조용히 법정으로 들어갔습니다.
인천공항을 통해 들어오면서 그가 보여준 눈빛과 취재진을 무시하는 발언처럼 흉악범 호송 장면 가운데 지금도 여러분 기억에 남는 사진이나 영상이 있으신가요. 어떤 장면이었는지, 왜 기억에 남으셨는지 댓글로 들려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백년사진이었습니다.
● p.s.
◊ 착경한 횡령범 내미 = 우는 정목 형사 좌는 내미 범인(경성역에서) 아주 옛날에도 호송되는 범죄피의자를 촬영하는 경우가 있었더라구요. 사진이 있어 한 장 첨부합니다.
<1926년 4월 3일 경성역에 호송된 광화문 우편국 공금 횡령범. 오사카에서 체포되어서 호송되는 사진>입니다. 오른쪽은 형사, 왼쪽 사람이 횡령범입니다. 사진출처는 매일신보입니다. 당시 동아일보는 ‘국제 농민회에서 위로 차 조선농민회에 보낸 응원 메시지 전문을 번역해 실었다는 이유로 일제에 의해 한 달 반 가량 정간 조치가 취해진 상태’라 이 사진을 신문에 싣지 못했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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