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이비통도 구찌도 ‘리폼’해 쓴다… “명품 값 인상에 손님 발길 늘었죠”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3월 14일 01시 40분


[토요기획] 명품에 새 생명 불어넣는 수선사들
“수선집 리폼, 상표권 침해 아니다” 루이비통에 승소… 명품 개조 활기 기대

《다시 주목받는 명품 리폼 수선사

백화점과 명품 매장 주변엔 재봉틀을 돌리는 명품 수선사들이 있다. 최근 대법원 판결로 리폼의 불법 논란이 걷히면서 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추억이 담긴 명품을 고쳐 쓰거나, 명품의 사후서비스에 만족하지 못한 소비자들이 찾는다.》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명품수선업체 강남사에서 이경한 대표가 고객이 의뢰한 명품 가방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지난달 26일 서울 강남구 신사동에 위치한 명품수선업체 강남사에서 이경한 대표가 고객이 의뢰한 명품 가방 상태를 살펴보고 있다. 김다연 기자 damong@donga.com
서울 강남구 압구정로. 한 상가 건물에 걸린 ‘강남사’라는 간판을 따라 좁은 계단을 따라 내려가자, 가죽 냄새와 함께 재봉틀 돌아가는 소리가 가득한 작업실이 나타났다. 빨강, 밤색, 베이지, 짙은 초록까지 형형색색 수십 가지 색의 실이 줄지어 있었다. 작업대 위에는 해체된 가방과 가죽 조각, 지퍼 부품, 금속 장식들이 널려 있었다. 대부분 수백만 원을 넘는 명품 가방들에서 나온 것들이다.

이경한 강남사 대표(58)는 작업대 앞에 앉아 수백만 원짜리 루이비통 모노그램 가방의 가장자리를 손바닥으로 눌러 가며 바느질 간격을 맞추고 있었다. 그는 가죽 결을 손끝으로 더듬으며 “가방은 겉만 보면 몰라요. 뜯어 봐야 구조가 보이지”라며 능숙한 손놀림으로 가방을 되살려 나가고 있었다.

명품 매장과 백화점 옆자리, 명품과 공존하는 사람들이 있다. 브랜드 매장에서 고치지 못하거나 오래된 명품을 재탄생시키는 전문가들이다. 최근 명품 가방을 다른 형태로 바꾸는 ‘리폼’이 상표권 침해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대법원 판결이 나오면서 이들이 다시 주목받고 있다. 국내 명품 시장은 성장하는데, 명품 가격이 계속 오르고 사후관리 서비스(AS)에 대한 불만도 커지면서 화려한 명품 매장 근처에 있는 수선사를 찾는 이들도 늘고 있다. 기존 제품을 고쳐 쓰거나 디자인을 바꿔 쓰려는 소비자도 이곳을 찾고 있다.

게티이미지뱅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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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루이비통 이긴 수선업자… ‘리폼’ 다시 활기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이라고 불린 강남사와 글로벌 명품기업 루이비통의 상표권 침해 소송에서 이긴 건 다윗 강남사였다. 루이비통은 국내 수선업체의 리폼이 브랜드 상표권을 침해하고 브랜드 이미지와 품질 보증 체계를 훼손한다며 2022년 2월 서울중앙지방법원에 상표권 침해 금지 및 손해배상 소송을 제기했다.

1심(서울중앙지법)과 2심(특허법원)은 모두 루이비통의 손을 들어줬다. 법원은 리폼 과정에서 가방의 크기와 디자인, 구조가 크게 바뀌면 사실상 새로운 상품을 만드는 것과 같아 상표권 침해에 해당한다고 판단했고, 강남사 측에 1500만 원 배상을 명령했다.

하지만 올해 2월 대법원은 “소비자가 정품 제품을 개인적으로 사용하기 위해 리폼을 의뢰하는 경우 상표의 사용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며 원심 판결을 파기하고 사건을 특허법원으로 돌려보냈다.

이 판결은 명품 리폼이 상표권 침해인지 여부를 둘러싼 국내 첫 대법원 판단이다. 개인 소비자가 자신의 명품을 고쳐 쓰거나 디자인을 바꾸는 행위는 일정 범위에서 허용될 수 있다는 기준을 제시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수선사들은 판결 이후 리폼 상담이 늘고 있다고 했다. 경기 성남시에 있는 ‘정 명품수선’ 대표는 “예전에는 리폼이 불법 아니냐고 묻는 손님이 많았는데 판결 이후 그런 질문이 거의 사라졌다”며 “최근 들어 리폼 상담 문의가 빠르게 늘고 있다”고 말했다. 제작비는 종류에 따라 개당 10만∼70만 원 수준으로 알려져 있다.

이들의 역사는 국내 명품 시장 확대와 궤를 함께한다. 명품 수선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것은 1988년 서울 올림픽 이후다. 해외 명품 브랜드가 한국 시장에 본격적으로 들어오기 시작했지만, 당시에는 브랜드별 AS 체계가 지금처럼 갖춰져 있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명품 가방과 신발 수선이 구두 수선점이나 가방 수선점으로 흘러 들어왔다. 1970, 80년대 봉제 산업이 활발하던 시기 공장과 수선점에서 가죽과 미싱 기술을 익힌 장인들이 이 일을 맡았다. 서울 명동과 강남 등 백화점 인근에는 한때 수십 곳의 명품 수선점이 모여 ‘명품 수선 거리’가 형성되기도 했다.

현재 명품 수선 업계의 기술자들은 대부분 50, 60대 이상이다. 이들은 대학에서 패션을 전공한 세대가 아니라 1970, 80년대 봉제 산업이 활발하던 시기에 어린 나이부터 공장이나 수선점에서 기술을 배운 세대다. 서울 중구에서 수선점 ‘명동사’를 운영하는 오창수 대표(71)는 16세였던 1970년부터 수선 일을 시작했다. 그는 “예전에는 명절이 다가오면 수선 물량이 한 달 전부터 몰려 밤샘 작업을 할 정도였다”고 했다.

하지만 시장이 늘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2010년대 중반 업사이클링과 커스터마이징 문화가 확산되며 명품 리폼 수요가 늘면서 업계가 한 차례 활황을 맞았지만, 이후 중고 거래 플랫폼 확산과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 등을 거치며 많은 업체들이 문을 닫았다.

하지만 명품 수선사들은 여전히 명동, 압구정동, 청담동 일대에서 활발히 재봉틀을 돌리고 있다. 이는 국내 명품 소비 역사가 오래된 만큼, 낡았지만 소중한 추억이 담긴 제품을 계속 쓰고 싶어 하는 사람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특히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중심으로는 오래된 명품을 고쳐 다시 쓰려는 움직임도 있다. 리폼을 거쳐 ‘나만의 명품’을 갖고 싶다는 욕구 때문이다. 이 대표는 “부모에게 물려받은 가방이나 유품처럼 의미가 있는 물건을 간직하기 위해 리폼을 맡기는 경우도 많다”며 “요즘에는 젊은 소비자들이 가방을 자신의 취향에 맞게 커스터마이징해 달라는 의뢰도 늘고 있다”고 말했다.

● “명품업계, 가격은 올리는데 AS는 부실”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지속해서 성장해 왔다. 글로벌 시장조사업체 유로모니터에 따르면 국내 명품 시장 규모는 2016년 13조3283억 원에서 2019년 15조4905억 원으로 3년간 16.2% 증가했다. 코로나19 영향으로 2020년에는 15조2182억 원으로 1.8% 감소했지만, 이후 보복 소비가 이어지며 2022년 19조6908억 원까지 29.4% 급증했다. 최근 성장세는 둔화됐지만 지난해에도 21조1071억 원으로 집계됐다.

명품 인기에 샤넬, 루이비통, 롤렉스, 까르띠에 등 주요 브랜드들은 최근 몇 년 동안 매년 수차례 가격을 인상해 왔다. 대표적으로 샤넬은 올해 1월 클래식 맥시 핸드백 가격을 1892만 원에서 2033만 원으로 7.5% 올렸다. 클래식 맥시 핸드백은 2020년 말 1014만 원 수준이었던 점을 감안하면 5년 만에 두 배 가까이로 뛴 셈이다.

그러나 가격 인상에 비례하지 않는 서비스에 소비자들의 불만이 커지는 분위기다. 국내 명품 커뮤니티에는 “두 달 전에 선물 받은 샤넬 가방을 처음 사용하려고 가방 여닫이를 만지는 순간 버클이 떨어졌다”거나 “200만 원이 넘는 샤넬 샌들인데 스트랩 마감이 엉망이었다”는 지적이 나왔다. 해외의 한 인플루언서도 “7000달러짜리 샤넬 가방을 구입한 뒤 1년도 안 돼 장식과 로고가 떨어졌다”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다.

프랑스 명품 업체 디올도 대표 상품인 북토트를 비롯한 주요 제품에서 본드가 올라와 누렇게 변색되는 문제가 발생하며 품질 논란을 겪었다. 루이비통은 일부 제품에서 악취가 난다는 민원이 폭주하며 교환에 나선 사례도 있다.

명품 업체들의 부실한 AS 정책도 늘 도마 위에 오른다. 무상 수리 조건도 까다롭고, 보증기간이 넘어가면 비용도 상당 수준이다. 시간이 오래 걸리기도 한다.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속 서일준 국민의힘 의원이 한국소비자원에서 받은 ‘해외 명품 브랜드 관련 피해구제 접수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20년부터 2024년까지 루이비통·샤넬·에르메스·구찌·버버리 등 5개 명품 패션 회사를 상대로 접수된 피해 구제 신청은 346건이었다. 피해 사유는 품질 문제가 280건으로 가장 많았고, 계약 불이행 20건, AS 불만 10건 등이 뒤를 이었다.

이 같은 분위기 속에서 명품 수선업에 대한 관심도 다시 높아지고 있다. 새 제품을 사기보다는 기존 제품을 수선하거나 디자인을 바꿔 사용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명품 가방을 미니백이나 카드지갑, 골프채 커버 등 다른 형태로 바꾸는 리폼 의뢰도 꾸준히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업계 설명이다. 글로벌 조사기관 루신텔은 전 세계 핸드백 세척 및 수리 서비스 시장이 2024년부터 2030년까지 연평균 5.6%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컨설팅기업 베인앤드컴퍼니는 “명품 제품을 오래 사용하려는 소비자가 늘면서 리셀과 제품 관리 서비스 시장도 함께 확대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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