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3월 초 서울 종로구 통의동 보안여관에서 흥미로운 전시가 열렸습니다. ‘젊은 골동’이라는 타이틀로 총 8개 팀이 각자의 미감과 열정으로 고미술을 소개했지요. 민화 병풍부터 반닫이까지 한국의 골동(骨董)이 가득했는데 과거에서 온 문화사절단을 만난 듯 신선했습니다. 세월에 마모되고 막 만들었을 때의 생기도 사라졌지만 깊고 근사했습니다. 무엇보다 품위가 있었습니다. 지금의 생활에 쑥 들어와도 당당히 제자리를 찾을 만큼 독창적이고 기품 있는 형태와 기운. 수백 년에 걸쳐 몇 번이나 손이 바뀌면서도 한순간 버려지지 않고 반복해서 선택된 물건 특유의 개성과 사랑스러움이 넘쳤습니다.
가장 인상적인 작품은 요강 크기의 백자 항아리였습니다. 깨진 부분이 많아 대수선을 했는데 한쪽 면이 시멘트로 붙어 있더군요. 그걸로도 충분치 않아 주둥이와 몸통 전체를 철사로 고정했고요. 얼마나 아끼는 아이였으면 저렇게까지 공을 들여 수선했을까 싶었습니다. ‘어쩌다가 저리 크게 깨뜨렸을까?’ 하는 궁금증도 들고요. 비록 철사와 시멘트로 고정된 신세였지만 차분하고 담담한 기운의 빛깔, 옹졸하지 않고 넉넉한 형태와 곡선이 무척 아름다웠습니다.
전시에 참여한 팀들을 만나 어떻게 골동과 사랑에 빠졌는지, 어떤 기준과 철학으로 작품을 컬렉션하는지 묻고 싶었으나 그러지 못했습니다. 대신 며칠 후 서촌에 있는 갤러리 이예하에 들렀는데 그곳에서 이보람 대표의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녀의 전공은 금속공예. 대학 후 취업을 했지만 반년 후 그만두었고 재충전도 할 겸 제주도로 날아갔습니다. 잠시만 있다 돌아올 요량이었는데 무려 8년을 머물렀지요. 제주의 돌이 주는 행복과 영감이 컸습니다. 무뚝뚝하고 거칠지만 동시에 신비롭고 아름다운 생명. 그러다 이번에는 물질을 하던 지인이 반닫이를 주셨는데 돌창고에 툭 놓은 반닫이가 ‘충격적으로’ 아름다웠습니다. 사람 애간장을 녹일 작정이었던지 반닫이를 놓은 돌창고 뒤로는 매화밭이 무성했다네요. 그때부터 그녀는 골동을 찾아 나서기 시작합니다. 동네에 그런 물건들이 보이면 애지중지 들여다보고 제주 곳곳에 있는 골동상점도 틈나는 대로 찾아다녔습니다. 이예하에는 한국 골동만 있는 게 아니었습니다. 건축가 르 코르뷔지에의 사촌 동생인 피에르 잔느레의 책상과 투박하면서도 정제된 라인이 매력적인 피에르 샤포의 테이블도 함께 있었습니다.
“제주 골동의 두툼하고 투박한 미감을 계속 들여다보니 어느 순간 아프리카 미술하고 연결이 되더라고요. 아프리카 미술은 또다시 미드센추리 가구와 연결이 되고요.” 실제 아프리카 미술과 미드센추리 가구는 공통분모가 많지요. 장식을 배제한 단순한 형태, 문명화되기 전의 순수한 미감, 유기적인 곡선과 기하하적 단순미, 무엇보다 원시적 기운이 양쪽 모두에 심지처럼 박혀 있습니다. 심신의 평화를 얻으러 날아간 제주에서 서양미술사의 또 다른 원형을 만난 그녀가 얼마나 설레고 행복했을지 짐작이 가고도 남습니다. 보안여관에 출동한 골동 애호가들에게도 분명 그런 사랑의 스토리가 있겠지요.
흔히 아름다움이 세상을 구원할 것이라고 합니다. 아름다움에 위안받은 개인들이 결국 세상을 이루는 것이니까요. 복제 불가능한 시간과 정성의 흔적이 신선함과 안정감을 동시에 주는 ‘골동’이 그날 이후로 더 궁금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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