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재법 제정 참여했던 이강국 前헌재소장
재판 ‘소원’ 배제한 헌재법 바꿔야
국민들에게 추가 권리구제 수단
대법원 위상-권위에 영향 없을것
19일 오전 서울 종로구에 있는 법무법인 사무실에서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이 동아일보와 인터뷰하며 재판소원 등에 대한 찬성 의견을 설명하고 있다.
신원건 기자 laputa@donga.com
“38년 전 재판소원을 반대했던 제 의견이 잘못됐다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이강국 전 헌법재판소장은 19일 동아일보와의 인터뷰에서 “1988년 헌법재판소법 제정 당시 재판소원 제도를 도입하는 것은 사실상 4심제가 우려되고, 대법원의 최고 법원성이 침해된다는 이유로 법원을 대표해 재판소원을 막는 첨병 역할을 하기도 했다”며 이렇게 말했다. 그는 생각이 바뀐 이유에 대해 “대법관과 헌법재판소장 등으로 헌법재판을 경험해보니 이제는 우리나라에서도 재판소원을 도입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최근 더불어민주당이 추진 중인 이른바 ‘재판소원’ 법안은 대법원 확정 판결도 헌재에서 다퉈 볼 수 있도록 한 내용이 핵심이다.
이 전 소장은 법원행정처 조사국장으로 재직하던 1988년 당시 법원을 대표하여 헌법재판소법 제정 실무위원회 위원 5인 중 한 명으로 참여해 현행 헌법재판소법 제정, 특히 헌법소원 부분과 관련해 핵심적인 역할을 맡았다. 현행 헌재의 주요 권한인 헌법소원의 대상과 방식을 입법화하는데 관여한 산증인이기도 하다.
이 전 소장은 “당시엔 대법원을 대표해 실무위에 참여했고, 재판소원이 도입된다면 그것은 ‘4심제’로서 위헌이고, 또 대법원의 최고 법원성을 침해해 위헌이라는 법원 측의 주요 입장을 강력히 주장해 결국 현재와 같은 헌재법이 제정된 것”이라며 “사실상 지금 대법원의 주요 반대 논거는 그 때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최근 재판소원을 둘러싸고 법원 안팎에서 제기되고 있는 4심제 운영 우려에 대해 “헌법재판의 본질과 기능을 제대로 연구해 보지 않고 비판하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재판소원은 증거의 취사 선택이라든지 사실인정, 법령의 해석·적용 등에 관해 다시 재판하는 것이 아니라 확정된 재판에서 국민의 기본권이 침해 됐는지 여부만을 심판하기 때문에 심판 대상과 범위가 완전히 다르다”며 “현행법에서도 재판 진행 중에 이 법이 위헌인지 여부를 따져 달라고 하는 위헌법률심판 제청이란 제도가 있는데 확정 판결 후에도 기본권 침해 여부를 따져달라는 재판소원 제도가 있을 수 있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전 소장은 2000년부터 2006년까지 대법관을, 2007년 1월부터 6년간 헌재소장을 맡아 사법부의 양대 기관에서 핵심 역할을 담당했다. 그는 헌재소장으로 재직할 당시 한정위헌 사건을 둘러싼 헌재와 대법원 간의 갈등을 경험하면서 재판소원 제도의 필요성에 대해 고민했다고 설명했다. 이 전 소장은 “법률의 해석을 이렇게 하면 안 되다고 하는 것이 헌재의 ‘한정위헌’ 결정인데, 대법은 법률 해석권은 법원에 전속된다는 입장에서 헌재의 한정위헌의 기속력(羈束力)을 인정하지 않았다”며 “국민의 기본권 보호를 위해 연구에 연구를 거듭하고 외국에서는 일반화된 이론조차 납득할 수 없는 해석으로 부정하는 대법원의 입장을 이해하기 어려웠다”고 말했다.
재판소원이 도입되면 대법원의 최고 법원성이 침해되므로 위헌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반박했다. 이 전 소장은 “헌법 102조 2항의 ‘사법권은 최고법원인 대법원과 각급 법원으로 조직된다’는 의미는 대법원이 법원 내에서는 최고 법원이라는 취지이지 다른 모든 국가기관에 대하여까지 최고법원임을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라며 “따라서 헌법 6장에 별도로 규정된 헌법재판소의 헌법재판권 행사까지 최고법원임을 주장할 수 없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이어 “재판소원 제도가 도입되더라도 독일의 경우를 보면 인용률이 상당히 낮을 것”이라면서도 “대법원과 각급 법원들은 재판소원에 대비해 국민의 기본권 침해가 없는지를 한층 더 엄격하게 심판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결국 국민들은 자신들의 기본권보장을 위한 또 하나의 권리 구제 수단을 확보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법원 안팎에선 재판소원 도입 과정에서 충분한 숙의가 부족하다는 지적도 크다. 그는 “38년 전 헌재법 제정 당시에도 치열한 세미나 등이 진행됐고, ‘재판소원을 뺀 헌법소원은 빈 껍데기’라는 지적이 헌법학자와 일부 변호사들 사이에서 다양하게 제기됐다”며 “재판소원의 도입 문제는 하루 아침에 나온 논쟁이 아닐뿐더러 법원이 그동안 헌법재판권과 헌법해석권에 관하여 지나치게 무관심했던 것은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고 말했다.
이 전 소장은 “헌재가 지난 38년간 발전해 온 족적이나 경험 등을 살펴보면 헌재가 재판소원을 맡는다 하더라도 충분히 감당 가능하다”면서도 “향후 재판소원이 도입된다면 재판관의 수와 자격요건, 구체적인 적법 요건 및 심판 과정과 절차 등에 관한 구체적이고 섬세한 보완책이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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