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성갑 갤러리 클립 대표·‘건축가가 지은 집’ 저자영화 ‘시네마 천국’(1990년)을 다들 아실 겁니다. 저도 이 영화를 워낙 좋아해서 넷플릭스에 한 번씩 검색해 보곤 하는데 들어오진 않았더군요. 최근 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라이카시네마’에서 이 영화를 다시 봤습니다. 제2 상영관을 오픈하며 음향과 난방, 조명 시스템 등을 점검하는 자리였지요. 30석이 채 되지 않는 작은 영화관이라 뒷자리의 기척은 물론이고 작은 선실에 들어온 듯 아늑하고 포근한 밀도가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영화가 시작되자 이내 1940년대 이탈리아의 작은 마을 시실리로 빨려 들어갔습니다. 영화가 오락의 전부였던 시절, 시실리 주민들은 영화에 울고 웃습니다. 영사기사 알프레도가 광장에 영화를 쏘아올릴 때 사람들은 우르르 몰려다니며 환호하고 한 중년의 아저씨는 몇 번이나 영화를 봤는지 다음 대사를 배우처럼 줄줄 읊습니다. 피가 뜨거운 청춘 한 쌍은 영화관의 소란과 어둠을 이불 삼아 선 채로 사랑을 나누기도 하지요. 그 영화관의 이름이 ‘시네마 천국’. 그곳은 실로 영화가 있어 행복하고 풍요로운 천국이었습니다.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저 역시 오랜만에 작은 천국을 맛본 듯했습니다. 중간에 멈춤 버튼을 누르지 않고, 원 테이크로 영화 한 편을 온전히 감상한 데서 오는 쾌감도 있었지요. 극장을 나온 후에도 며칠간 그 여운이 가시질 않았습니다. 그렇게 이 영화관을 만든 사람들에 대해서도 좀 더 깊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영화는 각별한 존재였습니다.
“아버지가 영화광이라 어릴 때부터 비디오를 세 편씩 빌려서 종일 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부모님이 맞벌이를 하셔서 홀로 집에 있는 시간이 많았고 그럴 때는 또 혼자 이런저런 영화를 봤지요. 당연히 ‘주말의 명화’ 팬이었고요. ‘살인의 추억’도 아버지랑 극장에서 처음 봤습니다. 이 공간의 스토리텔링을 맡으며 건물주와 대화를 나눴는데 동네에 특별한 문화공간을 짓고 싶어 하셨습니다. 자연스럽게 영화 이야기가 나왔고 영화야말로 가장 대중적이면서도 특별한 콘텐츠라는 공감대가 생겼습니다. 이 작은 영화관이 동네 사랑방 같은 역할을 하면 좋겠다는 바람이었습니다.” 이한재 라이카시네마 대표의 말입니다.
영화관의 설계는 이승호 스튜디오 승호 소장이 맡았습니다. 더 아늑하고 근사한 공간을 위해 그는 영화관 복도까지 조도를 낮춰 블랙박스처럼 만들고 천장에 광선 같은 조명을 삽입해 미래적인 분위기를 만들었습니다. 라이카시네마를 운영하는 회사의 이름은 ‘스페이스 도그(SPACE DOG)’. 라이카는 1957년 인류가 최초로 우주에 보낸 강아지 이름입니다. 이 소장이 가장 중점을 둔 클라이맥스는 의자입니다. 영화관을 조사하면 할수록 의자가 편하고 좋아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렀다는군요. 그렇게 선택한 의자는 ‘고토부키(Kotobuki)’ 제품. 주로 콘서트홀에 들어가는 의자를 생산하는 업체로, 영화관 의자 제작은 이번이 처음이었고 그 시작을 위해 좌석 번호를 자수로 새겨 넣는 정성을 보였습니다.
이런 설명을 듣고 그날의 기억을 다시 더듬어 보니 안락한 의자에서 ‘시네마 천국’이라는 명작이자 오래된 우주를 만나고 온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영화가 흐르는 공간은 우리가 인간임을 축복하는 작은 천국임을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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