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정규직법 도입 때부터 예고된 문제
20년간 방치하다 고질병으로 굳어져
경력채용, AI 전환으로 노동시장 급변
기한 늘려 ‘커리어 축적’ 기회 줘야
박중현 논설위원
“이대로 통과되면 두고두고 큰 탈이 납니다. 기업들이야 당연히 싼값에 사람 뽑아 쓰다가 2년이 되기 전에 자를 거 아닙니까. 비정규직 보호한다고 만드는 법이 청년 비정규직만 괴롭히는 일이 될 겁니다. 그래서 대통령 보시라고 따로 보고서까지 올렸는데…. 답이 없네요.”
2006년 어느 날 정부과천청사 사무실에서 만난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은 ‘기간제 및 단시간 근로자 보호 등에 관한 법률’, 이른바 ‘비정규직 보호법’ 입법이 불러올 파장을 걱정하고 있었다. 그 국장은 ‘대외비’ 청와대 보고서까지 꺼내 놓고 앞으로 노동시장에서 벌어질 문제점들을 설명했다. 지금은 상상하기 힘든 일이지만, 관료와 기자가 마주 앉아 정책을 토론하며 나라 걱정을 하던 시절이었다.
비정규직 문제가 노무현 정부에서 불거진 건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기업들의 구조조정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비정규직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노사정 대화가 여의치 않자 노 정부는 직접 입법에 나섰다. 그 핵심이 5인 이상 사업장에서 일하는 기간제 근로자의 근속연수가 만 2년이 되면 정규직(무기계약직)으로 의무 전환하도록 한 것이다.
기한이 2년으로 정해진 데 무슨 대단한 이유가 있었던 건 아니다. 노동계는 여러 해 지속되는 ‘상시 업무’는 무조건 정규직에 맡겨야 한다는 입장이었다. 재계는 정규직 전환 의무기한이 1년 정도로 너무 짧으면 기본 업무조차 익힐 수 없다며 기한을 늘려 달라고 요청했다. 양측의 요구 사이에서 찾은 어정쩡한 타협점이 2년이었고, 법은 2007년 7월부터 시행됐다.
2024년 말 한국의 기간제 근로자는 188만 명이다. 전체 근로자 중 11.8%로 적지 않은 숫자다. 이들이 정규직으로 얼마나 옮겨갔는지 보여주는 정규직 전환율은 8.6%에 그친다. 100명 중 8.6명만 기간제 탈출에 성공해 정규직이 되는 것이다. 나머지는 2년이 되기 전에 떠나야 한다. 2년을 동고동락한 직원을 내보내는 게 인정머리 없는 일인 줄 몰라서 기업들이 이런 선택을 하는 게 아니다. 정규직 전환 비용을 아끼려는 이유와 함께 ‘다른 기업들도 다들 그렇게 하니까’ 때 되면 근로계약을 해지하는 것이 관행으로 굳어졌다.
최근 이재명 정부는 청와대를 중심으로 재경부, 고용노동부, 중소벤처기업부 등이 참여하는 노동개혁 태스크포스(TF)를 만들었다. 이달 안에 개혁 과제를 정하는데 ‘기간제 2년 제한 완화’가 포함될지가 관심사로 떠올랐다. 앞서 이 대통령은 “2년 연속 근무하면 정규직으로 전환해야 하는 제도에 허점이 많다. 실태를 파악해 보완하라”고 주문했다. 기간 연장이 개혁과제가 된다면 2015년 박근혜 정부가 기한을 4년으로 늘리려다 노동계와 야당의 벽에 부딪혀 포기한 후 10여 년 만에 다시 수술대에 오르는 것이다.
강산이 두 번 바뀌는 동안 한국의 노동시장은 많이 변했다. 20년 전엔 대다수 대기업이 매년 신입사원 공채를 진행했지만 이젠 삼성, 포스코 정도만 남았다. 나머지 기업들은 신입 공채 대신 요구되는 스펙을 갖춘 경력자를 수시로 채용한다. “직원 수 10명이 안 되는 기업들도 ‘우린 경력자만 뽑는다’고 한다”는 게 청년 구직자들의 하소연이다.
이렇게 경력이 중요한 시대인데도, ‘2년 기간제’로 일한 건 제대로 된 경력으로 쳐주지 않는다. 2년 뒤 떠나보낼 사람이란 이유로 경험 축적이 필요한 중요 업무를 기업들이 맡기지 않기 때문이다. 기한을 충분히 연장한다면 기업들은 업무 연속성이 필요한 일을 기간제 근로자에게 더 많이 맡기게 될 것이다. 더 오래 함께 일하고, 교육 등에도 투자한 기간제 근로자를 기업이 정규직으로 전환할 가능성도 높아진다.
모든 일터에서 급속히 진행되는 인공지능(AI) 전환 역시 기간제 관련 제도를 정비해야 할 이유다. 저연차 직원들이 도맡던 보고서 작성, 회의자료 정리 등 기초 업무를 AI가 대신하기 시작했다. 숙련도가 낮은 근로자의 일자리가 먼저 줄어들 것으로 전망된다. 2년 기간제 근로자의 일자리가 심각하게 위협받을 수 있다. 이들이 수준 높은 기술, 역량을 습득해 새로운 업무를 찾을 때까지 시간을 벌어주기 위해서라도 기한 연장은 필요한 일이다.
노동계는 기간제 기한 연장이 ‘희망고문’의 시간만 늘리는 일이라고 한다. ‘평생 직장’에 다니는 정규직 중심 대형 노조의 눈에는 그럴 수 있다. 하지만 2년마다 새 직장을 찾아야 하는 고통과 스트레스가 4년간 같은 곳에서 일하는 것과 같을 리 없다. 특히 3∼4년을 한 직장에서 진득하게 일해 본 경험은 지금 우리 청년 구직자들에게 필요한 경력 사다리의 첫 번째 칸이다. 그런 기회를 제공할 수 있도록 고장 난 제도를 손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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