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호경]부동산 규제지역 지정과정, 사후에라도 공개하자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11월 17일 23시 15분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김호경 뉴스룸기획팀장
지난달 15일, 정부가 발표한 10·15 부동산 대책의 근거가 되는 통계를 둘러싼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10·15 대책의 핵심은 서울 전역과 수도권 12개 지역을 3중 규제지역(투기과열지구, 조정대상지역, 토지거래허가구역)으로 묶은 것이다. 현행 법령에 따르면 투기과열지구와 조정대상지역으로 지정하려면 직전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물가 상승률의 각각 1.5배, 1.3배를 넘어야 하는데, 국토교통부가 7∼9월 집값 통계 대신 6∼8월 통계를 사용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유리한 통계만 골라 쓴 것 아니냐”는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9월 집값 통계는 10월 15일 공표됐다. 국토부가 대책 발표 이틀 전에 한국부동산원으로부터 9월 통계를 전달받았다는 사실이 추가로 드러나자, 야당에서는 “통계 조작”이라며 행정소송을 제기해 논란이 법정 다툼으로 번진 상황이다.

국토부는 이러한 지적에 대해 “통계법에 따라 공표 전 통계를 제공하거나 누설하는 건 엄격하게 금지돼 있다”며 적극 반박하고 있다. 규제지역 주거정책심의위원회(주정심의위)의 심의·의결은 10월 14일에 종료됐고 당시 9월 통계는 아직 공표되지 않았기 때문에 사용할 수 없었다는 것이다.

위법 여부는 행정소송 결과를 지켜봐야겠지만, 좀 더 주목해야 할 대목은 규제지역을 둘러싼 논란이 반복되고 있다는 점이다. 올해 초 서울시의 토지거래허가구역 해제 및 재지정 당시에도 시장에서는 “대체 근거가 무엇이냐”는 불만이 쏟아졌다. 문재인 정부 시절 규제지역을 확대할 때마다 비슷한 논란이 일었다. 시기와 지역은 달랐지만 공통적으로 정부 입맛대로 규제지역을 결정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떨쳐내지 못한 것이다.

집값 통계 자체를 못 믿겠다는 분위기도 확산하고 있다. 최근 학계에서는 한국부동산원이 매주 발표하는 집값 통계는 집주인의 희망 가격인 호가와 조사원의 판단이 과도하게 개입된다는 이유로 폐지하자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정책 불신을 키운 주된 원인은 수요자들에게 미치는 영향이 큰 정책 결정일수록 ‘깜깜이’로 이뤄진다는 데 있다. 규제지역 지정 및 해제를 심의·의결하는 주정심의가 대표적이다. 어느 지역이 규제지역으로 묶고 풀리는지가 미리 유출되면 그 파장은 걷잡을 수 없기 때문에 주정심의 안건은 물론이고 위원 명단도 공개하지 않고 있다. 정부 결정에 신뢰를 회복하려면 철저한 사전 보안 유지뿐만 아니라 “왜 우리 동네만 규제하냐”고 불만을 제기하는 시장 참여자들을 납득시킬 수 있어야 한다.

주정심의 회의록과 서면 의결서 공개가 정책 신뢰를 높이는 현실적인 방안이 될 수 있다. 국토부는 2021년 12월 개정된 주택법에 따라 회의록과 서면 의결서를 작성해 보관하고 있지만, 위원들의 자유로운 발언을 위축시키고 시장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 때문에 공개하지 않고 있다. 위원 이름은 가리고 규제지역 지정 후 일정 기간이 지난 뒤 공개한다면 부작용은 크게 줄일 수 있을 것이다. 합리적인 기준과 타당한 근거는 제시하지 않고 “투기 우려가 있어 지정했다”는 식의 두루뭉술한 설명으로는 정부 입맛대로 규제지역을 결정한다는 불신을 해소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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