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빙하가 모두 녹으면 둘리는 뭘 타지?

  • 동아일보
  • 입력 2025년 2월 8일 01시 40분


◇빙하 곁에 머물기/신진화 지음/276쪽·1만8000원·글항아리


활주로의 끝, 빛이 반사된 그린란드의 빙상은 파도처럼 보인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아 적요로운 땅이다. 이곳에서 지구 열대화로 녹아 무너지는 빙하를 목도하며 기후 위기를 분석한 저자는, 명칭도 생소한 ‘빙하학자’다.

이 책은 국내 유일한 여성 빙하학자가 쓴 보고서이자 견문록, 성장일지다. 인터넷 동영상으로 범람하는 어떤 여행기보다 전문적이고 희귀한 데다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저자는 ‘냉동 타임캡슐’이라고 불리는 빙하를 통해 수천만 년 전 기후를 연구하는 과학자다. 책은 2023년 그린란드 국제 심부 빙하 시추 프로젝트에 한국 대표로 참가한 일화를 중점적으로 다룬다.

과학자답게 책은 빙하, 고기후, 극지 등의 정의를 짚으면서 시작된다. 남극 빙하를 탐사하면서 벌어지는 기후재난을 다룬 영화 ‘투모로우’, 빙하를 타고 서울에 왔다는 ‘둘리’ 등 친숙한 사례를 들며 비교적 이해하기 쉽게 풀어낸 것이 강점이다. 기후 위기라는 시한폭탄을 매일 조사하는 연구자로서 그 위급함을 전달하는 것도 잊지 않는다. 10만 년 주기로 4∼5도씩 오르내리던 지구 평균온도 변화를 200년 안에 달성하게 될 가능성을 제시한다.

세계적으로도 얼마 되지 않는 여성 빙하학자로서 겪는 어려움과 연대 의식도 눈길을 끈다. 저자는 각종 차별을 견디며 연구실에서 12년을 매진한 끝에 겨우 실제 현장에 올 기회를 얻어냈다. 해발고도 2700m 캠프에서 고산병에 시달리지만 “다른 한국인 여성 연구자들의 기회가 막힐까 봐” 물과 오렌지 주스를 마시면서 이겨낸다. 해외 여성 연구자의 도움으로 난도 높은 시료 채취 임무에 성공하기도 한다.

저자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통해 터득하는 삶의 지혜는 울림을 준다. “이산화탄소의 농도 데이터를 1000년 규모로 보는가, 80만 년 규모로 보는가에 따라 의미가 다르듯 매일 작은 성공과 실패가 반복되지만 인생 전체로 보면 작은 해프닝일지 모른다.”

#빙하학자#그린란드#기후 위기#여성 과학자#기후재난#극지 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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