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타냐후, 이란 대신 라파 때리기… “인질 구출” 지상군 투입 임박

  • 동아일보
  • 입력 2024년 4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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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美 강력 반대 이란과 전면전 자제
하마스와 전쟁에 사활 걸 것” 분석
지상전땐 팔 주민 추가 희생 불가피
이軍 공습에 라파 주민 19명 사망

베냐민 네타냐후 이스라엘 총리(사진)가 “팔레스타인 무장단체 하마스가 억류 중인 인질을 구출하기 위해 며칠 안에 하마스에 군사적 압박을 가하겠다”고 21일 밝혔다. 피란민이 밀집돼 있어 대규모 인명 피해가 날 것을 우려한 미국 등 국제사회의 강한 만류에도 가자지구 남부의 거점도시 라파에 지상군을 투입하겠다는 뜻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네타냐후 정권이 미국의 강한 반대에 ‘숙적’ 이란과의 확전을 자제하는 대신 상대적으로 만만한 상대로 여겨지는 하마스와의 전쟁에 사활을 걸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전쟁 장기화와 인질 구출 지연으로 벼랑 끝에 몰린 네타냐후 총리로서는 지지 기반인 극우 세력의 불만을 누그러뜨리고, 정치생명을 연장하기 위해 하마스 공세라도 강화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그 과정에서 팔레스타인 민간인이 추가로 희생되는 것은 불가피해 보인다. 영국 이코노미스트가 이스라엘과 이란의 갈등으로 애꿎은 가자지구 주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고 진단한 이유다.

● 네타냐후 “라파 지상전 강행” 시사

이軍, 지상전 앞두고 라파 공습 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족을 잃고 애통해하고 있다. 하마스 측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사망자 수가 3만4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라파=신화 뉴시스
이軍, 지상전 앞두고 라파 공습 21일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에서 주민들이 이스라엘 공습으로 가족을 잃고 애통해하고 있다. 하마스 측 가자지구 보건부는 이스라엘과 하마스 간의 전쟁 사망자 수가 3만4000명을 넘어섰다고 밝혔다. 라파=신화 뉴시스
네타냐후 총리는 이날 고대 유대민족의 애굽(옛 이집트) 탈출을 기념하는 ‘유월절’맞이 대국민 연설에서 “하마스가 우리의 모든 인질 석방 제안을 거절했다”며 “며칠 안에 하마스를 고통스럽게 타격하겠다. 인질 구출을 위한 유일한 방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는 “하마스가 국민을 힘들게 하고 우리 민족을 놓아주지 않고 있다”고도 했다. 과거 이집트 통치자 파라오가 유대 노예들을 가두고 풀어주지 않았던 상황을 현재 하마스의 인질 억류에 빗댄 것이다. 라파 지상전의 정당성을 확보하려는 행보로 풀이된다.

같은 날 현지 매체 타임스오브이스라엘은 헤르지 할레비 이스라엘군 참모총장이 남부사령부의 새 전투 계획을 승인했다고 전했다. 이스라엘군은 최소 4개 하마스 여단과 수뇌부가 라파 일대에 있는 만큼 반드시 이 지역에서 소탕 작전을 펴겠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네타냐후 총리에겐 라파 지상전이 이란과의 전면전을 강하게 반대하는 미국의 요구를 들어주면서도 국내 지지율을 올릴 수 있는 방안으로 꼽힌다. 아랍 매체 알아라비알자디드는 이란 공격을 실행하지 않는 조건으로 미국이 라파 군사작전의 수용 의사를 밝혔다고 18일 보도했다.

뉴욕타임스(NYT) 또한 19일 이스라엘의 이란 공격이 애초 계획보다 축소된 수준이라고 22일 전했다. 당초 이란 수도 테헤란 인근 등을 타격하려 했으나 미국 영국 독일 등의 만류로 무인기(드론) 공습 등에 그쳤다는 것이다.

최근 네타냐후 총리의 지지율 또한 상승세다. 20일 현지 매체 채널13 방송의 여론조사에 따르면 당장 총선을 실시한다면 네타냐후 총리가 이끄는 극우 연정의 예상 의석이 전체 120석 중 51석으로 나타났다. 지난해 11월 조사(41석) 때보다 10석 늘었다.

● 폭격으로 숨진 엄마 배에서 태어난 아기

제왕절개로 살린 아기…  엄마는 숨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공습으로 숨진 피란민 사브린 알 사카니 씨를 응급 제왕절개 수술해 태어난 조산아가
 21일 병원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있다. 가슴에 붙은 테이프에는 ‘순교자 사카니의 아기’라고 적혀 있다. 라파=AP 뉴시스
제왕절개로 살린 아기… 엄마는 숨져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가자지구 최남단 도시 라파 공습으로 숨진 피란민 사브린 알 사카니 씨를 응급 제왕절개 수술해 태어난 조산아가 21일 병원 인큐베이터 안에 누워 있다. 가슴에 붙은 테이프에는 ‘순교자 사카니의 아기’라고 적혀 있다. 라파=AP 뉴시스
라파 주민의 인도주의적 위기는 극한으로 치닫고 있다. 이스라엘이 지상전 개시에 앞서 연일 공습을 강화하고 있는 탓이다.

20일 이스라엘의 공습으로 임신 30주차였던 라파 주민 사브린 알 사카니 씨가 숨졌다. 응급대원들은 그의 시신을 속히 인근 병원으로 옮겨 응급 제왕절개 수술을 실시했다. 엄마 배 속의 여자 아기는 1.4kg으로 작게 태어나 현재 병원 인큐베이터에 있다. 아기 이름은 숨진 엄마의 이름을 따서 사브린 알 루로 지었다.

이날 공습으로 사카니 씨의 남편, 두 사람의 네 살 첫째 딸을 포함해 총 19명이 숨졌다. 현지 의사 모하마드 살라메 씨는 “최대 비극은 이 아기가 생명을 건지긴 했지만 부모를 모두 잃었다는 사실”이라고 AP통신에 개탄했다.

하마스 측 가자 보건당국에 따르면 지난해 10월 전쟁 발발 후 6개월간 가자에서만 3만4000여 명이 숨졌다. 이 중 3분의 2는 여성과 어린이다.


카이로=김기윤 특파원 pep@donga.com
김보라 기자 purple@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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