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인3역 오타니 드라마 ‘MVP 엔딩’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2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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日, 美 꺾고 WBC 세 번째 우승
선발투수-지명타자 뛰던 오타니… 마무리로 등장해 화려한 피날레
美트라우트와 꿈의 맞대결 승리… 볼보이 쓰담쓰담 인성도 큰 화제
삼진 당한 후 공에 사인해주기도… “日야구 ‘세계 최강’ 증명해 기뻐”

오타니로 시작, 오타니로 끝난 日 우승 오타니 쇼헤이(가운데)를 비롯한 일본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2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에서 미국을 3-2로 꺾은 뒤 
마운드에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소속팀 LA 에인절스와의 협의에 따라 당초 8강전까지만 투수로 등판할 예정이던 ‘이도류’
 오타니는 이날 9회초 마무리 투수로 나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한 점 차 승리를 지켰다. 마이애미=AP 뉴시스
오타니로 시작, 오타니로 끝난 日 우승 오타니 쇼헤이(가운데)를 비롯한 일본 야구 대표팀 선수들이 22일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결승에서 미국을 3-2로 꺾은 뒤 마운드에 함께 모여 기쁨을 나누고 있다. 소속팀 LA 에인절스와의 협의에 따라 당초 8강전까지만 투수로 등판할 예정이던 ‘이도류’ 오타니는 이날 9회초 마무리 투수로 나와 1이닝을 무실점으로 막고 한 점 차 승리를 지켰다. 마이애미=AP 뉴시스
일본 야구 대표팀의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는 9일 중국과의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조별리그 첫 경기에 선발투수 겸 3번 타자로 출전했다. 일본은 1회초 투수 오타니의 첫 투구로 대회를 시작했다. 22일 미국과의 WBC 결승전에 3번 지명타자로 선발 출전한 오타니는 9회초엔 마무리 투수로 마운드에 올랐다. 그리고 소속 팀 에인절스의 동료이자 미국의 슈퍼스타 마이크 트라우트를 헛스윙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대회를 끝냈다.

이번 WBC는 오타니로 시작해 오타니로 끝났다. 일본은 이날 미국 플로리다주 마이애미의 론디포 파크에서 열린 결승전에서 미국을 3-2로 꺾고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14년 만이자 통산 세 번째 우승이다. 일본은 2006년 제1회 대회, 2009년 제2회 대회 우승국이다. 역대 최강의 전력을 구축한 일본은 이번 제5회 대회에서 7전 전승으로 우승했다. 호화 멤버를 꾸린 디펜딩 챔피언 미국은 ‘마운드 파워’ 열세를 극복하지 못하고 타이틀 방어에 실패했다.

이날 9회초 오타니와 트라우트의 투타 맞대결은 대회 하이라이트이자 화려한 피날레였다. 일본이 3-2로 앞선 9회초 등판한 오타니는 선두 타자 제프 맥닐(뉴욕 메츠)에게 볼넷을 허용했다. 하지만 1번 타자 무키 베츠(LA 다저스)를 2루수 앞 병살타로 유도하며 위기에서 벗어났다. 그리고 트라우트가 타석에 들어섰다. 5년 동안 에인절스에서 한솥밥을 먹고 있는 두 선수의 투타 맞대결은 이날이 처음이었다. 오타니는 최고 시속 164km의 빠른 공으로 트라우트를 압박한 뒤 바깥쪽으로 휘어나가는 시속 140km짜리 슬라이더로 헛스윙 삼진을 잡아냈다. 자신의 손으로 ‘쇼타임’을 완성한 오타니는 글러브와 모자를 집어던지고 동료들과 함께 기쁨을 만끽했다.

점수를 먼저 뽑은 쪽은 미국이었다. 미국은 2회초 트레이 터너(필라델피아)의 솔로포로 선취점을 냈다. 일본은 2회말 무라카미 무네타카(야쿠르트)의 솔로 홈런으로 응수한 뒤 이어진 1사 만루 기회에서 라스 노트바르(눗바·세인트루이스)의 1루수 땅볼 때 3루 주자가 홈을 밟아 역전에 성공했다. 4회에는 오카모토 가즈마(요미우리)의 솔로 홈런으로 한 점을 더 달아났다. 미국은 8회 카일 슈워버(필라델피아)의 솔로포로 한 점을 따라붙었지만 전세를 뒤집지는 못했다.

투수와 타자를 겸하는 ‘투 웨이(two way)’ 오타니는 이번 WBC에서도 투타 모두에서 발군의 활약을 보여줬다. 투수 오타니는 세 경기에 등판해 2승 무패 1세이브, 평균자책점 1.86을 기록했다. 9와 3분의 2이닝을 던지는 동안 삼진 11개를 잡았다. 타자 오타니는 7경기에 모두 나서 타율 0.435(23타수 10안타), 홈런 1개, 2루타 4개, 8타점, 9득점을 기록했다. 대회 최우수선수(MVP)는 당연히 그의 차지였다.

결승전이 끝난 뒤 오타니는 “WBC는 내 야구 인생에서 항상 꿈꾸던 무대였다. 오늘 하나의 목표를 이뤘다”며 “MVP로 뽑혔지만 그보다는 일본 야구가 세계 어느 팀이든 이길 수 있다는 걸 증명해 기쁘다”고 말했다. 일본 대표팀 공식 트위터를 통해 공개된 오타니의 경기 전 라커룸 발언도 화제가 됐다. 오타니는 “미국 팀엔 폴 골드슈밋, 트라우트, 베츠 등 야구를 하는 이들이라면 누구나 알 만한 선수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 우리는 세계 1위를 위해 여기 왔다. 오늘 하루만은 동경하는 마음을 버리고 이기는 것만 생각하자”고 동료들에게 말했다.

오타니는 야구 실력뿐 아니라 인성도 대회 내내 관심을 끌었다. 팬과 동료 선수들에게 웃는 낯으로 대했고, 공을 가져다준 볼보이의 얼굴을 쓰다듬어 줬다. 자신을 삼진으로 돌려 세운 투수가 ‘삼진 공’을 내밀자 웃으며 사인해 줬다. 대부분의 선수가 본업이 따로 있는 체코 팀을 향해서는 ‘RESPECT(존경)’라는 글을 소셜미디어에 남겼다.

오타니 쇼헤이(왼쪽)가 22일 일본 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 축하 파티에서 팀 동료 라스 노트바르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마이애미=AP 뉴시스
오타니 쇼헤이(왼쪽)가 22일 일본 대표팀의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 우승 축하 파티에서 팀 동료 라스 노트바르와 승리를 자축하고 있다. 마이애미=AP 뉴시스
일본의 우승으로 끝난 이번 대회는 한국과 도미니카공화국의 1라운드 탈락에도 불구하고 ‘야구의 세계화’라는 목표에 한 발 더 다가섰다. 멕시코와 호주는 처음으로 각각 4강과 8강에 진출했다. 야구 변방으로 평가받던 체코에서는 모든 경기가 국영 TV를 통해 생중계됐다.

이번 대회에선 팽팽하게 이어진 명승부에 많은 팬이 열광했다. 21일 준결승에서 일본에 5-6으로 역전패한 멕시코의 벤지 힐 감독의 경기 후 발언이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일본이 결승에 올랐다. 하지만 오늘 밤은 야구라는 세계 자체가 승리한 날이다.”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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