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팀 되면 美日 깰 수 있어, 중요한 건 이기고자 하는 마음”[파워인터뷰]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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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만에 다시 입은 유니폼
‘국민타자’ 이승엽 두산 감독

‘국민타자’ 이승엽이 방망이 대신 지휘봉을 잡고 야구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7년 선수 유니폼을 벗은 지 6년 만이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소속 팀이 호주 시드니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지난달 26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유니폼을 다시 입으니 너무 
좋다. 나는 천생 야구인”이라고 했다. 두산 제공
‘국민타자’ 이승엽이 방망이 대신 지휘봉을 잡고 야구팬 곁으로 다시 돌아왔다. 2017년 선수 유니폼을 벗은 지 6년 만이다. 이승엽 두산 감독은 소속 팀이 호주 시드니에서 전지훈련 중이던 지난달 26일 전화 인터뷰를 하면서 “유니폼을 다시 입으니 너무 좋다. 나는 천생 야구인”이라고 했다. 두산 제공
역대 한국 야구를 통틀어 그보다 더 많은 홈런을 친 사람은 없었다. 한국 프로야구 467개, 일본 프로야구에서 159개의 공을 담장 너머로 보냈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등 각종 국제대회에서도 결정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해결사 역할을 해냈다. 선수 시절 그의 이름 앞에는 ‘국민타자’란 수식어가 붙었다.

2017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한 뒤 해설자와 자신의 이름을 딴 야구재단 이사장으로 야구와 인연을 이어 오던 그가 다시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익숙했던 삼성 라이온즈의 푸른색 유니폼 대신에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고서다. 선수가 아닌 지도자로 제2의 야구 인생을 시작한 이승엽 두산 감독(47)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호주 시드니 전지훈련 막바지에 본보와의 전화 인터뷰에 응한 그는 “선수 때보다 더 열심히 하겠다. 한 번 이 자리에 온 만큼 내가 가진 모든 걸 쏟아 부어 최고의 팀을 만들고 싶다”고 말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모처럼 유니폼을 입은 느낌이 새로울 것 같다.

“유니폼을 입으니까 너무 좋다. 나는 천생 야구인이었던 것 같다(웃음). 하루하루가 너무 빨리 지나갔다. 스프링캠프를 1월 29일 시작했는데 벌써 한국으로 돌아간다. 어서 빨리 시즌이 왔으면 좋겠다는 마음과 함께 좀 더 시간을 갖고 전력을 확실히 가다듬고 싶은 생각이 든다.”

―은퇴 후 “한 발 떨어져서 야구를 보니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던 기억이 난다. 예정보다 빨리 현장으로 돌아온 것 아닌가.

“화려해 보이는 선수 생활을 했지만 내심 힘든 때도 적지 않았다. 야구가 생각처럼 되지 않고, 팬들의 기대에 미치지 못할 때 마음고생을 좀 했다. 그래도 은퇴 후 5년을 쉬었다. 그 정도 쉬었으면 많이 쉬었다. 내 이름을 걸고 만든 야구재단도 이제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 무엇보다 내가 제일 잘할 수 있고, 제일 좋아하는 게 야구다.”

―돌아온 팀이 삼성이 아니라 두산이라 많은 팬이 놀랐는데….

“회장님(박정원 두산 구단주)이 직접 제안해 주셔서 사실 크게 고민할 게 없었다. 처음 식사 자리에서 감독직을 제안하셨을 땐 즉답을 드리지 못했다. 지도자로 보여드린 게 아무것도 없는데 잘할 수 있을지 나도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식사 자리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회장님이 다시 한 번 문자를 주셨다. ‘구단주가 직접 모시려 합니다’라는 메시지였다. 나를 믿어주는 곳으로 가야겠다는 생각과 함께 이 팀을 위해 내 모든 걸 바쳐야겠다는 결심을 하게 됐다.”

―은퇴 후 코치를 경험하지 않고 곧바로 감독이 됐다. 어떤 감독이 되려 하나.

“선수 때 여러 좋은 감독님을 모실 수 있었다. 일본에서 돌아온 뒤 만난 류중일 감독님은 제게 큰 믿음을 주셨다. 2013년 2군에 가야 할 정도로 부진했는데도 믿어주신 덕분에 더 큰 책임감을 갖고 이듬해 30홈런을 칠 수 있었다. 김성근 감독님에게서는 한계를 넘을 수 있는 절실함을 배웠다. 많은 선수가 무서워했던 김응용 감독님은 개인적으로는 너무 편한 분이었다. 내게 아무 말씀을 하질 않으셨다(웃음). 겉으론 무심해 보이지만 뒤로는 선수들을 엄청 챙기셨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됐다. 그리고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때의 김경문 감독님이 있다. 당시 대회 내내 부진했는데 김 감독님은 날 한 번 쳐다보지도 않고 믿고 내보내주셨다. 덕분에 일본과의 준결승에서 역전 홈런을 칠 수 있었다. 각각의 감독님들에게서 배운 좋은 점을 활용하고 싶다.”

―소통을 중시한다고 들었다. 캠프 내내 선수들에게 먼저 다가가는 모습을 보였는데….

“선수들에게 ‘항상 열려 있으니 문제가 있으면 언제든 찾아오라’고 했다. 캠프 중엔 이런 일도 있었다. 캠프 초반 한동안 ‘농군 패션’(스타킹을 밖으로 내어 신는 방식, 결의를 다지곤 할 때 사용한다) 차림으로 운동장에 나갔다. 선수 때도 야구가 잘 안 될 때 가끔씩 했던 방식이다. 그때 어떤 선수가 지나가길래 ‘내 농군 패션이 어떠냐. 솔직히 말해 달라’고 했더니 그 선수가 ‘감독님, 솔직히 잘 안 어울립니다’고 하더라. 그래서 바로 그날부터 스타킹을 내려서 신었다.”

―캠프 분위기가 상당히 좋았다. 실제로 안에서 경험한 두산은 어떤 팀인가.

“일단 선수들이 너무 성실하다. ‘열심히 하라’고 말할 필요가 없었다. 한 번도 언성을 높이거나, 인상을 쓴 적이 없었다. 팀의 베테랑이 된 김재호 김재환 허경민 정수빈 같은 선수들이 후배들을 독려하며 이끌어가는 걸 보면서 ‘정말 좋은 팀이구나’ ‘원 팀(One Team)’이란 게 이런 거구나 하는 걸 새삼 느꼈다. 작년엔 비록 9위를 했지만 그 이전 7년 연속 한국시리즈에 갔던 두산만의 힘을 느낄 수 있었다.”

―이승엽호의 두산은 어떤 야구 색깔을 보일지 궁금하다.

“나도 타자 출신이지만 타자들이 매일 펑펑 쳐서 이기기는 쉽지 않다. 야구는 결국 투수 싸움이다. 상황에 따른 야구를 할 수밖에 없다. 장타가 필요할 땐 큰 스윙을 주문할 것이고, 한 점 싸움일 때는 작전 야구나 뛰는 야구를 할 수도 있다. 치는 게 여의치 않으면 다른 방법을 찾아야 한다. 당장 몇 위를 하겠다고 구체적인 숫자를 말하긴 이른 것 같다. 팀을 잘 만들어서 작년보다는 훨씬 높은 곳을 가는 게 목표다.”

―이제 곧 2023 월드베이스볼클래식(WBC)이 개막한다.

“국가대표가 돼 태극마크를 단 유니폼을 입는 순간부터 나를 버려야 한다. 나보다는 우리를 먼저 생각해야 한다. 이번 WBC에 나가는 30명은 한국 야구를 대표하는 선수들이다. 물론 부담감이 있겠지만 큰 자부심을 가질 만하다.”

―대표팀에 선발된 두산 투수들(곽빈, 정철원)을 보내면서 ‘팔이 빠지게 던지고 오라’고 했다던데….

“대표팀에 합류한 순간부터는 우리 선수가 아니다. 대한민국의 곽빈이고 정철원이다. 물론 감독으로서 부상이 걱정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태극마크를 단 선수에게 ‘살살 하고 오라’고 얘기할 순 없지 않나. 두산은 남은 선수들이 잘하고 있을 테니 대표팀에만 집중해 최선을 다하고 오라고 했다.”

―이번 대회 한국 대표팀의 성적을 어떻게 예상하나.

“한국 프로야구는 이제 40년 정도 됐다. 100년 역사의 미국이나 80년 넘은 일본 야구와는 저변이나 수준 차가 날 수밖에 없다. 일대일로 붙으면 지는 게 당연하다. 하지만 30명이 모여서 하는 거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국제대회 같은 단기전에서 전력보다 더 중요한 건 팀워크와 이기고자 하는 마음이다. 야구는 특히 의외성이 많은 종목이다. 당일 컨디션과 경기 흐름에 따라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모른다. 우리도 최고의 선수들이 모였고, 하고자 하는 의지도 크기 때문에 좋은 승부를 할 수 있을 거라 본다.”

―선수로 출전했던 2006년 제1회 WBC와 베이징 올림픽 때 각각 4강과 우승이라는 성적을 거뒀다.

“2006년 WBC 때는 팀 분위기가 너무 좋았다. 당시 메이저리거이던 박찬호 선배와 국내파의 맏형 이종범 선배가 팀을 잘 이끌어줬다. 재밌게 연습하고 즐겁게 경기했다. 당시를 회상하면 좋은 기억밖에 없다. 베이징 올림픽 때도 마찬가지였다. 선수단 전원이 하나로 똘똘 뭉쳤다. 역대 국제대회에서 우리가 ‘원 팀’이 됐을 때는 항상 좋은 성적을 거뒀던 것 같다.”

―10일에는 한일전이 열린다. 일본과는 4강 이후에도 만날 수 있는데….

“멤버를 보니 다루빗슈 유(샌디에이고), 오타니 쇼헤이(LA 에인절스) 등이 포진한 일본의 투수력은 역대 최고인 것 같다. 하지만 전혀 주눅 들 필요 없다. 오히려 이기면 대박 아닌가. 선수 때 가장 듣기 싫은 말 중 하나가 편하게 하라는 말이었다. 그런데 나도 편하게 최선을 다하라고밖에 해줄 말이 없다. 결과는 하늘에 맡기고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좋은 경기를 했으면 좋겠다. 나도 마음으로 응원하겠다.”

이승엽 두산 베어스 감독
△ 대구(47)
△ 경북고-대구대-영남대 스포츠학 석사
△ 1995∼2003년 삼성
△ 2004∼2005년 일본 프로야구 지바롯데
△ 2006∼2010년 일본 프로야구 요미우리
△ 2011년 일본 프로야구 오릭스
△ 2012∼2017년 삼성
△ 2006, 2013년 WBC 국가대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국가대표
△ 2023년 두산 감독




이헌재 기자 uni@donga.com
#국민타자#이승엽#두산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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