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부 50년만의 최악가뭄, 산단 공장 교대로 스톱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3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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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부 50년만의 최악 가뭄]
작년 광주-전남 281일 ‘최장 가뭄’… ‘호남 생명줄’인 순천 주암댐 유역
2년새 축구장 678개 표면적 증발, 공업용수 부족… 공장 가동 줄여

흙바닥 드러낸 주암댐 상류… 2년 전엔 도로 앞까지 물 가득  지난달 28일 동아일보가 드론(무인항공기)으로 촬영한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주암댐 상류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하천이 바닥까지 드러났다. 이 댐에서 공업용수를 공급받아 온
 세계 최대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업단지와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국가산업단지는 가동에 비상이 걸렸다. 2020년 10월 
노란 점 지점에서 촬영된 사진에서는 댐에 물이 가득 차 있다. 불과 2년 4개월이 지난 최근 주암댐 저수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네이버 거리뷰 캡처
흙바닥 드러낸 주암댐 상류… 2년 전엔 도로 앞까지 물 가득 지난달 28일 동아일보가 드론(무인항공기)으로 촬영한 전남 순천시 승주읍의 주암댐 상류는 지난해부터 이어진 극심한 가뭄으로 하천이 바닥까지 드러났다. 이 댐에서 공업용수를 공급받아 온 세계 최대 석유화학단지 여수국가산업단지와 포스코 광양제철소가 있는 광양국가산업단지는 가동에 비상이 걸렸다. 2020년 10월 노란 점 지점에서 촬영된 사진에서는 댐에 물이 가득 차 있다. 불과 2년 4개월이 지난 최근 주암댐 저수율은 20%대까지 떨어졌다. 순천=박영철 기자 skyblue@donga.com·네이버 거리뷰 캡처
지난달 27일 전남 순천시 승주읍 상사호 상류. 주암댐으로 이어지는 푸른 물줄기가 있어야 할 자리에는 쩍쩍 갈라진 메마른 흙바닥만 보였다. 진흙과 자갈 사이로 말라비틀어진 수풀들이 누워 있었다. 물길은 유량이 적은 탓에 하나로 크게 흐르지 못하고 여러 갈래로 갈라졌다. 거대한 댐을 채워야 할 젖줄이 작은 개천 정도로 보였다.

남부 지역이 반세기 만에 최악의 가뭄을 겪고 있다. 지난해 광주 및 전남의 가뭄 일수는 281.3일로 1973년 기상 관측 이래 최장이었다. 가뭄 일수는 매년 12월 기준으로 집계한다. 올해는 1월 잠시 해갈되었다가 다시 일 강수량이 0.1mm 미만인 날이 늘어나면서 가뭄이 계속되고 있다.

주암댐은 호남 지역의 ‘젖줄’이자 ‘생명선’으로 불린다. 광주, 나주, 목포 등 전남 11개 지방자치단체의 식수원인 동시에 세계 최대 석유화학단지인 여수국가산단과 철강업체들이 모인 광양국가산업단지의 공업용수 공급원이다. 하지만 가뭄이 길어지며 이 젖줄이 말라가고 있다. 한국수자원공사의 위성사진 분석 결과 주암댐 유역의 수면 표면적은 최근 2년 새 축구장 678개 규모(약 4.84㎢)만큼 줄었다. 주암댐 저수율도 23.7%대까지 내려갔다. 장흥댐, 섬진강댐 등 인근 다른 댐들의 저수율도 20%대에 그치고 있다.

지역 시민들은 ‘물 확보’에 비상이 걸렸다. 본격적으로 비가 내리는 6월 장마철 전까지는 제한급수를 피하기 위해 물을 아껴 쓸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정과 상가는 절수 캠페인에 나섰고, 여수·광양산단 공장들은 생산 일정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지난해 1월만 해도 여수·광양산단은 하루 평균 75만8000t의 공업용수를 사용했다. 그러나 올해 1월에는 일평균 사용량이 70만7000t으로, 5만1000t이나 줄었다. 물 공급이 어려워지자 이에 맞춰 공장 가동을 줄인 것이다.

전문가들은 심각한 국지적 가뭄이 자주 발생할 수 있다고 우려한다. 한국뿐만 아니라 중국,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 곳곳이 이미 기후변화가 불러온 극심한 가뭄을 겪고 있다.

이주헌 중부대 토목공학 교수(국가 물관리위원)는 “최근 한국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가뭄과 폭우의 강도나 빈도가 과거의 기록을 깨고 있다”며 “이번 가뭄만 넘길 것이 아니라 해수 담수화나 하폐수 리사이클링 등 대체 수자원을 개발해 최소한 1년은 버틸 수 있는 비상대책에 투자해야 한다”고 말했다.

광주선 ‘댐 저수율 하락’ 재난문자… “이대로면 5월 제한급수”





〈上〉 말라버린 주암댐

‘저수율 22%’ 주암댐 바닥 드러나
주민들 물 확보 비상… 절수캠페인
영남도 가뭄단계 ‘관심→주의’ 격상
“일회성 아닌 장기대책 필요” 지적


“허공에 떠 있는 저게 바로 댐에 설치하는 부유물 차단막이에요. 원래는 수면 위에 떠 있으면서 쓰레기 같은 부유물이 떠내려오는 것을 막아줘야 하는데 지금은 물이 말라버려서….”

임경희 한국수자원공사 주암댐지사 운영부장이 주암댐 상류를 마치 빨랫줄처럼 가로질러 설치된 차단막을 가리키며 말했다. 지난해 봄까지만 해도 이곳에는 물이 가득 차 있었는데 1년 새 마르고 구불구불한 물길이 바닥을 드러낸 것이다.

● 공업용수 공급 차질에 산단 공장 가동 멈춰

주암댐은 호남 최대 규모의 다목적댐으로, 총저수용량은 7억700만 t에 달한다. 본댐(4억5700만 t)과 조절지댐(2억500만 t)으로 나뉜다. 보성강 물줄기와 이어진 주암댐 본댐은 광주를 비롯한 호남 서부 도시들의 주요 식수원이다. 그보다 규모가 작은 이사천을 물줄기로 하는 조절지댐은 여수 및 광양산단에 매일 최대 54만 t 규모의 공업용수를 공급해 왔다.


그러나 지난해부터 지속된 가뭄으로 식수원인 조절지댐의 저수율은 26%(2월 27일 기준)에 불과하다. 예년 같은 시기의 절반(52.9%)에도 미치지 못하고, 조만간 10%대로 떨어질 것으로 예상된다. 공업용수를 공급하는 본댐 역시 저수율이 22.4%에 그쳤다. 생활·농업·공업 용수 확보에 비상이 걸리면서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자율절수제도, 공장 정비 시기 조정, 댐 연계 운영 등 총력전을 벌이며 6월 장마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는 상황이다.

이날 조절지댐 수위는 해발 79.87m로 최근 30년간 평균치보다 13.9m가 낮았다. 댐 수위가 전체의 10% 수준인 ‘저수위’(60m)에 도달하면 댐이 정상적으로 기능하기 어려워진다. 물 공급에 차질을 빚으면서 여수·광양산단은 생산 일정을 조정하기 시작했다.

이곳 산단에는 포스코, 현대제철, LG화학, GS칼텍스, 롯데케미칼, 한화솔루션 등 대규모 제철 및 석유화학 공장들이 들어서 있다. 이들 기업은 올해 초 환경부, 한국수자원공사와 업무 협약을 맺고 정비 시기를 공동으로 조정하는 방식으로 전년 대비 용수 사용량을 10% 줄이기로 했다.

정비 작업을 하는 동안 공장 가동을 멈춰 그 기간 동안 공업용수 사용도 줄일 수 있기 때문이다. 한화에너지와 여천NCC는 지난달 공장 일부 가동을 일시 정지하고 정비를 실시했다. 포스코도 이미 일부 공장의 정비 일정을 앞당겨 실시했다. 이렇게 돌아가며 공장 가동을 멈추면 하루 1만8000 t 분량의 공업용수를 아낄 수 있다. 특히 포스코 광양제철소는 바닷물을 공업용수로 바꿔서 공급하는 시설인 해수 담수화 설비를 100% 가동해 하루 3만 t 정도를 확보하고 있다. 비용이 많이 드는 시설이지만, 부족한 용수 공급을 위한 자구책이다. 다음 달에는 GS칼텍스가 정비에 들어간다.

● 광주 아파트 수압 절반 ‘뚝’… 광주시 “물 아껴 달라” 호소
가뭄은 산단을 넘어 시민들이 사는 주택가까지 번졌다. 지난달 26일 광주송정역에서 나오자마자 길 건너편에 ‘시민의 생명 동복댐 고갈 위기’ ‘가뭄 극복 생활 속 20% 물절약 실천’ 등 문구가 적힌 현수막이 걸려 있었다.

광주시민 김강곤 씨(25)는 “얼마 전부터 아파트 수압이 절반으로 떨어졌다. 수돗물을 틀어도 이전보다 훨씬 적게 졸졸 나온다”고 말했다. 지난해 11월부터 올해 1월까지 광주시 공동주택 44만6947가구 중 약 53%가 ‘수압 낮추기’ 캠페인에 참여했다.

광주시 공무원들은 ‘샤워 시간 절반 줄이기’ ‘빨랫감 모아 세탁하기’ ‘양치 컵 사용하기’ 등 각종 캠페인을 벌이며 시민들에게 ‘물을 절약해 달라’고 호소하고 있다. 광주 남구에 사는 김영보 씨(34)는 최근 아파트 관리실에서 나눠 주는 벽돌을 받아 왔다. 변기 수조에 벽돌을 넣어 물 사용량을 조금이라도 아끼기 위해서다.

이 지역 시민들의 휴대전화에는 이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소식이 아니라 가뭄과 댐 저수율 소식이 ‘재난 문자’로 날아들고 있다. 이대로 가뭄이 계속되면 광주시에서는 5월 초 특정 시간에만 수돗물을 공급하는 제한급수가 실시될 수도 있다.

● 영남 등 남부 전체로 가뭄 확산, 앞으로가 더 걱정

가뭄은 호남을 넘어 남부 전역으로 전방위 확산하고 있다. 지난해 2월부터 올해 2월까지 전국 시도 평균 누적강수량은 1189.2mm로 평년의 90% 수준이다. 하지만 광주·전남 강수량은 평년의 66%에 그쳤다. 특히 영산강, 섬진강 유역의 누적강수량은 854.5mm로 평년의 61%에 불과하다.

부산, 대구 등 영남 지역에서도 연말부터 올 초 사이 낙동강 유역의 합천댐을 비롯해 안동댐, 영천댐의 가뭄 단계가 ‘관심’에서 ‘주의’로 격상됐다. 6월 초면 물 공급이 원활치 않은 저수위에 도달할 것으로 예상돼 제2의 주암댐 사태가 우려된다. 기상청은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후변화 영향으로 지역별 강수 편중이 심해졌다고 설명한다. 과거에는 약 5∼7년마다 전국에 가뭄이 찾아왔지만, 2012년 이후로는 해마다 일부 특정 지역에 심각한 가뭄이 발생하는 ‘국지적 가뭄’ 빈도가 높아졌다.

수자원공사 관계자는 “6월에도 비가 안 오면 물 공급이 제한되는 제한급수까지 갈 수 있다”며 “앞으로 이상기후로 인한 심한 가뭄이 더 자주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중장기적 대책 마련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순천=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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