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뇨 전 단계 방심 금물… 절반은 10년 이내 당뇨병 걸린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18일 03시 00분


코멘트

[베스트 닥터의 베스트 건강법]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한국인은 공복혈당 정상이라도 식후혈당에서 당뇨 전 단계 많아
식후 1∼2시간에 공복감 느껴지고 갈증-입 마름 증세 나타나면 의심
당뇨 전 단계 때 건강 관리하면 30%는 정상 수치로 회복 가능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 전 단계의 5∼10%가 1년 이내에, 절반은 10년 이내에 당뇨병에 걸린다며 사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뇨 전 단계일 때 잘 관리하면 10명 중 3명은 정상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 전 단계의 5∼10%가 1년 이내에, 절반은 10년 이내에 당뇨병에 걸린다며 사전 관리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당뇨 전 단계일 때 잘 관리하면 10명 중 3명은 정상을 회복한다는 것이다. 삼성서울병원 제공
당뇨병을 ‘조용한 살인자’라고 부른다. 여러 장기에서 합병증을 일으키며 심하면 사망에 이를 수도 있지만 뚜렷한 자각 증세가 없기 때문이다.

당뇨병 환자는 가파르게 증가하고 있다. 최근 들어 30, 40대의 젊은 환자들도 마찬가지로 크게 늘고 있다. 서구식 식습관이 자리 잡은 데다 운동 부족, 흡연, 스트레스 등 위험 요소는 더 많아졌기 때문이다.

이런 현실은 통계로도 입증된다. ‘201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는 320만 명이었다. 당시 조사에서는 당뇨병 환자가 2050년에 590만 명으로 늘어날 것으로 추정했다. 그러나 이 추정은 완전히 빗나갔다. ‘2020년 국민영양조사’ 결과 국내 당뇨병 환자가 이미 추정치를 훌쩍 뛰어넘어 605만 명에 이른 것이다.

당뇨병을 피할 방법은 없을까.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는 “당뇨병과 정상 사이의 구간, 그러니까 당뇨 전 단계일 때 철저히 대비하면 가능하다”고 말했다. 당뇨 전 단계에 나타나는 몸의 변화를 일종의 전조 증세로 인식하고 관리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당뇨 전 단계는 다른 말로 경계성 당뇨라고도 한다.
● “당뇨병 진단 기준부터 명확히 알아야”
건강 검진을 할 때는 보통 8시간 금식 후 공복혈당을 잰다. 만약 포도당의 양을 조절하는 기능이 떨어졌다면 공복혈당은 높게 나온다. 이 수치가 dL당 126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dL당 100mg 미만이면 정상이다. dL당 100∼125mg일 때가 당뇨 전 단계로 공복혈당장애라고 표현하기도 한다.

당뇨병을 진단하는 방법은 또 있다. 식후혈당을 측정하는 것이다. 어떤 식사를 하느냐에 따라 식후혈당이 달라질 수 있으니 집에서 측정하기는 어렵다. 보통은 병원에서 75g의 포도당을 먹고 2시간 지난 후 혈당을 측정한다. 그 수치가 dL당 200mg 이상이면 당뇨병으로 진단한다. dL당 140∼199mg이면 당뇨 전 단계다. 다른 말로는 내당능장애라고 한다. 이는 포도당 내성이 생겨 인슐린이 제 기능을 못 한다는 뜻이다.

한 가지 방법이 더 있다. 바로 당화혈색소다. 당화혈색소는 최근 2∼3개월 동안 당과 결합한 혈색소 수치를 말하는데, 보통 6.5% 이상이면 당뇨병, 5.6% 이하이면 정상이다. 5.7∼6.4%가 당뇨 전 단계다.

일반적으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로 진단되면 날을 정해 재검사를 한다. 보다 확실하게 진단을 내리기 위해서다. 만약 공복혈당은 정상인데 식후혈당에서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가 나왔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김 교수는 “한국인들은 공복혈당에서 정상으로 나오더라도 식후혈당에서 당뇨 전 단계로 나오는 사례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공복혈당이 정상치라고 해도 수치가 높게 나온다면 마음을 놓지 말라는 뜻이다. 세 가지 방법 중 하나만이라도 당뇨 전 단계가 나오면 본격적인 관리에 들어가야 한다.
● “당뇨 전 단계라 괜찮다고? 천만에”
당뇨 전 단계는 엄밀하게 말하면 질병에 걸린 상태는 아니다. 이 때문에 무시하고 넘어가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혈당 문제는 발생한다.

당뇨 전 단계일 때 이따금 혈당이 급속도로 높아진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췌장이 무리하게 움직인다. 이런 상황이 여러 번 발생하면 췌장의 인슐린 분비 기능이 떨어진다. 게다가 일단 약해진 췌장은 종전의 튼튼한 상태로 돌아갈 수 없다. 이 때문에 당뇨 전 단계 기간이 길수록 정상을 회복하는 속도와 비율이 낮다. 또한 나중에 심각한 당뇨병으로 악화될 경우 췌장암이 발생할 위험도 있다.

당뇨 전 단계일 때 무시했다가 당뇨병에 걸린 사람은 아주 많다. 김 교수에 따르면 당뇨 전 단계일 때 관리하지 않으면 5∼10%는 1년 이내에, 절반은 10년 이내에 당뇨병 환자가 된다. 하지만 이때 건강관리를 잘만 하면 30%는 정상을 되찾는다.

50대 직장인 김민석(가명) 씨는 회식이 잦았다. 더욱이 식사량도 많았다. 하지만 운동할 시간적 여유는 없었다. 체중은 계속 불었다. 그렇게 몇 년이 흘렀다. 피로감도 커지고 머리가 묵직할 때도 많았다. 건강 검진에서 당화혈색소가 7.5%로 나왔다. 피로감을 느꼈을 때 이미 당뇨 전 단계였지만 김 씨가 무시한 바람에 결국 당뇨병 환자가 된 것이다.

또 다른 50대 직장인 이정선(가명) 씨도 비슷하다. 10년 전 건강 검진에서는 혈당과 당화혈색소 수치가 모두 당뇨 전 단계였다. 이 씨는 아직 건강하다며 무시했다. 당뇨병 진단을 받은 후에도 이 씨는 약도 잘 먹지 않고, 운동도 하지 않았으며 술을 많이 마셨다. 그 결과 눈과 콩팥에 합병증이 발생했다. 이 씨는 뒤늦게 치료를 받기 시작했다.
● “금세 허기지면 당뇨 전 단계 의심”
당뇨병 전조 증세를 자각하기란 쉽지 않다. 다만 자세히 관찰한다면 당뇨 전 단계에서부터 미세한 변화를 찾을 수 있다. 대표적인 것이 식후에 나타나는 공복감이다.

누구나 식사 후에는 혈당이 오른다. 인슐린이 제 기능을 한다면 식후 5∼10분부터 높아진 혈당을 잡는다. 그러면 혈당은 서서히 떨어지고, 음식이 다 소화되는 3∼4시간 후에야 배가 고파진다.

당뇨 전 단계가 되면 인슐린의 기능이 떨어지면서 반응 속도가 느려진다. 뒤늦게 인슐린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혈당은 급격하게 떨어진다. 천천히 올라갔다가 천천히 떨어지는 게 아니라 급격하게 올라갔다가 뒤늦게 빠른 속도로 떨어지는 것이다. 주로 탄수화물 위주의 식사를 했을 때 식후 1∼2시간 무렵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

때로는 갈증이 심해지고 입이 마르기도 한다. 물론 땀을 흘렸거나 식후 3∼4시간이 지난 후에 나타나는 목마름은 혈당과 관련이 없다. 만약 식후 1∼2시간 후에 허기짐이나 갈증, 입 마름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검사를 하는 게 좋다.

무기력증과 피로감도 당뇨 전 단계일 때 많이 나타나는 증세다. 평소 없었던 증세가 갑자기 나타날 수 있다. 50대 A 씨는 공복감과 피로감 외에 손 감각이 무뎌지는 증세가 나타났다. 검사 결과 공복혈당은 정상이었지만 당화혈색소가 5.9%, 식후혈당이 dL당 190mg이었다. 내당능장애였던 것이다. 3개월 동안 식이요법과 운동을 병행하고 식후혈당을 정상 범위까지 떨어뜨린 후에야 손 무딤 증세가 사라졌다.

40대 B 씨는 손이 덜덜 떨리고 식후 졸림 증세가 심해졌다. B 씨는 면이나 떡을 특히 좋아하는데, 이런 음식을 먹고 나면 증세가 더 심해졌다. 김 교수는 “식은땀, 두통 등의 증세를 호소하는 사람들도 있다. 주로 탄수화물 식사를 하고 난 후 이런 증세가 나타난다면 당뇨병 혹은 당뇨 전 단계를 의심하는 게 좋다”고 말했다.
● 당뇨 전 단계에 맞는 식사-운동법
양질의 단백질 섭취가 중요하다. 탄수화물로 된 음식이나 과일을 줄여야 한다. 당뇨와 무관하다면 식사의 70∼80% 정도가 탄수화물인데, 50% 정도까지 줄이는 게 좋다.

식사는 천천히, 규칙적으로 해야 한다. 끼니를 건너뛴다면 다음 식사 때 많이 빨리 먹게 된다. 혈당이 급격히 올라갈 수밖에 없다. 당뇨 전 단계일 때부터 하루 세 끼를 느긋하게 먹자.

혈당을 급격히 올리는 음식은 피해야 한다. 국물도 혈당을 올리기 때문에 적게 먹는 게 좋다. 주스도 마찬가지다. 그 대신 과일을 씹어 먹는 게 좋다.

당연히 운동도 필수다. 유산소 운동과 근력 운동 모두 포도당을 에너지원으로 사용하기 때문에 식후 올라간 혈당을 낮추는 데 도움이 된다. 가급적 근력 운동을 하는 게 좋다. 근육이 늘어나면 포도당의 저장 공간이 그만큼 늘어나기 때문이다.

김 교수는 “대체로 1주일에 150분의 유산소 운동을 나눠서, 이틀 간격으로 해 주는 게 좋다”고 말했다. 근력 운동은 얼마나 해야 할까. 구체적으로 횟수나 시간에 대한 의학적 연구 결과는 그리 많지 않은 편이다. 김 교수는 “식후 혈당이 1∼2시간 사이에 최고조로 올라간다”며 “따라서 식후 30분에서 1시간 사이에 근력 운동을 해 주는 것이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당뇨병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 수칙
● 식사는 가급적 양질로, 하루 세 번, 천천히 한다.
● 채소와 샐러드, 단백질, 탄수화물 순서로 식사한다.
● 탄수화물을 줄이되 극단적으로 끊지는 않는다.
● 일상 생활에서 활동량을 늘리고, 가급적 운동을 한다.
● 운동은 식후 30분∼1시간 정도 집중적으로 한다.
● 50분 앉아 있다면 10분은 반드시 일어나서 움직인다.
● 40세 이후에는 정기적으로 혈당을 측정한다.

자료: 김규리 삼성서울병원 내분비내과 교수


김상훈 기자 corekim@donga.com
#당뇨병#조용한 살인자
  • 좋아요
    0
  • 슬퍼요
    0
  • 화나요
    0
  • 추천해요

댓글 0

지금 뜨는 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