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이 희곡 읽으며 타인-세상과 마주하길”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2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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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삼식,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출간

최근 첫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를 낸 극작가 배삼식.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최근 첫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를 낸 극작가 배삼식. 장승윤 기자 tomato99@donga.com
“4, 5년 전 ‘어린이용 희곡을 써달라’는 출판사 제안에 손사래를 쳤어요. 써본 적이 없으니까요. 그런데 막상 글을 쓰기 시작하자 노래 부르듯 즐거워 며칠 만에 끝을 봤습니다.”

책 ‘훨훨 올라간다’. 비룡소 제공
책 ‘훨훨 올라간다’. 비룡소 제공
지난달 어린이용 희곡 그림책 ‘훨훨 올라간다’(비룡소)를 출간한 극작가 배삼식(53)의 목소리는 나직해서 한적한 호수를 마주한 것 같았는데, 때론 세찬 여울처럼 흘렀다. 말의 음악적 요소를 강조해 노래극에 가까운 희곡 ‘훨훨 올라간다’와도 닮아 있었다. 1일 서울 종로구 동아미디어센터에서 만난 배 작가는 “우리말은 풍부한 음악성이 특징”이라며 “판소리 사설을 읽거나 식당, 지하철에서 대화를 들으며 살아있는 단어를 꾸준히 수집한다”고 했다.

‘훨훨 올라간다’는 전북 진안의 마이산 설화를 재창작한 동화다. 먼 옛날 큰 죄를 지은 하늘나라의 부부가 이 땅으로 추방돼 오랜 세월 마이산으로 살았다. 다시 하늘로 돌아가려던 순간 마을의 아가씨에게 목격돼 그 자리에 얼어붙고 말았다. 배 작가는 이 설화를 ‘태초의 남매’가 하늘로 떠나려는 산을 붙잡는 이야기로 탈바꿈시켰다.

집필의 동기는 고등학생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고향인 전북 전주에서 주말이면 시외버스를 탔고, 마이산에 올라 숨통을 틔웠다. 그는 당시 들은 마이산 설화에 매료돼 오래 마음에 간직하고 있었다고 했다. 그즈음 지역 대학 동아리의 ‘고도를 기다리며’를 통해 연극을 처음 접했다. 배 작가는 “무대 장치는 허술했지만 그 공백을 상상으로 메우며 환상적인 경험을 했다”며 “연극은 익숙해지는 데 시간이 필요한 장르인 만큼 아이들이 일찍, 쉽게 접하길 바라는 마음으로 책을 썼다”고 했다.

25년간 번역극과 창작극, 마당놀이 등 영역을 넘나들었고 동아연극상을 비롯해 각종 희곡상을 휩쓴 그이지만 처음으로 쓰는 어린이용 책은 만만찮은 도전이었다고 한다. ‘쉽고 분명하면서도 울림을 잃지 않아야’ 하기 때문. 그는 “집필 준비 기간 북유럽 작가 이보나 흐미엘레프스카 등의 동화책을 읽으면서 존경스럽다고 느꼈다”고 했다.

‘수백 개의 단어를 품은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는 배 작가의 스타일은 이번 책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책 속엔 “나무들은 푸른 이불 잠든 산을 덮어주네” 등 직관적이면서도 아름답고,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한 함의를 담은 문장들로 가득하다. “들판 가득 웅성웅성 수런수런 두런두런” 등 의성어와 의태어를 다채롭게 썼고, 책 뒤편에는 아이들이 연극을 할 때 쓸 수 있는 종이인형 부록을 실었다. 배우들의 목소리 연기도 QR코드로 담았다.

‘훨훨 올라간다’는 작곡가와 협의를 거쳐 1년 후 노래극으로 무대에 올릴 계획이다. 방방곡곡 학교를 찾아 공연하는 것이 목표다. 배 작가는 타인과 부대끼는 경험이 적어진 요즘 아이들이 희곡을 소리 내 읽으며 세상과 마주하길 바란다고 했다.

“사람은 태생적으로 다른 존재를 흉내 내면서 자기 자신과 세상을 인식합니다. 점점 외로워지는 아이들이 역할놀이를 통해 세상과의 관계를 미리 경험하고 단단해질 수 있도록 도와야 해요. 희곡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이지윤 기자 leemail@donga.com
#배삼식#어린이용 희곡 그림책#훨훨 올라간다#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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