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U 탄소관세, 韓에 5300억 추가부담”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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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세대 연구팀 국내산업 피해액 추산

유럽연합(EU)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가 2026년 본격적으로 시행되면 철강 알루미늄 등 우리 산업계가 일종의 ‘탄소 관세’로 연간 약 5309억 원을 부담해야 할 것이라는 연구 결과가 발표됐다. CBAM이 ‘유럽판 인플레이션감축법(IRA)’이 될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는 가운데 정부와 기업의 선제 대응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조하현 연세대 경제학부 교수팀은 지난해 12월 ‘동서연구’에 발표한 ‘EU와 미국의 탄소국경조정제도: 한국에 대한 영향을 중심으로’에서 CBAM 도입으로 인한 우리 산업계의 피해액을 추산했다. 그 결과, 철강 유기화학 플라스틱 알루미늄 시멘트 등 CBAM 대상 5개 산업에서 연간 약 5309억 원을 추가 부담해야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CBAM은 EU가 수입하는 제품의 생산·제조 과정에서 발생하는 탄소배출량에 따라 EU의 탄소배출권거래제(ETS)와 연동된 일종의 추가 관세를 부과하는 제도다. 상대적으로 탄소배출 규제가 엄격한 EU 내 기업을 보호하는 관세 장벽인 동시에 전 세계적으로 탄소 배출을 경감시키려는 정책인 셈이다. 철강 알루미늄 등 탄소 배출이 많은 5개 업종이 우선 대상이다.

올해 10월 시범 도입되는 CBAM이 2026년 본격 시행되면 EU 수입업자는 수입품 1t당 탄소배출량에 상응하는 탄소배출권을 구매해야 한다. EU 수입업자들이 이를 구매한 비용은 우리 수출 기업에 전가될 가능성이 크다. 수출 기업에 직접 구매 비용을 부담하도록 요구하거나, 구매 비용이 가격에 반영되면서 수출 경쟁력이 떨어질 수 있다.

가장 피해가 큰 품목은 공정 과정에서 탄소 배출이 많은 철강으로 약 3620억 원을 추가로 부담할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철강업계의 2017∼2019년 대(對)EU 평균 수출액의 약 10%에 달하는 규모다. 사실상 같은 제품의 가격이 10% 오르는 셈이다.

이어 유기화학(937억 원), 플라스틱(742억 원), 알루미늄(10억 원), 시멘트(2000만 원) 순으로 추가 부담이 예상됐다. 한국은 전력 생산에 주로 탄소배출량이 많은 석탄을 사용하고 있어 기업 부담이 더욱 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번 시뮬레이션은 지난해 상반기(1∼6월) 최신 탄소배출권 가격과 EU 입법안의 수입품목별 코드를 적용해 기존 연구보다 정확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시뮬레이션 결과는 우리 정부의 비공식적인 추산과도 근접한다. 정부는 공개하지 않고 있지만 내부적으로 우리 기업들의 부담액이 최소 600억 원, 최대 5000억∼6000억 원이 될 것으로 잠정 추산한다. 환경부 관계자는 “EU 기업마다 탄소국경조정제도 부담액을 부과하는 방법이 다를 것으로 예상돼 아직 (추산치의) 편차가 크다”고 말했다.

다만 EU 수입업자들이 구매해야 하는 탄소배출권 가격은 지속해서 상승하고 있어 갈수록 CBAM으로 인한 피해액은 더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 EU의 탄소배출권 가격은 현재 탄소 1t당 80∼90유로 선(약 10만8000∼12만1000원)인데 2018년(t당 7.83유로)보다 10∼11배가량 뛰었다. 더욱이 EU에 이어 미국에서도 지난해 6월 CBAM과 유사하게 수입품에 탄소세를 물리는 ‘청정경쟁법안(Clean Competition Act)’이 상원에서 발의됐다. 미국은 아직 유럽처럼 탄소배출권거래소 시스템이 정립되지 않아 당장 통과될 가능성은 낮지만, 만약 이 법안까지 통과되면 우리 기업들의 피해가 더 늘어날 것이 우려된다.

이달 환경부는 CBAM 관련 전담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기업의 탄소배출량 산정 지원과 EU의 입법 동향을 공유하는 등 산업계와 소통을 정례화했다. 박호정 고려대 식품자원경제학과 교수는 “우리나라에서는 EU보다 전기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엄격하게 탄소 비용을 내도록 하고 있다”며 “이처럼 기존에 지불하고 있는 ‘탄소 비용’을 정부와 기업이 회계적으로 정리해 EU에 소명할 경우, 합리적인 탄소 비용으로 인정받은 만큼 추가 관세를 감면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장기적으로는 신재생에너지와 저탄소 관련 기술에 적극적으로 투자하는 등 큰 틀에서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김예윤 기자 yeah@donga.com
#유럽연합#탄소국경조정제도#탄소관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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