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야 할 것은 현재와 미래… 과거에 연연말라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2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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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시를 영화로 읊다]〈52〉 아! 그리운 옛날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은 파산 후에도 화려했던 삶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벤트 디 제공
영화 ‘블루 재스민’에서 재스민은 파산 후에도 화려했던 삶에 대한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인벤트 디 제공
우디 앨런 감독의 ‘블루 재스민’(2013년)에서 재스민은 동생 집에 얹혀사는 처지가 되어서도 과거 뉴욕에서의 호화로운 삶을 잊지 못한다. 명말청초 장대(1597∼?) 역시 자신의 장원(莊園)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한 뒤에도 풍요롭던 옛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영화와 달리 시인의 처지는 시대의 격변과 관련이 깊다. 그는 강남의 산음(저장성 샤오싱)에서 집안의 장서(藏書)와 경제력을 바탕으로 학자로서 풍족하게 살았다. 하지만 명나라가 멸망한 뒤 모든 것을 잃고 산속에 은둔하게 된다. 이때 시인은 왕조 교체 뒤 세상을 등진 채 고결한 가치를 지켰던 도연명에 대한 존경의 표현으로 ‘도암(陶庵)’이란 호를 스스로 짓고 도연명의 시에 화답하는 시를 쓰기 시작했다. 위 시에서는 가난을 주제로 희망 없는 가을 반딧불이의 상황에 자신을 투영했다.

그 무렵 시인은 행복했던 과거에 대한 모든 감각을 되살려낸 ‘도암몽억(陶庵夢憶)’이란 책을 썼다. 재스민이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뉴욕 시절의 고급 맨션과 상류층 파티를 떠올렸다면 시인은 매화 가득한 서재, 훌륭한 공연과 아름다운 여배우에 대한 기억이 자신의 삶을 소멸의 구렁텅이에서 구해낼 수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시인은 옛 시절에 대한 미련이 허망한 것임을 잘 알고 있었다. 도암몽억 서문에선 두 종류의 꿈을 예로 든다. 하나는 지고 가던 술독을 깨버린 짐꾼이 “꿈이라면 좋으련만!”이라고 하는 꿈이고, 다른 하나는 가난한 선비가 향시(鄕試)에 합격한 뒤 축하 잔치에서 “꿈은 아니겠지?”라고 황홀해하는 꿈이다. 시인은 똑같은 꿈인데 누군가는 걱정하며 꿈이길 바라고 누군가는 꿈일까 두려워한다며 똑같이 어리석은 일이라고 평했다. 자신 역시 한바탕 꿈에 불과한 옛 시절에 연연하는 잠꼬대 같은 글을 쓰고 있다고 탄식했다.

영화 마지막에 재스민은 행복했던 시절 들었던 노래 ‘블루문’을 떠올려 보지만 가사가 기억나지 않는다. 기억하지 못하는 것도 안타깝지만 추억에만 집착하면 마음의 병이 된다. 희망 없는 현실이라 할지라도 살아가야 할 것은 현재와 미래다.


임준철 고려대 한문학과 교수
#현재와 미래#블루 재스민#마음의 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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