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수연 삶 닮은 스토리, 내겐 운명이었다”

  • 동아일보
  • 입력 2023년 1월 19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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故강수연 유작이 된 영화 ‘정이’ 연상호 감독
22세기 배경 ‘한국형 SF’ 작품
내일 넷플릭스 통해 전세계 공개

영화 ‘정이’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을 만드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맡은 고 강수연. 넷플릭스 제공
영화 ‘정이’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을 만드는 크로노이드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맡은 고 강수연. 넷플릭스 제공
고 강수연 배우(1966∼2022)의 유작 ‘정이’가 넷플릭스를 통해 20일 전 세계에 동시 공개된다. ‘정이’는 좀비 영화 ‘부산행’(2016년)과 넷플릭스 드라마 ‘지옥’(2021년) 등 독창적인 작품으로 유명한 연상호 감독(45·사진)이 새롭게 도전하는 한국형 공상과학(SF) 영화다. ‘정이’에서 인공지능(AI) 로봇을 만드는 연구소 팀장 서현 역을 맡은 강수연에게는 ‘주리’(2013년) 이후 10년 만의 스크린 복귀작이지만 그는 완성된 작품을 보지 못한 채 지난해 눈을 감았다.

영화의 배경은 22세기. 인류는 급격한 기후변화로 폐허가 된 지구를 떠나 우주 궤도에 만든 피난처 ‘셸터’에서 산다. 하지만 내전이 벌어지자 로봇 개발 회사 ‘크로노이드’는 식물인간이 된 전설적 용병 정이(김현주)의 뇌를 복제해 최고의 전투 AI 로봇을 만들기 위한 실험을 한다.

강수연이 연기한 서현은 정이의 딸이기도 하다. 서현은 정이의 명예를 회복시키기 위해 연구에 열중하지만 연구소장 상훈(유경수)과 직원들은 정이를 소모품처럼 대한다. 정이의 뇌가 반응하는 부위를 보기 위해 일부러 다리에 총상을 입히고 팔을 잘라버린다. 정이의 모습과 뇌 데이터를 그대로 갖고 있는 AI는 실험이 거듭될 때마다 비명을 지른다. 서현은 이를 고통스럽게 지켜보다 정이에게 자유를 주기로 결심한다. 서현이 정이를 보내주며 건네는 말은 “제발 편하게 눈 감으세요” “이 세상 모든 행운이 함께하길”. 강수연이 관객의 눈을 바라보며 내뱉은 마지막 대사다.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18일 만난 연 감독은 서현 역에 강수연을 캐스팅한 이유에 대해 “영화를 기획할 때부터 (관객이) 눈물을 흘릴 수 있는, 소위 신파라 불리는 고전적인 한국 멜로와 SF 장르를 결합시키면 좋겠다고 생각했다”며 “그 과정에서 강수연 배우의 고전적이고 우아한 톤의 연기가 떠올랐다”고 밝혔다. 강수연이 SF물에 출연한 것은 처음이다. 연 감독은 강수연과의 첫 만남을 회상했다. 그는 “강수연 배우가 제가 기억하던 모습과 너무 많이 달라졌으면 어떡하나 걱정했는데 ‘로커’처럼 아주 멋있게 등장했다”며 “그를 본 순간, 영화 구상이 더욱 구체화됐다”고 말했다.

연 감독은 아이콘이자 상품으로 소비되다 마침내 해방되는 정이의 모습에서 4세에 아역배우로 데뷔해 평생을 영화인으로 살다 간 강수연이 보인다고 했다. 연 감독은 “강수연 배우가 촬영 때 ‘아주 어린 나이에 배우 활동을 시작해 평범한 어린 시절이 없었다’는 이야기를 곧잘 하곤 했다”며 “지나고 보니 정이의 이야기가 마치 강수연 배우의 이야기 같기도 해서 제겐 운명 같은 영화가 됐다”고 말했다.

영화는 ‘한국형 SF’라는 타이틀답게 여러 장면에 화려한 컴퓨터그래픽(CG)을 입혔지만, 속살은 익숙하게 다가온다. 딸을 향한 엄마의 희생과 엄마를 향한 딸의 지극한 사랑이다. 영화는 ‘인간성이 인간만의 것인가’라는 질문도 던진다. 연 감독은 “낯선 SF물이지만 관객이 편하고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면서도 주제가 뚜렷한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고 했다.


최지선 기자 aurinko@donga.com



#강수연 유작#정이#연상호 감독#한국형 s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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