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플의 중국 사랑, 쉽사리 깨지지 않을 이유[딥다이브]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2월 14일 09시 00분


코멘트
‘애플이 ‘탈 중국’에 속도 낸다.’ 정저우 폭스콘 공장이 코로나 봉쇄 여파로 대혼란에 빠지면서 이런 분석이 많이 나왔습니다. 애플이 인도와 베트남으로 생산라인을 더 많이 옮겨갈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데요.

그런데 애플과 중국, 그 관계가 보통 깊은 게 아닙니다. 그렇게 쉽게 결별하고 딴 나라에 공장 차리면 그만인 사이가 아니라는 거죠. 애플은 어쩌다가 중국과 그렇게 끈끈한 사이로 엮인 걸까요. 애플은 ‘탈 중국’을 진짜로 할 수 있을까요. 애플과 중국, 그리고 팀 쿡 CEO 이야기를 들여다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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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혼란 난장판 폭스콘 공장
2014년 폭스콘 정저우 공장을 찾아갔던 팀 쿡 애플 CEO. 팀 쿡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던 사진이다.
2014년 폭스콘 정저우 공장을 찾아갔던 팀 쿡 애플 CEO. 팀 쿡이 자신의 트위터에 올렸던 사진이다.
10월엔 노동자들이 공장을 집단 탈출해 텅 빈 고속도로를 걸어 집으로 돌아가더니, 11월엔 수당 불만으로 시위를 벌인 노동자들이 경찰과 충돌해 유리창을 박살냈습니다. 아이폰 세계 최대 생산기지 폭스콘 정저우 공장의 혼란상, 익히 기사로 봐서 알고 계실 텐데요. 이로 인해 애플 아이폰 출하물량이 11~12월 900만대나 줄어들 거란 전망(모건스탠리)까지 나옵니다. 4분기 예상 생산량에서 10% 넘게 차질이 생긴 겁니다.

최근 나온 소식은 중국 정부가 방역정책을 완화한 게 폭스콘 때문이라는 것. 궈타이밍 폭스콘 창업자가 한달 전 중국 관료에 ‘엄격한 방역이 세계 공급망 속 중국 지위를 위협할 거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중국 정부 태도가 바뀌었다는 건데요. 그만큼 폭스콘과 애플이 중국 경제에서 차지하는 위상이 남다르단 뜻이겠죠. 하긴 폭스콘 정저우 공장의 임직원만 30만 명에 달하고, 인근 협력업체까지 다 합치면 직간접적으로 창출한 일자리가 100만 개가 넘을 거라고 합니다(중국 인민일보 보도 기준).

애플은 이번 사태로 화들짝 놀랐나 봅니다. 중국 말고 다른 나라, 특히 인도와 베트남으로의 생산시설 이전을 더 서두르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하죠. 언뜻 보면 아이폰 조립 공정은 노동집약적 산업이니, 중국보다 임금이 싼 인도∙베트남으로 가는 게 맞는 방향이긴 한데요.

잠깐. 여기서 우리가 들여다 봐야할 게 있습니다. 왜 애플은 그동안 제조를 중국에 그렇게까지 의존해 왔을까요. 중국이 값 싼 노동력을 가진 세계의 공장이라서? 글쎄요. 정말 그렇게 단순한 이유일까요?
캘리포니아와 중국의 공생 관계
애플 아이폰14의 80%, 아이폰14프로는 85%가 폭스콘 정저우 공장에서 생산된다. 애플 홈페이지
애플 아이폰14의 80%, 아이폰14프로는 85%가 폭스콘 정저우 공장에서 생산된다. 애플 홈페이지

‘Designed by Apple in California, Assembled in China’

아이폰을 사면 상자 뒷면에 이런 문구가 적혀있다고 합니다. 이걸 보면 어떤 제조 과정이 떠오르시나요. 우주선 모양으로 유명한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애플 본사에서 미국 디자이너들이 설계한 차세대 아이폰 도면을 공유폴더에 딱 올려주기만 하면, 폭스콘 정저우 공장에서 빼곡히 앉아 일하는 수십 만명의 저임금 중국 노동자들이 그걸 보고 마치 로봇처럼 조립을 시작하는 모습을 상상하시나요.

‘Assembled in China’라는 문구엔 생각보다 훨씬 많은 작업이 포함됩니다. ‘아이폰은 캘리포니아에서 설계되고 중국에서 만들어지던 제품에서 양국이 함께 만드는 제품으로 바뀌었다’(뉴욕타임스)는 말이 나올 정도이죠.

예를 들어 애플의 신제품소개(NPI) 작업은 중국에서 이뤄집니다. NPI란 도면이나 프로토타입으로만 존재하는 제품을 실제로 제조할 수 있도록 상세한 계획을 만들어내는 건데요. 이걸 하려면 수천 개의 부품 공급업체가 집약돼 있는 생태계가 필요합니다. 딱 맞는 최적의 부품을 찾아내려면, 다양한 부품을 바로바로 공급 받아야 하니까요. 하루에도 여러 번 부품을 들고 왔다갔다 할 정도의 가까운 거리가 필요하죠.

인도에서 NPI를 하기 위해 중국 부품업체 부품을 항공기로 받는다? 이런 건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왜냐면 아이폰은 매년 신상품을 출시해야 하니까요! 아이패드와 아이맥도 꾸준히 업데이트 해야 하고요. ‘애플은 엔진을 교체하면서 비행기를 계속 비행해야 한다’는 게 월스트리트저널의 설명입니다. 신제품 출시 시기를 맞추려면 단 몇시간도 허투루 쓸 수가 없죠.

방대한 부품업체 생태계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인도나 베트남에서 부품업체를 구하면 되지 않느냐고요? 그게 쉽지 않다는 걸 알려주는 사례가 있습니다. 애플은 2013년 미국 텍사스 오스틴 공장에서 ‘맥 프로’ 컴퓨터를 생산을 시작했는데요. ‘애플이 미국에서 만드는 유일한 제품’이란 상징성이 컸죠. 그런데 맥 프로 생산은 초기에 몇 달이나 지연됐습니다. 이유 중 하나는 나사가 부족해서였습니다. 당시 미국엔 작은 나사를 그렇게 대량으로 생산해낼 공장이 없었던 겁니다. 결국 애플은 부랴부랴 중국에 나사를 주문해서 들여오느라 시간을 허비했죠. 중국 밖으로 생산시설을 이전한다면 (심지어 그게 미국이라 해도) 이런 문제들에 직면할 걸 각오해야 할 겁니다.

단지 부품업체 수가 많다 적다, 또는 가격이 싸다 비싸다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더 큰 문제는 기술입니다. ‘나사 같은 부품 만드는 데 무슨 대단한 기술이 필요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론 그렇지가 않습니다. 팀 쿡 애플 CEO는 여러 차례 인터뷰에서 “중국에서 제조하는 건 비용이 아닌 기술 때문”이라고 밝혔는데요. 그의 설명은 이렇습니다.

애플 제품엔 정말 고급 ‘툴링(제품별 최적의 가공조건을 구성해주는 것)’이 필요하고, 툴링 기술은 중국이 매우 뛰어납니다. 미국에서 툴링 엔지니어 회의를 한다면, (엔지니어 수가 적어서) 그 자리를 채울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에서 한다면 축구장 여러 개를 채우겠죠.”(2017년 포춘 글로벌 포럼)

‘중국 노동자 기술력이 미국보다 우수하다’는 식의 이런 발언을 선뜻 받아들이기 어려울 순 있는데요. 적어도 애플이 필요로 하는 제조 기술에 있어서는 그렇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실제 텍사스 오스틴 공장을 가동했을 때 애플은 가전제조사가 아닌 코스트코 할인매장 등에서 일했던 사람들을 신규 직원으로 채용해야 했다는데요. 매뉴얼을 무시하고 부품나사를 반대로 끼우는 등 엉망이어서 초기 결함률이 엄청 높았다고 합니다.
애플의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 방문자 센터의 모습. 애플 홈페이지
애플의 미국 캘리포니아 쿠퍼티노 본사 방문자 센터의 모습. 애플 홈페이지
현재 애플의 공식 공급업체 190개 중 160개가 중국 내륙에서 부품을 생산한다는 데요. 그 배경에 바로 이런 중국의 숙련된 노동력이 있습니다. 지금도 인도에서 아이폰을 조립하는 공장이 있지만, 부품은 중국에서 가져오고 있죠. 참고로 전체 아이폰에서 중국산 부품이 차지하는 부가가치가 얼마나 커졌는지에 대한 연구가 있는데요(2019년 싱위칭 도쿄국립정책연구대학원 교수). 10여 년 전에는 중국산이 3.6%만 차지했지만 이제 25% 넘게 중국산으로 채워졌다고 합니다.

3년 가까이 이어진 코로나 팬데믹은 아이러니하게도 애플의 중국 의존도를 더 심화시켰습니다. 미국 엔지니어들이 예전처럼 중국으로 출장을 갈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애플은 중국에 출장가면 격리기간에도 하루에 1000달러(약 130만원) 봉급을 주겠다고 했지만, 엔지니어들이 안 가겠다고 했다는데요. 결국 애플은 선전과 상하이에 더 많은 중국 엔지니어를 고용해 캘리포니아에서 맡아 해온 디자인과 설계 업무 일부를 맡겼다고 합니다. 주로 미국에서 교육 받은 고임금 근로자들이죠.

결국 중국이 없으면 애플은 아이폰을 조립할 수 없을 뿐 아니라, 사실상 신제품 개발도 못하게 될 판인데요. 물론 애플의 지난 20년 동안의 성취에 중국이 큰 역할을 한 건 맞습니다. 하지만 지나친 중국 의존이 애플의 발목을 잡을 거란 얘기가 나온 지 이미 몇 년 됐습니다. 파이낸셜타임스의 패트릭 맥기 샌프란시스코 특파원의 표현을 빌리자면 “모든 영웅에겐 아킬레스건이 있고, 애플의 아킬레스건은 ‘중국 집중’임이 분명합니다”.
아킬레스건이 된 중국 집중, 대안은?
애플의 ‘친 중국’ 행보엔 팀 쿡 CEO가 있습니다. IBM과 컴팩을 거쳐 1998년 애플에 합류한 그의 역할은 한마디로 ‘공급망 전문가’였습니다. 거의 망해가던 애플의 조달∙제조∙유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스티브 잡스가 그를 영입했죠.

많은 이들은 애플하면 잡스와 조너선 아이브(전 디자인최고책임자)의 천재적인 디자인과 화려한 마케팅부터 떠올리겠지만, 애플이 지금처럼 돈 잘 버는 거대기업으로 성장한 건 사실 쿡 덕분이라 하겠습니다. 그는 폭스콘에 애플의 제조를 대량 아웃소싱하는 동시에 ‘올인원’식 공급망을 구축했습니다. 덕분에 재고는 확 줄이고 효율을 높였죠. 그 강력한 공급망 덕분에 애플은 다양한 제품과 액세서리를 출시할 수 있게 됐습니다. 그래서 나오는 말, ‘스티브 잡스는 애플과 아이폰을 만들었고 팀 쿡은 그것을 현금으로 만들었다’.

팀 쿡의 또다른 능력은 외교적 기술입니다. 트럼프가 대통령이던 시절, 미중 무역 갈등이 극에 달하면서 애플은 시험대에 놓였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은 취임하자마자 “중국 조립 아이폰에 15% 관세를 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기 때문인데요. ‘미중 무역 전쟁에 애플 등 터지게 생겼다’면서 애플 주가가 출렁이기도 했죠. 하지만 팀 쿡은 트럼프와의 돈독한 관계를 이용해 설득에 나섰고, 결국 아이폰 관세 부과 철회를 얻어냈습니다. 애플은 아무 타격도 입지 않았죠.

물론 팀 쿡의 친중국 행보를 둘러싼 미국 내 비판도 만만찮습니다. 그가 중국 공산당에 지나치게 저자세라며 못마땅해하는 건데요. 예컨대 지난달 애플은 아이폰 사용자끼리 인터넷 연결 없이도 파일을 공유하는 ‘에어드롭’ 시간을 10분으로 제한하는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중국에서만 발표했습니다. 이를 두고 제로코로나 반대 시위대의 조직화를 막으려는 중국 정부에 협력한 거란 비판이 나왔죠(이후 다른 나라로 업데이트 확대 중). 월스트리트저널 칼럼은 ‘애플은 집(미국)에선 대담하게 목소리를 내면서, 베이징의 억압에 대해선 침묵한다’고 꼬집기도.
팀 쿡이 이끈 애플의 성공 뒤엔 중국이 있었다. 애플 홈페이지
팀 쿡이 이끈 애플의 성공 뒤엔 중국이 있었다. 애플 홈페이지
이런 비판에 아랑곳할 팀 쿡은 아니겠지만, 애플의 중국 사랑이 흔들릴 수밖에 없게 만드는 요인들이 잇따라 생겨나고 있습니다. 앞에서 얘기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정책과 그로 인한 정저우 공장의 난리법석이 그 중 하나이고요. 미국 정부의 중국 견제가 갈수록 심해지고 있는 점도 걸림돌입니다(애플은 중국 국영 반도체 기업인 YMTC 낸드 구매 계획을 보류). 또 아주 무시무시한 시나리오도 있죠. 바로 중국의 대만 침공. 만약 미국과 중국이 대만을 놓고 다투게 된다면 애플은 그 사이에 끼어 잃을 게 가장 많은 기업일 겁니다.

그럼 지금이라도 얼른 인도와 베트남으로? 애플이 그렇게 방향을 틀고는 있지만 인도와 베트남 모두 현실적으로 중국을 대체하기가 쉽지 않은데요. 일단 베트남은 인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합니다. 인구가 고작 1억 명(?)으로 중국의 10분의 1도 안 되니까요. “베트남은 6만 명의 제조공장은 만들 수 있어도 정저우처럼 수십만 명에 달하는 공장은 어렵다”(단 판즈카 전 폭스콘 임원)는 군요.

인도는 인력은 풍부하지만 중국처럼 일사분란한 정부 차원 지원이 어렵다는 게 문제입니다. 지방정부마다 규제가 제각각이고, 관료주의가 심해서 기업이 이를 헤쳐나가기가 만만찮다는데요.

전문가들은 아마도 애플의 중국과의 결별이 아주 천천히 진행될 거라고 봅니다. BOA의 애플 분석가 웜시 모한은 “애플의 중국 정부와의 긴밀한 관계를 감안할 때 지난 몇 년 동안 잘 해왔듯이 미중 간의 흐름을 계속 탐색할 것”이라고 봤고요. 블룸버그 인텔리전스는 애플이 중국 생산여력의 10%를 다른 국가로 이전하는 작업에 약 8년이 걸릴 걸로 내다봤습니다. 애플 전문가로 유명한 궈밍치 TF인터내셔널증권 애널리스트는 “애플의 장기 목표는 인도에서 아이폰 생산비중을 40~45%까지 늘리는 것”이라고 했지만 그게 언제인지 시기는 밝히지 못했죠.

‘탈 중국’엔 시간뿐 아니라 상당한 비용이 듭니다. 무려 43%나 되는 애플의 마진율(매출 대비 총이익 비율)이 상당히 줄어드는 비효율을 각오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이에 비즈니스 인사이더는 “애플은 이를 감당할 만큼 충분히 크다. 문제는 투자자들도 그럴까?”라고 언급하는데요. 20년 동안 참 좋았던 애플과 중국의 관계, 이제 이쯤에서 정리할 수 있으려나요. 만약 그렇게 된다면 애플은 지금처럼 승승장구할 수 있을까요. 자고로 세상 쓸데없는 게 애플 걱정이라는데, 세계 시가총액 1위 기업의 행보를 둘러싼 관심은 당분간 계속될 것 같습니다. By.딥다이브
애플과 중국 관계에 대한 이야기, 도움 되셨나요? 제조업 강국이 된다는 게 얼마나 중요하면서 어려운 일인지를 알 수 있는 이야기인데요. 주요 내용을 요약해드리자면

-지난 20년 간 애플의 성장 배경엔 중국이 있었습니다. 아이폰은 사실상 캘리포이나와 중국이 함께 만드는 제품이 되었습니다.

-비용, 규모, 인프라 면에서 중국 공급망은 애플에 최적화돼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애플이 높이 평가하는 건 중국의 제조 기술력이죠.

-그런데 중국이 대만을 침공하기라도 한다면? 리스크가 커지면서 이제 인도와 베트남이 중국의 대안으로 거론됩니다. 하지만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요. 애플의 ‘탈중국’엔 시간과 비용 모두 상당히 들 겁니다.
*이 기사는 13일 발행한 ‘딥다이브’ 뉴스레터의 일부입니다. ‘읽다 보면 빠져드는 경제뉴스’ 딥다이브를 뉴스레터로 받아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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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애란 기자 haru@donga.com
#딥다이브#애플#아이폰#폭스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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