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에는 핵’ 전술핵 재배치론 부상… 비핵화 고수하는 美는 부정적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10월 1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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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 ‘전술핵 재배치’ 관련 “한미 여러 의견 경청”
핵배치 선그었던 입장서 기류 변화
北위협 속 핵무장론 검토 여부 주목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 고도화에 따른 전술핵 재배치 주장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잘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밝혔다.

윤 대통령은 이날 용산 대통령실 청사 출근길에 “대통령으로서 현재 이렇다 저렇다 하고 공개적으로 입장을 표명할 수 있는 문제는 아니다”라면서 이같이 말했다. 그러면서 북한의 위협에 대해 “굳건한 한미 동맹과 한미일 안보 협력을 바탕으로 아주 견고한 대응체계를 구축해서 잘 대비하고 대응해 나가겠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또 “북한이 지금 핵을 꾸준히 개발하고 고도화시켜 나가면서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를 상대로 핵으로 위협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북한이) 핵을 통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의 이날 발언은 전술핵 재배치에 명확하게 선을 그어 왔던 그간의 입장과는 다소 결을 달리하는 것이다. 윤 대통령은 앞서 8월 17일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일각의 핵 보유나 핵 균형 주장에 대해 “핵확산금지조약(NPT) 체제에 대해서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지켜낼 생각”이라며 부정적인 뜻을 밝혔다.

‘핵무력 법제화’와 잇단 미사일 발사로 북한의 남한을 겨냥한 전술핵 위협이 고조되는 상황에서 윤 대통령의 이번 언급이 핵무장론에 대한 검토로 이어질지 주목된다. 다만 대통령실 관계자는 “어떤 상황들이 전개될지 지금 속단하기 어렵기 때문에 그런 점을 함께 포함한 것이 아닌가 싶다”면서 “기존의 입장과 달라진 것은 없다”고 말했다.

‘핵에는 핵’ 전술핵 재배치론 부상… 비핵화 고수하는 美는 부정적


국내외서 “북핵 임계치 넘었다” 평가
재래식 전력만으론 북핵 억제 어려워… 전술핵 재배치-NATO식 핵공유 거론
비핵화 원칙에 위배… 美 추진 힘들듯… 日-대만까지 ‘핵배치 도미노’ 우려도


윤석열 대통령이 11일 일각의 전술핵 재배치 요구에 대해 우리나라와 미국 조야의 여러 의견을 경청하고 따져보고 있다고 밝히면서 정부가 북한의 핵무력 고도화에 대응해 ‘핵무장 옵션’을 본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이동식발사차량(TEL)과 잠수함, 열차는 물론이고 저수지에서도 전술핵을 장착할 수 있는 탄도미사일을 기습 발사하는 등 북한의 핵위협이 사실상 ‘레드라인(금지선)’을 넘은 만큼 핵은 핵으로 대응할 수밖에 없다는 판단에 힘이 실릴 수 있다는 것이다.

국내외 전문가들 사이에서 “북한의 핵위협이 임계점을 돌파했다” “비핵화 협상은 물 건너갔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재래식 전력에 기반한 킬체인(선제타격) 등 한국형 3축 체계로는 북한의 핵도발 억지에 한계가 있다는 우려가 커지는 상황을 정부가 마냥 외면할 수 없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군 연구기관 관계자는 “유사시 북한의 핵공격을 기정사실로 보고, 이에 대비한 핵억지력 구축 방안을 강구할 때가 됐다”고 말했다. 현실적 제약이 큰 독자 핵무장을 제외한 전술핵의 다양한 재배치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가장 먼저 1990년대 초 한반도에서 철수했던 전술핵을 주한미군에 재배치하는 방안이 거론된다. 이를 통해 북한에 핵으로 한국을 공격하면 즉각적으로 ‘핵 반격’을 받게 된다는 경고가 되고 미국의 핵우산 공약을 더 확실히 보장받는 효과를 볼 것이라는 주장이 나온다. 군 소식통은 “주한미군의 전술핵은 미국의 전략 핵보복을 보장하는 ‘핵 인계철선(nuclear trip wire)’ 역할을 할 것이고, 이는 북한의 핵도발 억지에 주효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양국이 ‘핵무기 공유협정’을 체결해 주한미군 기지에 전술핵을 배치한 뒤 유사시 한국 공군의 전투기에 실어서 투하하는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식 핵공유 방안도 검토될 수 있다. 특히 우리 군의 F-35A 스텔스 전투기에 전술핵을 탑재할 경우 북한 레이더망을 피할 수 있어 억지 효과는 더 커진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두 방안 모두 한반도 비핵화 원칙에 위배되고, 비확산 기조를 고수하는 미국이 섣불리 추진하기 힘들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지난달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 외교·국방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에서도 전술핵 재배치 문제는 다뤄지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는 “한국에 전술핵을 배치하면 기존 확장억제 전략이 북핵 억지에 실패했다고 인정하는 모양새가 되고, 일본과 대만도 중국의 위협에 대응해 배치를 요구하는 등 역내 ‘핵 도미노’ 현상이 벌어질 가능성을 미국이 우려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일각에선 북한의 핵 포기를 압박하는 수단과 방식으로 전술핵 배치를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에 힘이 실린다. 한미가 비핵화 협상 시한을 북한과 주변국에 통보한 뒤 북한이 끝내 핵을 고수할 경우 전술핵을 한반도와 그 주변에 반입하는 ‘조건부 한시적 재배치’ 방안을 추진해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초정밀 타격이 가능한 저위력 핵무기를 장착한 미국의 전략핵잠수함(SSBN)이나 전략폭격기를 한반도 주변에 상시 순환 배치해 미국의 핵보복력을 시험하려 하지 말라는 경고를 북한에 보내는 방안도 제기된다.

전성훈 전 통일연구원장은 “한국에 전술핵이 배치돼도 미국이 전적으로 소유하고 통제하므로 핵확산과 무관하다”며 “북한의 핵공격을 억지하려면 전술핵 반입을 포함해 어떤 형태로든 한국의 핵대응력이 구축돼야 한다”고 말했다.


홍수영 기자 gaea@donga.com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
#전술핵 재배치#북한#핵무장 옵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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