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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사회

연금곳간 비는 2057년… 월급 30% 보험료에 “젊음이 죄냐” 저항

입력 2022-09-27 03:00업데이트 2022-09-27 10: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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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연금, 공존을 향해]〈2〉연금개혁 실패, 미리 본 미래생활
“연금 납부 거부”에 갈라진 사회… 연금 없인 못사는 부모님들

프롤로그
대한민국이 국민연금 개혁에 실패하면 어떤 미래를 맞을까. 보건복지부의 ‘제4차 국민연금 재정계산 결과’(2018년)에 따르면 국민연금 적립금은 2057년 고갈된다. 쌓아둔 돈이 없으면 연금제도는 그해 거둔 보험료로 그해 연금을 지급하는 ‘부과식’으로 변경될 수 있다. 이 경우 2060년 소득 대비 국민연금 보험료의 비율(보험료율)은 28.6%로 예상됐다.

이조차 너무나 낙관적인 예측이다. 보험료를 낼 사람이 예상보다 더 줄고 있다. 이 추계는 2020년 합계출산율(여성 1명이 평생 낳는 아이의 수)을 1.10명으로 가정했는데, 올해 2분기(4∼6월) 합계출산율은 0.75명으로까지 떨어졌다. 전문가들은 2057년 보험료율은 최소 30%에 달할 수 있다고 전망한다. 현재 보험료율(9%)의 3배가 넘는다.

복지부, 통계청, 국회예산정책처,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예측 데이터와 국내외 사례(이하 네모박스 부분)를 토대로 ‘연금개혁에 실패한 2057년’을 살아가는 2022년생 김이준(35)의 하루를 소설로 구성했다. 연금 개혁의 시급성을 보기 위해서다. 작성에는 국민연금 전문가 3인이 참여했다. 이준은 대법원 전자가족관계등록시스템상 2022년생(1∼8월) 중 가장 많은 이름이다.
Ⅰ. “젊음은 죄가 아니다”
2057년 9월 27일 오전 8시. 지하철을 타면서 이준은 한숨을 쉬었다. 좌석의 절반은 노인 전용. 노인이 10명 중 4명이 넘는 이 땅에서 청년이 앉을 자리는 없어진 지 오래다.
통계청 장래인구추계(2020∼2070년)에 따르면 2057년 총인구는 3937만3755명. 이 중 65세 이상이 1732만9729명(44%). 15∼64세(1927만9772명·49%) 인구에 육박
휴대전화를 들여다보니 대한민국은 ‘전쟁’ 중이었다. 일주일 전, 20대 청년 K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200자 남짓한 글이 방아쇠를 당겼다. 글이 올라온 뒤 한국 사회는 두 갈래로 쪼개졌다. 제목은 ‘젊음은 죄가 아니다’.

‘오늘부로 나는 국민연금 보험료 납부를 거부한다. 더 이상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에게 내 월급의 30%를 떼어 주고 싶지 않다. 왜 내가 국민연금 폭탄 돌리기의 피해자가 돼야 하나. 노후는 스스로 책임져라. 나도 내 노후를 알아서 책임지겠다. 젊음은 죄가 아니다.’

이 글은 즉각 1000만 번 넘게 공유됐다. 청년들은 기다렸다는 듯 K에게 열광했다. K의 팬클럽 ‘Follow K’가 만들어졌고, 팬클럽은 국민연금 폐지 서명운동을 펼쳤다. 일주일 만에 100만 명이 참여했다.

K는 영웅인 동시에 ‘죽일 놈’이었다. Follow K 사이트 서버는 노년층이 주도하는 사이버 공격에 하루에도 몇 번씩 다운됐다. K에게는 매일 수백 통의 협박 이메일이 쏟아졌다.
2003년 독일에서 사회보험을 두고 세대갈등이 발생. 필리프 미스펠더 기독민주당 청년조직 의장은 건강보험에 대해 “온 공동체를 희생하면서까지 85세 노인이 인공 관절 수술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해 청년층에게 환호를, 노년층에게 항의를 받음

이준이 보던 K의 인터뷰 영상이 끝나갈 때쯤 지하철은 5호선 광화문역에 도착했다. “젊음이 죄가 아니라고? 그럼 늙음은 죄냐!” 이른 아침부터 광화문광장은 노인 시위대의 날선 외침으로 가득 차 있었다.
Ⅱ. 꼬인 매듭
“바빠 죽겠어. K인지 뭔지가 사람 잡는다니까.”

퇴근 후 이준은 2세 연상의 애인과 만났다. 보험회사에 다니는 애인은 요즘 연일 야근에 시달렸다. K가 불을 지핀 뒤 국민연금 ‘탈퇴 러시’가 일어났다. 가입과 탈퇴가 자유로운 주부와 학생부터 빠져나갔다. 자영업자 등 지역가입자들도 ‘돈이 없다’면서 보험료를 안 냈다. 이들이 “부도난 나라연금보다 민간연금을 믿겠다”며 개인연금보험 상품으로 몰리는 바람에 이준의 애인도 바빠졌다.
2013년 정부가 기초연금을 국민연금 가입 기간과 연계해 지급한다고 발표하자 국민연금 장기가입자가 역차별을 받는다는 논란이 일면서 임의가입자들이 대거 탈퇴함
“우리가 나중에 국민연금 받을 수 있단 보장도 없는데. 차라리 사기업에 돈 넣겠다는 마음도 이해돼. 나도 탈퇴하고 싶은데 직장인이라 못 하는 거야. 내가 태어날 때만 해도 국민연금 가입자 100명이 수급자 20명도 책임을 안 졌는데, 지금은 수급자를 120명도 넘게 책임지라잖아. 젊은 게 죄도 아니고. 이게 말이 돼?”
국회예산정책처 4대 공적연금 재정전망(2020년)에 따르면 가입자 대비 수급자 수를 뜻하는 국민연금 제도부양비는 2020년 19.4명. 2050년 93.1명, 2060년 125.1명으로 예상
이준의 애인은 마흔 전에는 결혼하고 싶어 했다. 하지만 이준에게 결혼은 사치다. 월급 513만 원 중에 국민연금 보험료만 153만9000원. 절반인 약 77만 원을 내는 회사도 부담스러워한다. 건강보험률도 10%를 넘었고, 장기요양보험료도 날로 늘어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한국인 월평균 임금은 2010년 269만 원에서 2021년 319만 원으로 18.6% 증가. 이 증가율이 유지된다고 가정하고 2057년 월평균 임금을 513만 원으로 추산해 대입한 보험료
국가에 뭉칫돈을 원천징수당한 뒤 월세, 관리비, 교통비까지 내고 나면 한 몸 건사하기에도 숨이 막힌다. ‘숨 막히는 둘이 살면 더 숨이 막히지 숨통이 트이겠냐’는 말은 차마 못 한 채 이준은 괜히 말을 돌린다.

“이럴 거면 우리도 그냥 이민 갈까? 연금 폭탄 피해서 나가는 게 대세잖아.”

어느새 애인 앞에는 빈 맥주잔이 3잔이나 쌓였다. 이준은 못 본 척, 조용히 일어났다.
Ⅲ. 누구의 편도 아닌
애인과 헤어지고 자취방에 도착한 이준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아버지가 보낸 메시지다.

‘K의 말이 헛소리인 40가지 이유.’ 전체 보기를 눌러야 내용이 다 보일 정도로 길다. 이준은 대충 답장했다. ‘네 안녕히 주무세요.’

이준의 아버지는 1987년생, 70세다. 과거 큰 수술을 해서 지금도 건강이 좋지 않다. 은퇴 이후 일자리를 찾지 못했고, 매달 생활비를 드릴 만큼 형편이 넉넉한 자식도 없다. 유일한 수입은 국민연금과 기초연금을 합한 147만 원. 연금액이 소득으로 잡혀 다른 복지 혜택은 받지 못한다.
석재은 한림대 교수 분석에 따르면 현행 연금 수급 기준 유지 시 전체 가입자 평균 소득 수준인 1987년생이 국민연금에 40년 동안 가입하면 70세에 국민연금 132만 원과 기초연금 15만 원을 받음
이준이 태어난 35년 전이나 지금이나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세계 최악이다. 아버지에게는 국민연금이 필요한 이유가 40가지를 넘을지도 모른다. 용돈 한 푼 못 드리는 불효자보다 국민연금이 진짜 자식 노릇을 하는 것 아닐까? K가 말한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은 사실 내 아버지 같은 사람들 아닐까.
한국보건사회연구원의 노인빈곤실태 분석 결과 2046년 이후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30% 전후.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의 3배에 이를 것으로 예측
아버지를 생각하니 이준은 가슴이 답답해졌다. ‘그러게 이 지경이 되기 전에 누가 뭐라도 했으면 좀 좋았나.’

이준은 억울한 마음에 Follow K 계정에 ‘좋아요’를 눌렀다. 하지만 이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올라 슬그머니 취소했다. 이준은 자신이 어느 편인지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승자도 패자도 없는, 슬픈 전쟁터의 한가운데에서 이준은 이불을 머리끝까지 덮었다.
에필로그
이 소설은 사회 환경과 추이가 대체로 현행대로 유지된다고 가정했지만 35년 사이 다양한 변화가 생길 수 있다. 전문가들이 예상한 미래도 조금씩 달랐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지금 연금 개혁에 나서지 않으면 수많은 이준과 이준의 부모들은 슬픈 전쟁을 벌일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2057년 미래소설’ 작성에 참여한 전문가
김진수 연세대 사회복지학과 교수,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부 교수, 신석하 숙명여대 경제학부 교수


김소영 기자 ks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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