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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모국어 잘 못하지만… 내 뿌리인 한국에 대해 쓰고 싶었죠”

입력 2022-09-27 03:00업데이트 2022-09-27 0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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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국제작가축제 초대받은 재미교포 최돈미 시인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23일 만난 최돈미 시인은 “아버지는 한국을 떠난 뒤에도 항상 한국에 대해 이야기했다. 4·19혁명 땐 대학생들이 서로의 어깨에 팔을 두르고 시위에 참여했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송은석 기자 silverstone@donga.com
“제가 쓰는 언어는 한국말도 영어도 아닌, 그 중간의 어떤 것이죠. 전 어쩌면 ‘모국어를 갖지 못한 사람’이자 ‘추방된 언어를 구사하는 사람’이에요.”

시인은 근심이 많았다. “걱정되고 두렵다”는 말을 반복했다. 모국인 한국에서 과연 자신의 영혼을 담은 시를 어떻게 받아들일지. “한국을 떠난 뒤 줄곧 아버지의 국어사전을 지니고 탐독했다”는 그에게선, 아직 세상을 모르는 열 살배기 소녀의 불안함이 묻어났다.

하지만 재미교포 시인인 최돈미(60)의 시작(詩作)은 다르다. 고통이 묻어나되 올곧고, 묵직한 주제를 다루면서도 공감대가 넓다. 이방인이자 노마드(유목민)의 시선으로 새겨 넣은 그의 시집 ‘DMZ 콜로니’는 2020년 미국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전미문학상’을 받으며 국내외에서 화제를 모았다.

서울 마포구의 한 호텔에서 23일 만난 최 시인은 “아직 한국에서 시집도 나오지 않았는데 서울국제작가축제(23∼30일)에 초대받아 너무 기쁘다”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1998년 연세대 한국어학당에서 공부했지만 여전히 한국어가 서툴다”며 한국어와 영어를 섞어 쓰는 걸 사과하기도 했다.

“1972년 열 살 때 한국을 떠났어요. 아버지가 동아일보 사진기자셨는데, 이후 미 ABC, CBS 방송 아시아특파원으로 4·19혁명, 베트남전쟁 등을 취재하셨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홍콩과 독일 등을 떠돌며 ‘왜 난 고국에서 살 수 없나’를 고민했죠. 칼아츠(미 캘리포니아예술대)에 다닐 때, 한 교수님이 저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시로 써보면 어떻겠느냐’고 제안하셨어요. 그때 저는 나의 뿌리인 한국에 대해 쓰고 싶어 한다는 걸 깨달았죠.”

시집 ‘DMZ 콜로니’에는 비무장지대(DMZ)를 소재로 삼은 시 ‘하늘의 번역’이 실려 있다. 시인은 DMZ와 위도가 비슷한 미 미주리주 세인트루이스에서 날아가는 흰기러기를 보며 한반도의 허리를 끊은 38선을 안타까워하는 심정을 담았다. 해당 시집에는 4·19혁명, 5·16군사정변 등 한국의 현대사를 두루 고찰한 시가 많다.

“아버지는 저에게 한국에 대해 자주 얘기해 주셨죠. 그런 한국에선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났는지 알고 싶어서 공부하고 시를 썼습니다. 예를 들어, 5·16군사정변을 다룰 땐 당시 독재정권의 피해를 입었던 분들을 직접 만나 얘기를 듣기도 했어요. 저에게 시는 취재와 고민의 산물입니다.”

최 시인은 서울예대 명예교수인 김혜순 시인(67)과 인연이 깊다. 미국에서 2016년 출간한 김 시인의 시집 ‘전 세계의 쓰레기여, 단결하라!’와 2018년 ‘죽음의 자서전’을 영어로 번역해 미국문학번역가협회의 ‘루시엔 스트릭 아시아 번역상’을 두 번이나 함께 받았다. ‘죽음의 자서전’으로는 캐나다 그리핀 시문학상도 공동 수상했다.

“1998년에 김 선생님의 시를 읽고는 순식간에 홀려버렸어요. 그렇게 창의적이고 상상력이 넘치는 시는 다른 어느 나라에서도 본 적이 없어요. 한국 여성의 고통을 담은 시를 보며 한국에 더 관심이 커졌어요. 김 선생님의 시를 번역하며 제 시가 더 깊어졌다고 믿습니다.”

김 시인은 차기작으로는 5·18민주화운동을 다룬 시집을 준비하고 있다. 올해 말 출간할 계획으로, 서울국제작가축제에 참가하기 전 짬을 내서 며칠 동안 광주에도 다녀왔다. 시인은 “당시 아버지도 특파원으로 광주 현장을 취재하셨다”며 “시민군 대변인으로 활동하다 계엄군에게 목숨을 잃은 윤상원 열사에 대해 공부하고 있다”고 했다. 그에게 한국은 멈춰 있는 시계가 아니다. 함께 살아 숨쉬는 가족이자 생명이다.

이호재 기자 hoh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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