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뒷날개]추억도 애도도 없이 망각에 이르는 우정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17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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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모리스 블랑쇼 지음·류재화 옮김/528쪽·3만2000원·그린비

출판 일을 하다 보면 저자와 동료에게 강한 연대의식을 느낄 때가 많다. 말이 통하고 마음이 맞는 사람들과 일하는 행복이 크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의심이 들기도 한다. 사회생활을 하다 만난 이들이 진짜 친구가 될 수 있을까. 진실한 우정을 나눈다고 자신할 수 있을까.

그런 의미에서 프랑스 작가 모리스 블랑쇼(1907∼2003)가 쓴 ‘우정’은 출판 쪽에서 일하는 지인들에게 꼭 권하고 싶은 책이다. 책을 매개로 한 우정이 담긴 서평집이다. 앙드레 말로(1901∼1976)나 알베르 카뮈(1913∼1960)와 같은 동시대 작가들의 저서에 대한 비평인데 곳곳에서 우정을 담백하게 서술한다.

특히 블랑쇼에게 친구이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것으로 알려진 작가 조르주 바타유(1897∼1962)가 숨진 뒤 쓴 글은 무척 인상적이다. 그는 세상을 떠난 친구를 추억하지도 애도하지도 않는다. 친구를 떠나보내며 취할 행동이라기엔 일견 이해가 가지 않는다. 흔히 우리가 우정 앞에서 취하는 행동과 정반대의 모습이랄까. 감정을 최대한 억제한 채, 바타유의 죽음으로 인한 이별이 자신과의 관계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담담하게 풀어낸다.

블랑쇼는 글에서 바타유와의 사이에서 어떤 일화가 있었는지 시시콜콜하게 밝히지도 않는다. 그저 “삶과 글은 다르다”며 바타유라는 사람과는 별개로 그가 남긴 책을 내밀하게 파고든다. 다만 죽음과 부재와 무의미에 충실하기 위한 행동인 글쓰기는 “깊은 고통”을 남긴다고 전한다. “그 고통이 우정이 망각에 이르는 동안 동행해줄 것”이라고.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도 있지만, 묵직한 울림이 있다.

이 글이 아니어도 블랑쇼의 문장은 담백하다. 솔직하기도 하다. “예술은 이런 걸까”라고 질문을 던졌다가도, “우리는 잘 알지 못한다”고 사실을 인정한다. 평생을 은둔한 것으로 알려진 블랑쇼는 글을 통해 깊은 사유를 펼쳐 보인다. 그가 전후 프랑스 문학과 철학에 큰 영향을 미친 이유를 짐작할 수 있다. 다만 까다로운 논리와 화려한 문체, 복잡한 사상이 특징인 프랑스 문단의 작가답게 어려운 내용이 적지 않다. 그래도 최대한 친절하게 번역해 독자들의 이해를 도운 번역에 박수를 보낸다.

작가가 다른 작가에게 우정을 느끼는 건 드문 일이 아니다. 국내에서도 그런 우정의 기록은 서간집이나 교환일기 형태로 다수 출간되고 있다. 다만 블랑쇼의 책을 읽으며 과시하지 않는 우정이란 무엇인지 생각해 본다. 이해관계에 얽매이지 않은 칭찬, 일시적인 흥분이 아닌 충실함이란 어떻게 가능할까.

책에는 블랑쇼의 예술과 정치, 문학, 철학에 관한 생각을 정리한 에세이 29편이 함께 담겼다. 그의 시각으로 20세기 프랑스 현대문학사를 전반적으로 훑어볼 수 있다는 것도 하나의 장점이다. ‘모리스 블랑쇼 선집’ 여섯째 권으로 출간됐다.


신새벽 민음사 편집부 인문사회팀장
#우정#추억#연대의식#모리스 블랑쇼 선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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