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 호황 정유사에 횡재세” vs “투자 줄어 수출경쟁력 약화”[인사이드&인사이트]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9월 6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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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권 ‘횡재세’ 움직임 논란
정유사 상반기 영업익 12조
정치권 “초과소득 회수해야”
기업들 “정치적 동기 과세”

올해 상반기 정유 4사는 고유가 행진에 힘입어 합계 12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정치궝네서 이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자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정유사가 강력 반발하면서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울산 남구의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올해 상반기 정유 4사는 고유가 행진에 힘입어 합계 12조 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정치궝네서 이 이익의 일부를 세금으로 걷자고 주장하는 데 대해 정유사가 강력 반발하면서 이른바 ‘횡재세 논란’이 커지고 있다. 사진은 울산 남구의 SK이노베이션 울산 콤플렉스 전경. SK이노베이션 제공
송충현 산업1부 기자
송충현 산업1부 기자
《국내 정유사들은 올해 상반기(1∼6월) 전례 없는 호황을 누렸다. 정유 4사는 상반기에만 12조 원의 영업이익을 거둬 연간 기준 최대치였던 7조 원을 가볍게 뛰어넘었다. 고(高)유가 행진으로 인한 정제 마진 급등 덕분이었다. 고유가 이면에는 그늘도 있다. 기름값이 치솟으며 소비자들의 유류비 부담이 커졌고 물가 상승으로 경기침체 우려가 커진 것이다.

역대 최대 실적을 낸 정유사와 고물가로 고통받는 소비자.

고유가가 빚은 명암이 극명하게 대비되자 정치권을 중심으로 정유사가 얻은 막대한 이익 일부를 세금으로 회수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정유사들은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이른바 ‘횡재세’를 둘러싼 논란이 좀처럼 가라앉지 않고 있다.


○ 고유가로 얻은 수익은 ‘횡재’일까
횡재세는 기업이 단순히 대외적 여건 변화로 취득하게 된 이익에 대해 물리는 세금이다. 정유사를 둘러싼 횡재세 논란의 핵심은 고유가로 인한 이익 증가를 ‘횡재’로 볼지 ‘경영 활동의 결과물’로 판단할지에 달린 셈이다.

올해 상반기 내내 이어진 고유가 행진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회복에 따른 글로벌 수요가 회복되던 시점에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의 전쟁이라는 지정학적 원인까지 더해진 결과였다. 정유사들은 보통 원유를 들여오기 3개월 전에 매입 계약을 맺는데 유가가 오르면 시장 상황에 맞게 비싼 가격에 휘발유와 경유 등을 팔아 재고 평가 이익을 얻는다. 여기에 러시아 전쟁 등의 여파로 석유제품 수급이 불균형을 이루며 정제 마진이 더 크게 올랐다. 그런데 유가가 오른 것은 정유사의 투자나 노력의 결과물이 아닌 만큼 고유가로 인한 정유사 이익은 횡재에 가깝다는 게 ‘횡재세’ 도입의 근거다.

정치권에서는 정유사의 기록적인 이익을 ‘초과 소득’으로 보고 세금을 물려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달 석유정제업자가 직전 3개 사업연도의 평균 소득에 비해 5억 원 이상 초과 소득이 발생할 경우 초과 소득의 20%를 법인세로 추가 납부하는 내용의 법인세법 일부 개정안을 발의하기도 했다. 용혜인 기본소득당 대표는 정기국회 첫날인 1일 횡재세 법안을 발의했다. 용 대표는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촉발된 에너지 위기는 서민들에겐 고통을 안겼고, 정유사들엔 역대급 영업이익을 안겼다”면서 “정당한 경제활동과 기술 혁신을 통해 얻은 이익이 아닌 횡재이득을 횡재세로 환수해서 에너지 취약계층을 지원하는 재원으로 사용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반면 정유사들은 정제 마진이 오르는 등 경영 환경이 나아졌을 때 많은 이익을 내기 위해 대규모 설비에 사전에 투자해 왔다고 주장한다. 반대로 유가가 추락해 정제 마진이 나빠졌을 때는 기업이 손실을 떠안아야 한다는 것이다. 실제 국제유가는 두바이유를 기준으로 6월 초 배럴당 117달러를 돌파한 뒤 다소 안정세에 접어들어 현재 92달러대까지 내려왔다. 정유사들도 상반기와 달리 하반기(7∼12월)에는 경영 실적이 대폭 악화할 것으로 보고 있다.
○ 최대 실적 낸 정유사에 “고통 분담” 요구
올 들어 시작된 횡재세 논란이 본격화한 건 최근 정유사들의 상반기 실적 발표 이후다. SK이노베이션, 에쓰오일,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등 국내 정유 4사의 올 상반기 영업이익은 총 12조3203억 원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3조8995억 원)보다 216% 늘었다. 정유 4사의 역대 연간 최대 영업이익인 2016년 7조8736억 원마저 훌쩍 뛰어넘는 수치다. 회사별로는 SK이노베이션이 영업이익 3조9783억 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249% 증가했고, GS칼텍스(3조2133억 원·218%), 에쓰오일(3조539억 원·154%), 현대오일뱅크(2조748억 원·206%) 등도 모두 2조∼3조 원씩 영업이익이 늘어났다.

정치권이 횡재세 도입을 주장하는 배경에는 물가 안정과 세수 확보를 위해 정유업계가 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의미도 있다. 정부가 서민 경제 부담을 완화하기 위해 유류세를 인하했는데, 그로 인한 세수 결손을 횡재세로 메우자는 것이다. 유류세 인하 등으로 인해 1∼7월 국세 수입 중 교통세는 작년 동기 대비 3조4000억 원 감소했다. 세금 한 푼이 아쉬운 최근의 재정 상황을 감안하면 유류세 인하가 세수에 미치는 영향은 결코 작지 않다.

인플레이션 우려도 횡재세 도입 주장에 힘을 실었던 요인 중 하나다. 산업연구원은 최근 내놓은 ‘우리나라 인플레이션의 특징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가격 상승이 비용 상승 폭에 비해 과도하고 이윤 증가로 이어지면 초과이윤세 같은 정책을 통해 과도한 가격 상승이 나타나지 않도록 대응해야 한다”고 했다.

다만 기획재정부와 산업통상자원부 등은 횡재세와 관련해 “아직 검토하거나 고려하지 않고 있다”는 신중한 입장을 유지하고 있다.
○ “정치적 동기의 과세는 수출 경쟁력만 약화시켜”

에너지 기업에 횡재세를 부과해야 한다는 주장은 한국만의 상황은 아니다. 영국과 이탈리아에선 이미 횡재세가 도입됐고 미국에선 관련 법안 발의가 논의 중이다.

그러나 정유업계는 글로벌 석유기업들과 국내 정유사 간 수익 구조에는 분명 차이가 있다고 강조한다. 글로벌 석유기업은 독점적 지위를 가지고 원유 생산 자체로 큰 이익을 남긴다. 원유를 직접 시추하는 기업은 판매 가격 중 약 5달러를 제외한 나머지를 수익으로 가져간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70달러일 때는 65달러가 수익이지만 100달러로 오르면 수익이 95달러로 뛰는 것이다. 하지만 국내 기업은 원유를 해외에서 100% 수입한 뒤 휘발유와 경유를 만들고, 그중 절반 이상을 해외로 수출한다.

국내 정유사의 수익은 원유 매입가와 석유제품 판매가 간 차이인 정제 마진에 따라 변한다. 과거 5년 평균 2.5달러 수준이었던 정제 마진은 올 들어 고공 행진해 6월 말 30달러에 육박했다. 하지만 지금은 다시 4달러대로 주저앉은 상황이다. 대한석유협회 관계자는 “국내 정유사 정제 마진이 국제 정유시장의 평균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아 폭리나 초과 이익으로 보는 시각은 공감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또 국내 정유 4사의 총매출액 중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은 올 상반기 60.8%로 집계됐다. 횡재세가 국내 정유업계의 수출 경쟁력을 하락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글로벌 공급망 위기와 전쟁으로 전 세계가 에너지 수급 문제를 겪는 상황에서 국내에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하는 정유업계의 역할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며 “근거가 부족한 세금을 정치적 동기로 도입하면 우리 기업에 대한 역차별 문제와 수출 가격 경쟁력 하락으로 이어질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한다”고 말했다.



송충현 산업1부 기자 balgun@donga.com


#횡재세#정치#기업#정유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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