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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아일보|문화

[책의 향기]오징어게임 속 상우는 왜 기훈에게 화를 냈을까

입력 2022-08-06 03:00업데이트 2022-08-06 1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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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징어게임 심리학/장프랑수아 마르미옹 지음·박효은 옮김/204쪽·1만5500원·오렌지디
드라마 ‘오징어게임’에서 기훈(이정재)이 달고나 뽑기 게임을 하는 모습. ‘오징어게임 심리학’은 줄다리기 같은 단체 게임이 참가자들의 에너지를 폭발시키는지, 정반대로 태만하게 만드는지를 따져보는 등 다양한 심리학 이론을 활용해 흥미로운 분석을 제시한다. 넷플릭스 제공
“아 ×× 기훈이 형!”

‘오징어게임’에서 상우(박해수)가 기훈(이정재)을 향해 내지르는 이 유명한 욕설 대사가 나온 배경을 심리학적으로 분석해보자.

상우는 기훈이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에서 상우가 앞사람을 밀어 죽인 것을 비난하자 “어차피 저 돈(상금 465억 원) 가지고 나가려면 다른 놈들 다 죽어야 돼”라며 자기 합리화에 나선다. 사람을 죽여선 안 된다는 신념과 실제 행동이 충돌하는 인지부조화가 발생하자 그럴 수밖에 없었던 명분을 내세워 죄책감을 씻으려 한 것. 그러나 기훈은 “넌 그냥 죄 없는 사람을 죽인 것”이라며 비난을 이어간다. 상우의 욕설은 빠른 자기합리화가 생존 전략이 될 수 있는 상황임에도 이를 방해하는 답답한 말만 해대는 기훈에 대한 분노의 일갈이었다.

저자는 프랑스의 심리학자이자 인문과학 저널리스트. 그는 상우가 보여준 다양한 행동을 제시하며 그를 “인지부조화 해소에 탁월한 인물”로 분석한다. 반면 기훈은 “게임에서 우승을 하고도 죄책감을 털어내지 못하는 등 인지부조화에 빠져 폐인이 된 인물”이다.

저자는 심리학의 다양한 이론을 가져와 ‘오징어게임’ 속 캐릭터들과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등 여러 게임에 대해 분석한다. 일남(오영수)이 정체를 숨기고 게임에 직접 참가한 이유 중 하나는 어린 시절 하던 놀이를 해보고 싶어서였다. 그가 구슬치기, 옛 골목 등 과거의 것에 집착하는 이유는 현재가 그만큼 허무하다는 반증. 과거 미화가 극에 달하는 시기는 50대인데, 그즈음 틈만 나면 “나 때는”으로 시작해 옛 시절을 소환하는 현상을 심리학에선 ‘회상의 정점’이라 부른다.

우승할 확률, 즉 살아남을 확률이 456분의 1로 매우 희박함에도 자신의 운을 과신하며 허세를 부리는 이들도 보인다. 덕수(허성태)가 대표적. 우연히 행운이 잇따른 것을 두고 다음에도 좋은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믿는 것을 심리학에선 ‘핫 핸드 효과’라고 한다. 과거 게임 우승자였던 프런트맨(이병헌)이 게임 관리자로 돌아온 것은 인질이 인질범 편에 서는 ‘스톡홀름 증후군’으로 해석 가능한 대목이다.

‘오징어게임’의 심리적 허점을 분석한 대목도 눈길을 끈다. 게임 진행요원, 일명 ‘가면남’들이 대체 무슨 이유로 엄격한 위계질서와 규칙, 서로에 대한 밀착 감시를 아무런 불만 없이 받아들이는지를 설득할 대목이 부족하다는 것. 황동혁 감독이 올해 6월 시즌2 제작을 공식화하며 가면남들의 대장 격인 프런트맨 이야기가 공개될 것이라고 밝힌 만큼 가면남들의 사연도 일부나마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심리학적 분석 외에도 ‘오징어게임’에 세계인이 열광한 이유에 대한 분석과 드라마가 내던진 화두인 공정, 선과 악, 인간성, 경쟁 등에 대한 사회인문학적 분석까지 촘촘히 담겨 있다. 무엇보다 한국에 대해 거의 알지 못하던 프랑스의 석학이 ‘오징어게임’만을 심층 분석한 책을 썼다는 사실은 놀랍다. 이 드라마가 세계에 미친 영향이 얼마나 컸는지, 한국을 알리는 데 얼마나 큰 기여를 했는지를 다시 한 번 실감케 한다.

손효주 기자 hjso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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