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 학술지 발간 출판사, 조직적 논문인용 뻥튀기

  • 동아일보
  • 입력 2022년 5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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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연구팀 논문 4857만건 분석
내부인용 20%… 다른 곳은 7%대
연구자 실적-출판사 돈벌이 결탁

#1. 400여 개의 학술지를 발간하는 A출판사는 논문을 게재하는 연구자들에게 출판사 내 다른 학술지에 실린 논문을 인용해 달라는 요구를 노골적으로 하는 방식으로 인용 횟수를 늘렸다. 이 출판사는 내부 인용 비율을 20%까지 끌어올려 인용지수(특정 기간 한 학술지에 수록된 논문이 다른 논문에 이용되는 평균 횟수) 상위권 학술지를 상당수 만들어냈다.

전 세계 과학 학술 출판의 절반을 차지하는 네이처, 엘스비어, 와일리 등 3대 출판사가 발행하는 학술지의 내부 인용 비율이 고작 7%에 머무르는 것을 감안하면 이례적 수치다.

#2. 새로 창간된 B학술지는 논문 수준이 높지 않은데도 인용지수가 통상 지수의 1000배에 달했다. 이 학술지는 논문 저자로부터 통상의 논문게재 비용보다 훨씬 비싼 200만 원의 비용을 받고 출간을 대행해주는 잡지였다.

포스텍과 숭실대 등 공동 연구팀이 부실 학술지의 조직적 인용 카르텔을 최초로 밝혀냈다. 출판사들이 자사(自社)의 학술논문들에 대해 ‘인용 뻥튀기’를 일삼는 행위가 국내 연구를 통해 수치로 드러난 건 처음이다.

정우성 포스텍 교수와 윤진혁 숭실대 교수는 1996년부터 2018년까지 등록된 학술논문 4857만9504건을 분석한 결과 이 같은 출판 실태가 드러났다고 30일 밝혔다. 과학 논문 데이터베이스인 ‘스코퍼스(SCOPUS)’를 대상으로 한 이 연구에서는 부실 학술지 목록인 ‘비올 리스트(Beall’s list)’에 오른 학술지들을 집중 분석했다.

분석 결과 이 리스트에 오른 학술지들은 같은 출판사에서 나온 학술지를 인용한 비율이 20%에 달했다. 자기들이 펴낸 학술지끼리 인용을 권장하는 방식으로 인용 횟수를 늘려 학술지의 질을 의도적으로 높게 보이도록 조작한 것이다. 공동 연구팀은 “예전에는 학술지들이 자체적으로 논문을 인용했지만 이에 대한 검열이 강화되자 출판사 한 곳이 여러 개 학술지를 내면서 각각의 논문을 서로 인용하기도 했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연구자와 출판사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져 ‘시장 카르텔’이 형성됐다고 봤다. 연구자들이 논문 수나 인용지수로 평가받다 보니 출판사 편집자와 결탁해 인용 횟수를 늘리는 유혹에 빠지는 것이다. 출판사로서는 연구자로부터 돈을 받을 수 있으니 ‘학술지 장사’가 되는 셈이다.

연구팀은 “정부가 실적을 평가할 때 인용지수 같은 정량지표를 강조하다 보니 무의미하게 인용 횟수를 높이는 ‘나쁜 시장’이 만들어졌다”고 말했다. 연구결과는 8일 국제학술지 ‘계량정보학 저널(Journal of Informetrics)’에 실렸다.


조승한 동아사이언스 기자 shinjsh@donga.com
#부실 학술지#논문인용#조직적 논문인용 뻥튀기#연구자 실적#출판사 돈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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