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지홍]섣부른 규제보다 플랫폼 경쟁 확보가 우선이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0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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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에도 승승장구한 플랫폼 기업
서민 상권 삼키며 사업 확장 눈총 받아
과다수수료는 플랫폼 간 경쟁으로 해결해야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이번 ‘가을 국회’의 주요 관전 포인트 중 하나는 네이버, 카카오, 쿠팡을 위시한 ‘온라인 플랫폼’들이다. 코로나19 사태 와중에 이들 기업은 승승장구했다. 그나마 수출을 늘린 제조업체는 글로벌 위기를 국위 선양의 기회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데 반해 이들은 국내 시장에서 서민 상권을 삼키면서 사업을 확장했다는 눈총을 사고 있다. 술렁이는 민심을 정치인들이 놓칠 리 없다. 카카오는 8개 상임위원회에서 증인 출석 대상에 올랐다. 김범수 의장도 소환됐다. 여당은 공정거래위원회, 방송통신위원회 등이 낸 규제 법안들을 집중 논의 중이다.

플랫폼 비즈니스는 사용자가 많아질수록 제공하는 서비스의 가치가 커지는 ‘네트워크 효과’ 때문에 한번 올라간 시장점유율을 무너뜨리는 게 어려워서 독과점 폐해 우려가 크다. 한 집계에 따르면 카카오톡의 국내 메신저 시장 점유율은 90%, 이용자 수는 4500만 명에 육박한다. 이렇게 네트워크 효과에 갇힌 소비자들이 코로나 사태가 불러온 비대면 사회에서 본격적으로 지갑을 열기 시작했다. 코로나 사태 발발 직전 3만 원이던 카카오 주가는 올해 17만 원을 찍었고 계열사 수도 158개까지 불어났다. 19세기 말 미국 정유시장의 90% 이상을 장악했다 해체된 ‘원조 문어’ 스탠더드오일을 연상시킬 법한 수치다.

플랫폼의 시장지배력 남용을 경계해야 하는 건 맞다. 그러나 플랫폼 때리는 데 숟가락 얹기 바쁜 정치인들과 법조인 모시기 급급한 기업들을 보면 과연 이래서 제대로 된 대책이 나올까 걱정이 되는 것도 사실이다. 불공정 행위를 판단하고 시정하는 일이 실제 그리 간단치 않다. 흔히 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을 때 시장지배력이 생긴다고 보는데 결국 중요한 건 가격이다. 혁신 플랫폼의 등장으로 소비자가 좀 더 싸고 편리하게 물건을 구매하게 됐다면 그 플랫폼은 전체 파이를 늘렸다고 볼 수 있다. 플랫폼의 자사 상품 판매도 소비자 입장에선 나쁘지만은 않은 일이다. 이마트를 비롯해 이미 많은 유통기업이 자체 브랜드 상품을 판매하고 있지 않은가.

입점업체에 대한 과다수수료 문제는 기본적으로 플랫폼 간 경쟁이 해결할 일이다. 규모의 경제가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서 특별히 큰 것 같긴 하지만 그렇다고 자연독점 시장처럼 오직 한 플랫폼이 모든 중개 서비스를 제공하는 승자독식 구조가 필연적인지는 확실치 않다. 시장마다 상황이 다를 가능성도 있다. 경쟁이 아예 없는 독점시장과 두 개의 기업이 경쟁하는 과점시장은 천지 차이다. 수수료 규제는 기존 플랫폼의 이윤을 조절하는 단기적 효과는 있을지 모르나 장기적으로 ‘시장 경합성’을 낮춰 신생 기업의 싹을 자르고 시장 구조를 정체시키는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다. 잠재적 경쟁자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으면 심지어 독점 플랫폼도 쉽게 수수료를 올리기 어렵다.

사실 이미 10여 년 전부터 온라인 플랫폼의 불공정 경쟁 문제가 대두되기 시작했다. 한국 사회가 익숙한 한 사례는 ‘포털 뉴스’다. 네이버 같은 인터넷 포털과 기존 언론사들 간 갈등은 요즘 플랫폼 사업자와 입점한 소상공인·자영업자들 간 갈등과 크게 다르지 않다. 다만 이제는 유사한 상황이 음식, 택시, 만화 등 광범위한 분야에서 일어나고 있다. 플랫폼이 알고리즘을 자신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왜곡해 소규모 이용자에게 불공정한 진입장벽을 조장한다는 의혹도 포털 뉴스의 편향성 논란에서 접한 바 있다.

많은 우려에도 온라인 플랫폼이 혁신과 성장 측면에서 중요하다는 데는 별 이견이 없다. 소비자들이 이미 애용하고 있고, 한국 경제에서 서비스업 생산성은 원체 취약하다.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모빌리티조차 월등한 역량에도 적자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포털 뉴스의 경우 신문 구독률은 줄였지만 뉴스 소비 총량은 늘린 것으로 평가받는다. 새로운 인터넷 매체와 혁신적 저널리즘을 탄생시키는 데도 기여했다.

현재 논의 중인 ‘온라인플랫폼공정화법’(온플법)은 중개거래계약서 작성 의무화를 골자로 한다. 온플법은 계약서의 내용까지 정부 통제 아래 두고 있어 과도한 규제라는 비판을 받고 있는데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상품이 플랫폼에 노출되는 순서, 형태, 기준을 기재하도록 하는 조항이다. 마치 부동산 중개업소에 집을 맡기면서 어디에 어떤 문구로 매매 광고를 붙일지 계약서에 쓰자는 것과 비슷하다. 굳이 왜 이런 간섭까지 하려고 할까? 법으로 못 박은 규제는 한번 만들면 고치기 힘들다. 섣부른 규제는 혁신을 막고 대기업의 아성만 더 공고히 할 수 있다. 정부는 충분한 플랫폼 경쟁 확보를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

이지홍 객원논설위원·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가을 국회#온라인 플랫폼#경쟁 확보 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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