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 임원서 택배 노동자 된 남편, 전업주부서 작가로 변신한 아내[서영아의 100세 카페]

서영아 기자 입력 2021-09-05 07:00수정 2021-09-05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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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인생 2막>준비없이 맞은 퇴직, 길고 깜깜한 터널 거쳐 새로운 세상으로
“거품 걷어내는 데 2년…과거는 싹 다 잊었습니다”
“퇴직후는 유목민의 삶, 지금이 더 건강하고 행복합니다”
은퇴 후 배우자는 보험같은 존재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라는 제목의 책을 우연히 접하고 읽어본 건 한참 전인데 한동안 묵혀뒀다. 아내의 입장에서 서술된 책이라 남편의 입장이 궁금했다. 자칫 너무 적나라하게 그려져 남편 입장에서는 기분 나쁠 수도 있지 않을까. 박경옥 작가에게 인터뷰 요청을 하며 혹시 부군도 함께 오시면 어떠시겠냐고 조심스레 타진하니 흔쾌히 응하겠다고 한다. 인터뷰 장소는 자택이 좁으니 밖에서 만나자고 했다. 지난달 24일 부부가 동아일보를 찾았다. 아내의 오전 수업이 끝나고 남편의 오후 출근을 앞둔 틈새시간대, 점심시간을 낀 두 시간 반 정도가 주어졌다. 그날 비가 많이 내렸다.

우산 함께 쓰는 건 오랜만인 듯, 어딘지 어색해보이는 강찬영 박경옥 부부. 청계천에서.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53세에 닥친 퇴직, 재취업과 두번째 퇴직, 그 후 2년간의 도전과 실패의 반복…. 산전수전 겪으며 어깨에서 힘을 뺀 남편은 택배 회사에서 일하기 시작했다. 전업주부였던 아내는 작가로 데뷔했다. 가장의 퇴직 이후 숨 가쁘게 돌아간 자신들의 삶의 기록이 책이 되었다. 이제 깜깜한 터널 같던 시기를 빠져나온 부부는 “내려놓는다는 각오를 하니 새로운 삶이 펼쳐졌다”고 말한다.


○갑작스레 닥친 경영진 일괄사퇴

7년전, 강찬영(60) 씨는 27년간 다닌 한진해운 임원직을 내놓았다. 아무리 임원이 ‘임시직원’의 준말이라지만, 성과가 좋았고 나이도 있어 한 번쯤은 더 할 것을 기대했다. 하지만 경영이 휘청대던 회사는 주주들에게 ‘자구노력’을 보여줘야 했다. 사장을 비롯해 전 경영진이 일괄 사퇴했다. 그 2년 뒤 한진해운은 파산했다.

“그래도 처음엔 여유가 있었지요. 4개월 만에 같은 계열 중소기업에 부사장으로 옮겼으니까요. 그런데 제가 주도한 외국회사와의 프로젝트가 성사 직전에 무산됐어요. 역할이 없어진 상태에서 회사에 있는 건 면목없는 일이어서 사직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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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만 해도 어딘가에 새로 자리를 잡을 거라고 생각했다. 무수히 많은 이력서를 썼지만 다음은 없었다. 그렇게 2년이 흘러갔고 통장이 바닥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가 아내에게 별 얘기 없이 택배회사 물류센터 일을 시작한 것이 그 즈음이었다.


강찬영 씨는 서울 구로구 오류동에 위치한 택배 물류회사에서 4년째 분류와 상하차일을 하고 있다. 지난 시간을 정신노동자가 육체노동자로 변하는 과정이라 말하는 강씨는 일하면서 체중 8kg이 빠졌다고 한다. 강찬영 씨 제공


○집 줄이고, 적게 벌어 적게 쓰는 삶

박경옥(57) 씨는 그런 남편을 지켜보며 “당신이라면 할 수 있다”고 격려했다. 하지만 점차 50대의 관리직 재취업은 불가능에 가깝다는 걸 깨닫게 됐다. 이때까지도 과거의 씀씀이를 유지하고 있었고 두 아들은 대학생이었다. 마침 유학을 떠난 둘째아들 학비까지 대주고 나니 위기의식이 들었다.

“매달 고정으로 들어오는 현금이 필요했어요. 남편만 쳐다볼 수는 없다보니 저도 돈 벌 길을 백방으로 찾았죠. 감초농사도 지어보고, 고향에서 해산물을 떼어와 택배로 팔아도 보고…. 결국 집을 줄이기로 했어요.”

정든 37평 아파트를 전세로 내놓고 16평 빌라로 이사했다. 남는 전세금으로 월세가 나오는 오피스텔을 장만했다. 이사 전 중고장터에서 팔 수 있는 건 모조리 팔고 못 파는 것은 버렸다. 스페인과 네덜란드, 두 차례 해외 주재원으로 근무하며 쌓인 자잘한 세간들도 미련 없이 헐값에 팔았다. 추억만 남으면 되는 것이라고 스스로를 다독였다. 이사 간 빌라는 공장 옆이라 먼지가 많고 비좁지만 남편 직장이 있는 오류역까지 한 번에 가는 1호선 전철역이 가깝다.

박 씨는 서울시와 구청 등 각종 구직센터에서 닥치는 대로 일거리를 찾았다.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재능기부를 하다보니 조금씩 수입도 생겼다. 최근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추가했다. 서울시나 구청 등에서 제공되는 공공일자리들은 어떤 일이건 월 30~40만원 정도만 벌 수 있도록 설계돼 있는데 경쟁이 치열하다.

“중·노년 중에는 작은 수입이라도 얻으려 애쓰는 분이 무척 많아요. ‘학습지원단’이나 ‘상담’처럼 좀 우아한 일거리는 해외유학파나 고위공직자 등 스펙이 대단한 분들이 줄지어 대기하고 있어요. 다들 품위는 유지하면서 봉사 겸 사회생활 겸해서 월 몇십만 원이라도 벌고 싶은 거죠.”

2002년 스페인 근무를 마치고 한국에 귀임하기 전 현지 직원들과 저녁식사를 했다. 강찬영 씨 제공


○“예순 다 돼 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강 씨는 4년 전 시작한 택배회사 일을 지금도 계속하고 있다. 매일 오후 4시부터 11시 경까지 택배 분류와 상하차일을 한다. 젊은이들도 며칠 일해보고 그만둔다는 ‘극한직업’이다. 업무량에 따라 출퇴근시간을 조절하는데 월수입은 대략 120~130만 원 정도다.

“예순이 다 되어 육체노동의 신성함을 배우고 있습니다. 몸을 움직이니 잡념이 사라지고 건강해졌어요. 그렇게 노력해도 안 빠지던 체중이 8kg이나 줄었습니다.”

오전에는 온라인으로 수업을 들었다. ‘주독야경(晝讀夜耕)’인 셈이다. 원광디지털대 동양학과에 등록해 오전 내내 강의 듣고 직장까지 왕복 2시간 남짓 걸리는 전철에서 복습하는 방식으로 생활의 리듬을 만들었다.

“회사생활은 영업의 연속이라 매일 밤 술 마시고 주말이면 골프 치러 다녔습니다. 그런 생활에 중독돼 있었어요. 은퇴하면 좋든 싫든 자기 시간을 갖게 됩니다. 시행착오 겪고 시달리고 바뀐 상황을 받아들이면서 ‘정말 내가 하고 싶은 게 뭐냐’는 근원적인 질문을 시작하게 되죠. 진정한 나를 찾는 일은 처음입니다.”

그가 내민 명함의 직함은 ‘우주변화원리연구소’ 소장이다. 동양학을 함께 공부할 사람을 찾는다고 한다.

부부의 놀이는 공부다. 현재는 동양학이 공통된 관심사다. 교보문고에 들른 강찬영 박경옥 부부. 이훈구 기자 ufo@donga.com



○ 직업에는 귀천이 없다, 다양함이 있을 뿐

아내는 함께 헤쳐나온 남편의 퇴직과정을 책으로 써냈다. 2019년 7월 나온 ‘오늘 남편이 퇴직했습니다(나무옆의자)’다. 최근 5쇄를 찍었고 타이완에서 번역본이 나왔다고 한다.

난생처음 책을 쓸 용기를 낸 계기가 있었다.

“남편 퇴직이후 세상이 뒤바뀌는 경험 속에서 우울증이 찾아왔어요. 그 즈음 중장년들이 본인 이야기를 털어놓는 유튜브 프로그램에 참여하게 됐는데, PD와 카메라맨 두 분이 제 얘길 너무 열심히 들어주시는 거예요. 이분들이 어떤 해결책도 줄 수는 없지만 제 말을 들어준다는 것만으로도 위로받는 느낌이 들었고 마음속 응어리가 풀어지며 후련해졌어요. 당시 책을 쓰면 어떻겠느냐는 권유도 받았죠.”

-책 내용을 보면 남편이 싫어할 내용도 있는 것 같은데….

박 씨가 “쉽지 않았어요”라며 웃기 시작하자 강 씨가 끼어든다. “은퇴하는 분들에게 제가 겪은 것을 전달하는 것도 의미있겠다 싶어서 책이 조금 과장되게 포장되더라도 감수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과정에서는 힘들었어요. ‘삼식이’란 표현이 대표적입니다. 절대 그 말을 쓰면 안된다고 신신당부했는데 썼더라구요. 제가 화를 냈죠.”

박 씨는 “독자들 중에 책을 낸 것 자체에 대해 비난하는 반응도 있었다”고 말한다.

“대기업 임원까지 했으면 조용히 살 것이지 무슨 택배회사에서 일을 하냐는 둥의 비난이죠. 우리 사회에 직업에 대한 고정관념이 심한 것 같아요. 제가 몇 년간 일자리 찾아다니며 보면 다양한 역할 중 하나를 내가 하고 있을 뿐이예요. 우린 모두 다양성의 세계를 살고 있고 안정된 삶은 없어요. 저희를 ‘대기업 임원까지 한 친구가 왜 나락으로 떨어졌냐’는 식으로 보는데, 우린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았거든요.”


박경옥 작가는 동의보감과 분노조절장애 강사로 구청이나 도서관 등에서 강의를 한다. 책을 낸 뒤에는 ‘퇴직은퇴설계’ 강의를 해달라는 요청이 많아졌다. 코로나 탓에 요즘은 온라인 강의를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박경옥 씨 제공



○은퇴 후 배우자는 보험같은 존재

큰 아들은 지난 봄에 결혼했고 둘째는 유학 간 일본에서 취직해 눌러앉았다. 부부의 고난을 지켜보며 아이들은 일찍 철이 들었다고 한다. 집에는 오롯이 부부만 남았다.

“긴 터널을 지나온 기분입니다. 우린 살 수 있다, 괜찮다는 자신감이 들어요. 우리 둘만 남았는데 서로가 소중한 존재입니다. 서로 스승이자 친구이자 동반자로 다중 역할을 해줘야 해요. 좋은 배우자가 가장 좋은 보험인 것 같아요.”

참고로, 이 부부가 친구처럼 놀 때 하는 것은 공부다. 돈이 적게 들고 만족도는 높기 때문이란다. 동양학이 공동의 관심사다.

-흔히 남편들이 은퇴해 가정으로 돌아오면 아내들의 스트레스가 늘어나는 ‘은퇴남편증후군’을 호소하는데요.

“제 나름의 생활이 있는데 갑자기 끼어드니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기도 하죠. 비서와 기사를 두고 일하다가 집에 돌아온 남편은 딴나라에서 온 사람 같았어요. 집에서도 ‘oo 알아봐라’ 한마디면 다 해결되는 줄 아는 식이죠. 그게 아니라는 걸 알려주느라 애먹었어요. 그래도 적응 기간이 필요하다는 걸 이해하고 기다려주면 조금씩 나아지던데요.”

-퇴직이 갑작스러울수록 마음의 상처, 달라진 생활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혼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합니다.

“고위직의 비자발적 퇴직의 경우 여러 사연이 있지요. 제가 아는 모 은행 지점장은 퇴직 뒤 3주일을 앓아누우셨대요. 너무 억울해서. 가장 실적이 좋았고, 그래서 마음을 놓고 있는 상황에서 퇴직을 통보받았거든요. 평생 그 억울함을 어쩌지를 못하게 될 수도 있지요. 겪어보니 퇴직 후 마음치료 프로그램이 있어야 해요. 제가 우연히 유튜브 프로그램을 통해 마음치료 효과를 얻었듯이 말이죠. 퇴직자가 ‘난 당시 억울했어. 난 더 일할 줄 알았단 말야’라고 충분하게 털어놓을 수 있는 자리가 없어요.”


○은퇴 후 재취업은 기대수준 낮춰야


-이제 경력을 살린 재취업은 포기한 건가요.

“50세 넘어 경력을 살린 재취업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란 걸 서서히 깨달았어요. 생각해보세요. 어딜 가나 피라미드식 조직인데 그 상단에는 내부에서 올라오려는 사람들이 줄지어 있어요. 웬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거나 전관예우가 아니고서야 굳이 외부에서 굴러온 돌을 그 꼭대기에 박아넣을 이유가 없는 거죠.”(박씨)

강찬영 씨의 말은 더 현실감이 있다. “회사가 나에게 연봉 1억을 준다면 최소한 10억 정도 이익을 뽑아내야 합니다. 내가 이 회사에 10억 정도 가치를 가져다줄 수 있는가라고 자문해봐야 하는 거죠. 입장 바꿔놓고 생각하니 판단이 되더라구요.”

이런 그는 “지금이 딱 좋다”고 말한다.

“이리저리 둘러보니 월급 200만 원 정도부터는 고용주나 일 그 자체에 자기 삶을 구속당해야 합니다. 제 나이쯤 되면 일은 보람될 정도로만 열심히 하고 자신을 들여다보는 게 맞는 것 같습니다. 대신 소비를 줄이면 됩니다. 적게 벌어 적게 쓰니 세상 편하고 즐겁습니다.”

강찬영씨가 네덜란드 법인장으로 근무하던 시절, 벨기에 선박주들을 초청해 사이클링 행사를 열었다. 강찬영 씨 제공



○중장년 재테크와 경제 공부 필요

책을 읽다 보면 이 부부가 경제적으로 안타까운 선택을 하는 경우가 적지 않게 등장한다. 예컨대 남편이 임원이 된 2013년, 부부는 갖고 있던 재건축아파트를 팔아버렸다. 이후 경제가 내리막으로 들어설 거라고 봤다. 그 뒤 이들은 다시는 그 아파트 시세를 쳐다보지 않는다고 한다. 또 퇴직 전에는 팔 수 없었던 한진해운 우리사주를 퇴직 후에도 ‘큰 회사니까’ 믿고 팔지 않았다가 회사 파산으로 수천만원이 휴지조각이 돼 버렸다.

“재테크 같은 것 신경 쓰지 않고 살아왔는데, 이제는 그러다가 큰일 날 것 같아요. 저희도 물론 그렇지만 후배들은 젊은 시절부터 경제나 금융공부도 하고 재테크도 해야 나중에 어려움을 겪지 않을 듯합니다.”

이뿐 아니다. 월세를 받기 위해 구입했던 오피스텔은 자주 말썽이 생겼고 팔려고 해도 팔리지 않았다. 2017년 정부 권장대로 임대사업자로 등록했는데 불과 몇 년 만에 분위기가 바뀌어 ‘적폐’로 몰리는 느낌마저 든다. 박 씨 개인에게 따로 부과되는 건강보험료도 없는 살림에 엄청난 부담이다.

“세금 제도가 휙휙 바뀌면서 인생계획이 엉망이 되고 있어요. 남편 나이 기준 63세부터 국민연금이 나옵니다. 그 돈만으로 서울에서 살기는 어려울 텐데, 생각이 많네요.”

이런 박씨는 정부지원사업인 50플러스 보람일자리로 저소득 어르신 급식사업의 주방보조로 일하게 됐다고 기뻐하고 있다. 매일 아침 8시부터 3시간씩 일하러 나가는데 한 달 내내 일하면 최대 40만 원을 받는다. “이거 벌어서 세금 내야 해요. 하하”



※‘100세 시대’, 우리는 얼마나 준비돼 있을까요. ‘서영아의 100세 카페’에서 그 답을 찾아봅니다. 풍요로운 인생 후반전을 위해 준비할 것, 생각해볼 것, 알아둘 것 등 다양한 메뉴로 찾아뵙겠습니다. 격주로 실리는 ‘이런 인생 2막’ 코너에서는 멋진 인생 2막을 만들었거나 준비하는 독자 사례를 소개합니다.


서영아 기자 s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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