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장생-표문-팔팔… 튀는 이름에 막걸리 구독까지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8월 14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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찌그러진 양은사발은 잊어라… 확 젊어진 막걸리
올해 20대 막걸리 구입 46% 증가… 3050 매출신장률 앞지르는 기현상
다양한 변신 가능한 막걸리 응용… 죠리퐁-바닐라 커스터드 넣기도
특등급 쌀로 빚거나 쌀 함량 늘려… 고급화에 민감한 구매층 사로잡아

아저씨들의 술 혹은 어르신들의 술로 여겨졌던 막걸리가 이색 재료와 통통 튀는 카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서울장수가 지난해 내놓은 ‘십장생 캠페인’ 관련 굿즈. 유통기한이 10일이라는 신선함을 강조했다.(왼쪽 사진), 대한제분 브랜드 ‘곰표’를 뒤집어 만든 ‘표문 막걸리’.(가운데 사진), SPC가 쉐이크쉑 한국 진출 5주년을 맞아 내놓은 ‘막걸리 쉐이크’.(오른쪽 사진) 서울장수·대한제분·SPC 제공
아저씨들의 술 혹은 어르신들의 술로 여겨졌던 막걸리가 이색 재료와 통통 튀는 카피로 MZ세대(밀레니얼+Z세대)를 사로잡고 있다. 서울장수가 지난해 내놓은 ‘십장생 캠페인’ 관련 굿즈. 유통기한이 10일이라는 신선함을 강조했다.(왼쪽 사진), 대한제분 브랜드 ‘곰표’를 뒤집어 만든 ‘표문 막걸리’.(가운데 사진), SPC가 쉐이크쉑 한국 진출 5주년을 맞아 내놓은 ‘막걸리 쉐이크’.(오른쪽 사진) 서울장수·대한제분·SPC 제공
삼국시대부터 마셨다고 알려진 유구한 전통의 막걸리가 최근 ‘힙한 술’로 거듭나고 있다. 사발에 따라 먹는 시큼털털한 맛만 막걸리의 전부로 상상한다면 오산이다.

미국 뉴요커들이 즐겨 먹는 수제버거와 협업해 탄생한 ‘밀크셰이크형 막걸리’가 등장하는가 하면 어린 시절 즐겨 먹던 ‘죠리퐁’이 들어간 막걸리도 인기 있다. 천편일률적인 병에 담겨 고리타분해 보였던 막걸리가 재미난 카피로 무장하거나 굿즈로 나와 MZ세대(밀레니얼+Z세대)의 눈길을 사로잡고 있다. 청년 양조인들을 중심으로 개성 있는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도 점점 커지고 있다. 온라인으로 막걸리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구독료를 내면 일정 주기로 막걸리를 보내주는 ‘막걸리 구독 서비스’까지 등장해 힙스터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 죠리퐁 막걸리에 셰이크까지…이색 막걸리 전성시대

최근 막걸리 업계는 MZ세대의 호기심을 자극하는 제품을 잇달아 내놓고 있다. ‘막걸리 쉐이크’가 대표적이다. 지평주조는 국내에서 ‘쉐이크쉑(Shake Shack)’을 운영하는 SPC그룹과 지난달 ‘막걸리 쉐이크’를 선보였다. 쉐이크쉑은 미국 뉴욕 맨해튼 매디슨스퀘어의 햄버거 카트에서 시작한 수제버거집. 뉴요커들 사이에 선풍적인 인기를 끌어 현재 글로벌 수제버거 체인이 됐다. 버거는 탄산음료와 먹는다는 고정관념을 깨고 셰이크와 먹는다는 새로운 콘셉트를 내세우며 갖가지 셰이크를 파는데, 한국 시장에서는 ‘막걸리 쉐이크’를 추가한 것이다.

‘막걸리 쉐이크’는 전통 막걸리와 어울리는 바닐라 커스터드, 라이스 토핑을 섞었다. 막걸리의 향과 맛이 나는 동시에 뻥튀기가 씹히는 독특한 맛이어서 인기 있다. SPC 관계자는 “‘막걸리 쉐이크’는 이전에 출시한 신제품보다 약 2배 이상 많이 판매되고 있다”고 전했다.

국순당의 ‘쌀막걸리’와 크라운제과의 죠리퐁을 컬래버레이션한 ‘국순당 쌀 죠리퐁당’도 눈에 띈다. 막걸리에 달달한 죠리퐁 과자를 타서 먹는 맛을 그대로 구현한 막걸리로, 당초 10만 캔 한정 상품으로 기획했다가 반응이 좋아 30만 캔으로 생산량을 늘렸다. 국순당 관계자는 “30만 캔도 거의 완판돼 추가 물량을 생산할 예정”이라며 “달달한 술을 즐겨 찾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막걸리 업계가 이렇게 변신을 시도하는 이유는 막걸리를 찾는 젊은층의 비중이 늘고 있기 때문이다. 편의점 세븐일레븐에 따르면 올 들어(1월 1일∼8월 10일) 20대의 막걸리 매출은 전년 동기보다 46.4% 올랐다. 특히 30, 40대(34.8%)나 50대(33.8%)보다 매출 증가율이 높았다. 세븐일레븐 관계자는 “최근 소주나 맥주뿐만 아닌 다양한 주류에 대한 소비자들의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며 “‘막걸리는 어르신의 술’이란 고정관념은 점차 옛말이 돼 갈 정도로 젊은층이 많이 즐기고 있다”고 했다.

브랜드 이미지를 젊게 바꾸려고 노력하기도 한다. 막걸리 브루어리인 한강주조가 대한제분과 협업해 선보인 ‘표문 막걸리’가 대표적이다. 표문은 ‘곰표’를 뒤집은 말이다. 옛날 술로만 취급받던 막걸리의 이미지를 뒤집자는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다. ‘표문 막걸리’는 올 4월 첫 라이브커머스 판매에서 준비된 물량 800병을 방송 2분 만에 다 팔아치울 만큼 젊은층의 ‘인싸템’(인사이더+아이템)으로 자리 잡았다.

막걸리 점유율 1위를 달리는 서울장수도 막걸리 시장 수성에 나섰다. 제품 라벨에 ‘십장생(10일 장수 생고집)’이란 문구로 장수막걸리의 짧은 유통기한과 생(生)막걸리의 신선함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서울장수는 이마트24와 함께 막걸리 병 모양을 형상화한 플래너와 주막 차림판 모양으로 디자인한 점착 메모지 등 레트로 감성의 굿즈를 내놓아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 가격 더 주더라도 프리미엄 막걸리 찾기도


소규모 양조장을 중심으로 고급화에 방점을 찍은 프리미엄 막걸리도 인기 있다. 아스파탐 등 인공 감미료를 넣지 않되 원료의 함량은 늘리는 등 원가가 높아지더라도 품질을 높이는 데 주력했다. 경기 김포시 팔팔양조장의 ‘팔팔막걸리’는 특등급 김포금쌀로 술을 빚는다. 한강주조의 100% 서울쌀로 만든 ‘나루생막걸리’는 막걸리의 향과 맛을 살리기 위해 일반 막걸리보다 쌀을 두 배 이상 사용했다. 이 나루생막걸리는 정부가 주최한 2021년 우리술품평회에서 막걸리부문 대상을 받기도 했다.

소비자들도 더 이상 막걸리를 무조건 싼 맛에 먹지 않는다. 돈을 더 지불하고라도 맛있는 막걸리를 즐기려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의 ‘2020년 주류 시장 트렌드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해 프리미엄 막걸리에 대한 소비자의 지불 의사 금액은 평균 2865원으로 4년 전 2343원보다 약 500원 늘었다. 보고서에 따르면 수입 쌀을 주원료로 하는 국산 막걸리의 가격은 대형마트 기준 1병(750mL)에 1300원인데, 이를 국산 쌀로 대체한다면 소비자들은 추가로 평균 1355원을 지불할 의사를 보였다.

전문가들은 MZ세대가 ‘가치소비’를 하려는 경향과 맞물려 프리미엄 막걸리 시장이 더욱 활발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가치소비는 자신이 지향하는 가치를 포기하지 않기 위해 더욱 비싼 비용이나 부담을 감내한다는 의미다. 명욱 세종사이버대 바리스타&소믈리에학과 겸임교수는 “기존에는 소주든 맥주든 대량 생산한 특정 주종 한두 가지가 압도적인 점유율을 보였다면 최근에는 개성 있는 다양한 품종의 술을 즐기려는 사람이 늘고 있다”며 “지역 농산물 등 고급 재료로 만든 막걸리에는 비용을 아끼지 않으려는 소비 패턴이 나타나고 있다”고 분석했다.

○ 막걸리 구독 서비스까지…규제 완화로 커지는 ‘막걸리판’

프리미엄 막걸리가 성장하기까지는 규제 완화가 한몫했다. 2015년 주세법이 완화되면서 맥주에 한정됐던 소규모 주류 제조 및 판매 면허가 막걸리 등 전통주로 확대됐다. 1000L 이상 5000L 미만 저장 용기만 갖추면 누구나 소규모 양조장을 운영할 수 있게 관련 규제가 완화됐다. 2017년부터는 온라인 판매가 허용되면서 청년 창업자들의 진입 장벽이 크게 낮아졌다. 전통주 ‘삼양춘’을 만드는 송도향전통주조의 강예진 마케팅 팀장은 “최근 5년간 2030 연령대의 젊은 양조인들이 전통주 창업에 뛰어들면서 기존 전통주의 틀을 깨려는 시도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미디어에 인증샷을 올릴 만한(instagrammable) 라벨, 색깔, 스토리텔링 등이 독특한 막걸리들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다.

막걸리의 온라인 판매가 가능해지면서 구독 서비스 등 새로운 판매 모델도 생겨났다. ‘느린마을막걸리’로 유명한 배상면주가는 지난해 1월 온라인 주류 판매 플랫폼인 ‘홈술닷컴’을 선보이며 전통주 정기구독 서비스인 ‘월간홈술’을 운영하고 있다. 1, 2, 4주 등 원하는 주기로 다양한 전통주를 받아볼 수 있다. 구독 신청 고객은 10% 할인 혜택도 받을 수 있다. 배상면주가 관계자는 “월간홈술 구독자 수가 론칭 이후 매달 5% 정도 증가하는 추세”라며 “구독경제에 익숙한 MZ세대에게 특히 반응이 좋다”고 말했다. 전통주 큐레이션 업체 ‘술담화’도 매달 3만9000원을 내면 2∼4병의 전통주와 그에 맞는 안주까지 골라 구독자에게 배달해준다.

일반 소매점에서 구하기 힘든 전통주를 병 단위로 판매하는 전통주 보틀숍도 속속 생겨나고 있다. 대형마트나 편의점과 달리 많게는 수백 종의 다양한 전통주를 구매할 수 있다. 주점에서 구매할 때보다 20∼30% 저렴하게 전통주를 구입할 수 있는 데다, 직접 시음하거나 전문가의 설명도 들을 수 있어 선호도가 높다. 주류업계 관계자는 “이제 사람들은 더 이상 막걸리 하면 찌그러진 양은냄비와 파전만을 떠올리지 않는다”며 “막걸리 업계가 재료와 서비스 등으로 차별화를 꾀하면서 ‘막걸리판’이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사지원 기자 4g1@donga.com
#막걸리#구독 서비스#프리미엄 막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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