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조세감면 줄여 공약재원 쓴다는 대선주자들의 몽상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7월 27일 00시 01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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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재정부가 어제 내년도 세법 개정안을 내놨다. 세계 각국이 치열한 유치 경쟁을 벌이는 반도체·배터리 산업 투자에 대한 세액공제 확대 등으로 세금 1조5050억 원을 깎아주기로 했다. 코로나19 이후 잇따른 추경으로 재정 사정이 나빠졌는데도 정부가 세금을 깎아준 건 그만큼 재정 지원이 시급한 곳이 많기 때문이다.

향후 세수 전망은 밝지 않은데 여야 대선주자들은 수조∼수십조 원짜리 공약들을 줄줄이 내놓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소속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기본소득 공약 실현에는 연간 20조∼58조 원이 든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는 군 전역자에게 3000만 원의 사회출발자금을 지급한다고 했고,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신생아 때부터 적립한 1억 원짜리 통장을 사회초년생 청년에게 주자고 한다. 국민의힘 소속 원희룡 제주지사는 100조 원을 조성해 저소득층 지원 등에 쓰겠다고 밝혔다.

대선주자들은 자기 나름대로 재원 마련 방안을 제시하고 있다. 이 지사는 기존 예산 조정, 물가상승에 따른 세수 자연증가분, 조세감면 축소 등을 통해 재원을 만들겠다고 한다. 정 전 총리는 연 10조 원 정도인 상속세수를 공약 달성에 쓰겠다고 한다. 원 지사는 특수목적세 신설과 예산 조정을 통해 재원을 조달할 계획이다. 이 전 대표는 아직 재원 마련 방법을 밝히지 않았다.

하지만 재원 조달의 현실성은 높지 않아 보인다. 대폭 증세나 세목(稅目) 신설 없이 별도로 예산 수십조 원을 확보하는 건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이다. 정부 예산은 쓰임새와 수혜 대상이 대부분 정해져 있어 수백억 원을 줄이거나, 다른 용도로 쓰기도 대단히 어렵다. 기재부가 이번 세법 개정에서 유효기간이 끝난 86개 조세감면 항목 중 9개만 폐지한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세목 신설이나 증세는 경제 활력을 급격히 떨어뜨릴 위험이 크다.

문재인 정부 첫해 36%였던 국내총생산 대비 국가채무 비율은 2024년 54.7%로 높아진다. 이런 부담을 떠안고 차기 정부를 이끌겠다는 대선 주자라면 비현실적인 재원 계획에 기초한 허황한 공약 대신 가장 생산적인 곳에 재정을 집중해 경제의 활력을 높일 방법부터 고민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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