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원이 손들어준 자사고, 정부는 문닫으라니… 누굴믿고 교육하나”

최예나 기자 , 이소정 기자 입력 2021-06-19 03:00수정 2021-06-20 12: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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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클리 리포트]
교육청 상대 1심서 완승했지만… 끝나지 않은 ‘자사고의 눈물’
지난달 28일 서초구 서울행정법원 앞에서 서울지역 8개 자사고 교장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의 공가 사과와 항소 철회를 요구하는 모습. 이 학교들은 2019년 조 교육감으로부터 자사고 지정 취소 처분을 받았지만 법원이 “조 교육감의 지정 취소가 위법했다”며 모두 학교 손을 들어줬다. 동아일보DB
신문에 대문짝만 하게 광고라도 하고 싶었다.

‘서울 ○○고는 자율형사립고(자사고)입니다. 교육청이 일방적으로 지정 취소 처분을 했지만 우린 항소했고 아직 취소 처분이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법원은 우리가 낸 효력정지 가처분 신청을 인용했습니다. 그래서 지금도 우린 자사고입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대법원까지 갈 겁니다. 그러니 학교를 믿고 자녀를 맡겨 주십시오.’

학교로 걸려오는 전화를 받을 때마다 학부모들은 늘 같은 질문을 했다. “거기 자사고 취소되지 않았어요?” “가고는 싶은데…. 우리 애가 입학한 뒤 1심에서 패소하면 어떻게 되나요?”

서울 A고 교감은 2019년부터 서울시교육청과의 싸움에서 승소한 올해까지를 “정서적 고통이 가장 컸던 시간”이라고 회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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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송의 어려움도 컸지만 멀쩡한 학교에 불량 학교 낙인이 찍혔다는 울분이 가장 컸지요. 교육청이 정치적으로 지정 취소한 건데, 일순간 우수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한 학교가 돼 버리고…. 그게 아니라고 외부 학부모를 설득하는 게 너무나 힘들었습니다. 교육에만 쓰기에도 모자란데 그 시간과 노력이 얼마나 아깝던지….”(서울 B고 교감)

○ 갑자기 바뀐 평가지표가 만든 ‘불량 학교’


올해 서울지역 자사고 8곳(경희고 배재고 세화고 숭문고 신일고 이화여대사범대부속고 중앙고 한양대사범대부속고)은 잇달아 서울시교육청과의 행정소송에서 승소했다. 2019년 이들 학교의 자사고 지정을 취소한 조희연 서울시교육감에 대해 법원이 “교육감이 재량권을 일탈·남용한 것”이라며 학교 측 손을 들어줬기 때문이다. 이에 앞서 지난해 12월 부산 해운대고 역시 같은 이유로 승소했다. 남은 건 7월 8일 선고 예정인 경기 안산동산고뿐이다.

자사고 10곳의 법적 투쟁은 2019년 시작됐다.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에 따라 교육감이 5년마다 재지정 평가를 시행해 지정 목적의 달성이 불가능하다고 인정하는 경우 자사고 지정을 취소할 수 있다. 2019년 재지정 평가를 위해 교육부는 2018년 11월 교육청과 공동 개발한 자사고 평가지표 표준안을 수립했다. 조 교육감의 경우 그해 12월 27일 평가 대상 자사고 13곳에 2019년 평가 계획을 안내했다.

자사고들은 “사전 고지 없이 이전(2015년)보다 평가 기준 점수가 10점 상향되고, 일방적으로 평가지표 다수를 바꿔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평가 대상 기간은 2015년 3월 1일부터 2020년 2월 29일. 서울 C고 교장은 “시험 범위나 평가 방식이 바뀐다는 공지가 없었기 때문에 한 학생이 이전과 같은 기준일 거라고 생각하고 5년간 시험을 준비해 왔는데, 시험 직전에 바뀐 것이나 마찬가지”라고 말했다. 교육당국은 재판 과정에서 “교육감이 평가지표를 변경한 것은 재량 범위”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재판부는 “평가지표가 자사고들의 예측 가능 범위를 벗어나 신설되고, 자사고들에 불리하게 변경됐다”고 밝혔다. 예를 들어 이전보다 배점이 확대된 교육청 재량지표 중 서울시교육청의 경우 ‘안전교육 내실화 및 학교폭력 예방·근절 노력’에 3점을 줬다. 한 자사고는 ‘교직원 심폐소생술 교육 이수 비율 제고가 필요하다’는 등의 이유로 1.8점, 어떤 자사고는 ‘학폭 예방을 위한 다양한 인성 교육 프로그램이 부족하다’는 이유로 1.2점을 받았다.

이에 대해 재판부는 이렇게 밝혔다. “자사고들이 이러한 평가 요소들을 미리 고지받았다면 학교 운영에 반영했을 것이다. 또 해당 항목들은 교육기관이 보편적으로 추구해야 할 일반적 내용일 뿐 자사고 지정 목적 달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기 어려운데 3점을 부여한 것은 지나치게 과다한 배점이다.”

교육당국은 ‘학교 만족도’ 평가 영역은 5년 전 15점 배점에서 8점으로 크게 축소했다. 재판부는 “학생과 학부모의 요구에 부합하는 교육을 실시하고 있는지 평가하는 중요 지표인데 교육청이 사정 변경 없이 배점을 크게 감소시켜 만점을 받아도 자사고가 불이익을 받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또 서울시교육청이 감사 등 지적 사례로 5년 전 최대 5점을 감점할 수 있던 것을 12점으로 늘린 것에 대해서도 문제 삼았다.

○ 상처뿐인 승리…끝나지 않은 싸움

자사고 9곳은 ‘1심 완승’이라는 결과를 얻었지만 웃지 못하고 있다. 그 시간 동안 학교는 곳곳이 멍들고 피투성이가 됐다.

“학생들이 떠나갔어요. 올해부터 고등학교가 무상교육이잖아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으로 전면 등교도 안 되는데 굳이 비싼 등록금 낼 필요 있느냐’며 전학 간 아이들도 있고요.”(A고 교감)

“학교마다 소송에 수천만 원씩 썼어요. 조 교육감은 소송비 1억2000만 원을 세금으로 냈지만 우리는 너무나 힘들었죠. 돈보다 더 아까웠던 건 정신적 소모와 시달린 시간이에요. 교육적으로 쓴 거였다면 아깝지가 않을 텐데….”(서울 D고 교장)

자사고들은 조 교육감이 “항소하겠다”고 밝힌 데 분노하고 있다. 오세목 자사고공동체연합 대표는 “부당한 지정 취소 처분에 대해 사과하지 않고 항소를 철회하지 않으면 교육감 퇴진 운동을 전개하겠다는데도 (조 교육감이) 항소하겠다고 한다”며 “자사고들은 또다시 항소를 위한 시간과 에너지, 예산을 써야 한다”고 토로했다.

교육부는 “소송 당사자는 교육감”이라며 지금까지 어떤 입장도 표명하지 않았다. 하지만 ‘자사고의 일반고 전환’은 문재인 대통령의 국정과제인 만큼 항소에 같이 대응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고들은 “국가를 믿고 인재를 키워 보겠다는 일념으로 투자해 왔는데 정권이 바뀌고 일순간 죄인이 되니 허망할 뿐”이라고 말했다.

“자사고라는 게 이전 정부가 고교 평준화 속에서도 고교 교육의 다양화 특성화를 확대해야 한다며 제도를 만들어서 생겨난 거잖아요. 저희는 특정 정권이 아니라 국가를 믿고 그 정책에 호응해서 자사고를 만들었어요. 일반고라면 들이지 않아도 될 돈을 수백억 원씩 투자했고 질 좋은 교육 프로그램을 만들었고요. 그런데 정권이 바뀌었다고 학교를 사라지게 한다면 학생들은 도대체 어떻게 하라는 얘깁니까.”(서울 E고 교장)

○ “국가 믿고 교육했는데” 2025년 완전 폐지

자사고들은 교육 전문가에게 자사고가 일반고에 미친 긍정적 영향과 사교육과 무관한 학교 내 다양한 프로그램의 교육적 효과에 대해 연구 용역을 맡겼다.

B고 교감은 “자사고는 국가로부터 재정 지원을 안 받고 학생들이 낸 등록금에 의존하다 보니 학생과 학부모의 만족도를 높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여 왔다”며 “일반고에 없는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자사고끼리의 경쟁에서 지지 않기 위해 서로를 벤치마킹하며 함께 발전해 왔다”고 말했다.

이런 노력의 결과물 중 상당수는 일반고로도 전파됐다. 최근 일반고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학종(학생부종합전형) 스펙’ 프로그램은 원래 자사고에서 시작된 것이다. 예컨대 학생들이 꿈꾸는 직업의 전문가를 학교가 직접 연사로 모신 뒤 토론한 과정을 학교생활기록부에 기재해 학생들의 학생부를 더욱 풍부하게 채우는 것이다.

“일반고에서 전수해줄 수 있느냐고 해서 알려준 프로그램도 많아요. 상생이라고 생각했지요. 몇 년 지나 일반고에서 전학 온 학생들 학생부를 보면 자사고 프로그램들이 접목된 게 많더라고요.”(서울 F고 교장)

자사고들은 결국 진보 성향 교육감과 정부가 자사고를 죽이기 위해 ‘프레임’을 씌웠다고 주장하고 있다. ‘자사고가 일반고를 황폐화시킨다’거나 ‘자사고 때문에 사교육이 심화된다’는 프레임이 그것이다.

“자사고를 없애면 일반고가 발전하나요? 자사고의 장점을 전파시켜 일반고를 발전시킬 생각은 하지 않고 왜 없애려 하는지…. 그건 하향 평준화일 뿐이죠. 서울 전역에 자리한 자사고를 없앤다면 다시 학군 개념이 부활해 특정 지역에 학생들이 더 몰릴 겁니다.”(G고 교장)

1심 판결이 나온 행정소송에서 재판부도 같은 취지의 제언을 했다. ‘자사고들은 장기간 국가의 정책 방향에 따라 유인돼온 측면이 있음을 고려해야 한다. 교육감의 주장처럼 자사고가 고교 서열화 현상의 원인으로 지목받는 등 부작용이 드러났다면 평가 기준을 수정하여 학교법인에 그런 운영을 유도해야 타당하다.

하지만 정부는 자사고를 없애는 작업을 2020년 초에 마쳤다. 교육부는 2025년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가 일제히 일반고로 전환되도록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했다. 자사고들은 개정안이 부당하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지만 언제, 어떤 결론이 나올지 알 수 없다. 자사고들은 “법원이 손들어줘도 정부는 문 닫으라니 누굴 믿고 교육해야 하냐”며 “교육에 전념해야 할 학교가 어쩌다 국가와 소송전만 이어가게 됐는지 참담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민사고 교장 “일반고 전환땐 소수 정예교육 불가능… 폐교해야”
잠못 이루는 자사고, 외고, 국제고
“일반고 되면 2년간 한지붕 두가족… 학비 갈등-신입생 모집 대책도 막막”



“일반고가 되면 민족사관고가 추구해 온 소수정예 교육도, 설립이념 구현도 할 수가 없습니다. 정말 일반고가 돼야만 한다면 폐교할 겁니다.”(한만위 강원 민사고 교장)

전국의 모든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는 요즘 ‘시한부’ 인생을 살고 있다. 앞으로 4년 뒤면 사실상 강제 폐교나 마찬가지인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다. 교육부는 앞서 초·중등교육법 시행령을 개정하고, 2025년 모든 자사고, 외국어고, 국제고가 일반고로 일괄 전환되도록 법적 장치를 해두었다. 일부 영재학교나 과학고를 제외하면 이제 더 이상 대한민국에는 우수한 교육을 위한 특별한 학교는 존재하지 않게 되는 셈이다.

민사고가 폐교까지 결심한 건 일반고가 되면 우수 학생 선발도, 우수 교원 확보도, 특별한 교육과정 운영도 모두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민사고는 그간 전국 단위의 학생 선발을 통해 학생을 뽑고, 석박사급 교사를 확보해 남다른 교육과정을 제공해 왔다. 민사고 학생들은 한복을 입고 생활하며 국악과 국궁, 전통서예를 배운다. 민족에 대한 사명감을 교육 과정 속에 스며들게 한 것이다. 하지만 이젠 정부 정책에 폐교를 고민해야 하는 처지가 됐다.

자사고들은 일반고 전환 시 불거질 학비 갈등이나 학생 모집도 걱정이다. 일반고 전환 과정에서 2, 3학년은 자사고 시절 뽑은 학생인데 1학년은 일반고로서 뽑은 학생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경우 2, 3학년은 상대적으로 비싼 자사고 등록금을 내고 1학년은 일반고 학비를 내게 된다. 서울 지역 한 자사고 교장은 “실제로 과거 서울 대성고가 일반고 전환과정에서 이 문제로 학부모랑 큰 갈등을 겪었다”며 “일반고로 전환하면 최소 2년은 한 지붕 두 가족 상태가 되니 학교로서는 운영 부담이 상당하다”고 토로했다.

학생 수가 적은 지역에 위치한 자사고들은 학생 모집 자체도 걱정이다. 일반고가 되면 지역 내 근거리 학생 또는 1, 2지망 중 추첨 선발해야 하는데 자사고 때보다 지원자가 적을 수밖에 없어서다. 이는 지방뿐 아니라 서울지역 자사고도 걱정하는 문제다. 예컨대 서울 중부 도심지역의 경우 회사들은 많아도 주거인구나 학생 수는 적어 학생을 채우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다. 한 자사고 교장은 “중부 지역의 학생 배정 비율을 더 높게 주더라도 학교 정원을 채우기엔 역부족일 것”이라고 말했다.

최예나 yena@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이소정 기자
#자사고#교육청#자사고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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