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황인찬]한일 약식정상회담 무산

황인찬 논설위원 입력 2021-06-14 03:00수정 2021-06-14 08:41
공유하기뉴스듣기프린트
공유하기 닫기
러시아가 우크라이나 영토인 크림반도를 합병해 미국과 러시아 관계가 최악으로 치달을 때인 2014년 11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에서 미-러 정상이 깜짝 조우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다른 정상들이 모인 방으로 몇 분 늦게 들어서자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먼저 손을 들어 인사를 한 것. 푸틴 대통령이 다가가면서 두 정상은 7, 8분간 짧은 대화를 나눴다. 양국 관계가 껄끄러운 만큼 비공적인 ‘풀어사이드 미팅(pull-aside meeting)’으로 격을 낮춘 대화가 이뤄진 것이다.

▷풀어사이드는 ‘(대화를 위해) 불러낸다’는 뜻으로 보통 다자회의 중간에 회담장 한편이나 회담장 밖에서 열리는 비공식 약식 회담을 말한다. 국기 설치 등 격식을 차리지 않고, 수행자도 1, 2명에 그치거나 통역만 배석하기도 한다. 시간도 통상 20분을 넘기지 않는다. 일본어로는 ‘다치바나시(立ち話·서서 이야기함)’라고 한다. 우리말에는 정확한 표현이 없어 풀어사이드 형식의 약식 회담 정도로 풀어서 설명한다.

▷영국 콘월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처음 대면했다. 12일 정상회의장에서 양 정상은 간단한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어 같은 날 만찬장에서 문 대통령은 김정숙 여사를 손짓으로 불러 함께 스가 총리 부부에게 먼저 다가가 1분 동안 대화하는 모습이 방송 카메라에 포착됐다. 문 대통령이 보다 적극적인 제스처를 보였지만 한일 정상 간 약식 회담은 열리지 않았다.

▷문 대통령은 2019년 11월 태국 방콕에서 열린 ‘아세안+3(한중일) 정상회의’에서 아베 신조 당시 일본 총리가 회담장에 도착하자 “잠시 앉아서 이야기를 하자”고 권해 돌발 회담을 이끌어냈다. 영어 통역관만 있어 아베 총리 발언이 영어로 옮겨지면 이를 다시 한국어로 바꿔 전할 정도로 급작스럽게 마련된 자리였다. 11분간 격식 없는 대화는 다음 달 두 정상의 정식 회담 성사로 이어졌다. 과거사 갈등에도 불구하고 적어도 당시엔 한일 정상이 직접 만나서 문제를 풀어보자는 의지를 보여준 때였다.

관련기사
▷약식 회담은 혈맹 간에 이뤄지면 홀대 논란이 나오기도 하지만 경색된 국가 사이에서는 관계 유지나 개선의 표시로 보통 해석된다. 이번에 한일 약식 회담도 열리지 않은 것은 답답한 양국 관계를 그대로 보여준다. 미일 정상은 이번에 10분의 약식 회담을 가졌다고 한다. 기대했던 한미일 약식 회담도 없었으며, 한미는 외교장관 회담에 그쳤다. 북핵 문제 해결이나 한일 관계 개선에 있어 한국과 미일 간에 온도차가 있는 것은 아닌지 우려스럽다.

황인찬 논설위원 hic@donga.com
#러시아#우크라이나#크림반도#풀어사이드 미팅#문재인 대통령#스가 총리#약식 회담
0 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댓글쓰기 Copyright ⓒ 동아일보 & donga.com
당신이 좋아할 만한 콘텐츠
기사 의견 0개의 기사의견이 있습니다.
동영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