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세계는 혁신금융’… 집과 땅 담보로 돈 버는 후진 관행 벗을 때

  • 동아일보
  • 입력 2026년 1월 1일 23시 30분


첨단산업 패권을 장악하기 위한 국가 간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싹수’ 있는 기업을 찾아내고 투자해 미래의 성장엔진으로 육성하는 금융의 역할이 더 중요해지고 있다. 벤처캐피털이 키운 미국 ‘실리콘밸리’ 혁신 생태계를 따라잡으려는 세계 각국 금융회사들의 움직임도 빨라졌다. 그러다 보니 집과 땅을 담보로 잡고 돈을 빌려주고 챙긴 이자를 최대 수익원으로 삼아온 한국 금융 산업의 환골탈태가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도시국가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 6대 주요국의 전체 벤처캐피털 투자액 가운데 70% 이상을 차지한다. 스타트업 육성의 중요성을 일찌감치 깨달은 싱가포르 은행들은 창업한 지 2년이 채 안 된 기업이라도 차별화된 아이디어만 분명하면 1억 원 넘는 돈을 선뜻 대출해준다. 싱가포르 도심 빌딩의 외벽을 이용해 채소를 키우는 ‘수직 스마트 팜’을 개발한 혁신기업 등이 이런 지원을 받아 탄생했다.

이렇게 우호적인 금융환경을 좇아 중국, 동남아, 중동은 물론이고 한국의 스타트업들까지 싱가포르로 속속 본거지를 옮기고 있다. ‘제2의 딥시크’로 불리는 중국 인공지능(AI) 기업 마누스는 지난해 중국에서 싱가포르로 본사를 옮긴 뒤 덩치를 키워 최근 페이스북·인스타그램 운영사인 메타에 수조 원의 가치를 인정받고 인수되기도 했다.

경쟁국 금융회사들이 첨단산업과 벤처기업들의 미래에 투자하는 동안 한국의 금융권, 그중에서도 은행들은 여전히 주택담보대출에 의존하고 있다. 국내 은행권의 원화대출금 중 주담대 비중은 31%로 1년 전보다 오히려 높아졌다. 과도한 기업대출이 문제가 됐던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 이후 안전한 부동산 담보대출에 의존해 ‘땅 짚고 헤엄치기’ 영업을 해온 낡은 관행을 30년이 다 되도록 탈피하지 못한 것이다. 위험자본 투자가 본업인 벤처캐피털들마저 될성부른 스타트업을 찾아 투자를 늘리는 대신 자금 회수에 집중하고 있다. 한국에서 기업가치 1조 원이 넘는 ‘유니콘 벤처’의 출현을 기대하기 어렵게 된 이유다.

부가가치를 창출하지 않는 부동산에 금융자원이 과도하게 묶이면 국가경제의 활력은 당연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5년마다 1%포인트씩 하락해 이제는 2% 밑으로 추락한 원인 중 하나다. 이제 한국 금융권도 집과 땅에 묶인 국민의 돈을 인공지능(AI), 반도체 등 미래성장 산업으로 자유롭게 흐르게 만들 혁신금융에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


#첨단산업#벤처캐피털#실리콘밸리#싱가포르#스타트업#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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