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진 ‘연방죽 생태순환 수로 농업시스템’ 국가농업유산 됐다

  • 동아일보

연방죽 5곳-순환 생태수로 3.4km
제16호 국가중요농업유산 등재
하멜표류기 등 역사문헌 고증 성과
농업공동체 문화 보전 효과도 기대

전남 강진군 병영면 주민들은 벼 베기를 한 뒤 연방죽의 물을 빼고 가래치기로 붕어, 잉어, 가물치 등을 잡아 마을 잔치를 열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다. 강진군 제공
전남 강진군 병영면 주민들은 벼 베기를 한 뒤 연방죽의 물을 빼고 가래치기로 붕어, 잉어, 가물치 등을 잡아 마을 잔치를 열며 한 해 농사를 마무리한다. 강진군 제공
전남 강진군 병영면은 ‘하멜 표류기’의 주인공인 헨드릭 하멜(1630∼1692)이 13년 조선 생활 가운데 가장 오래 머문 곳이다.

병영면 곳곳엔 하멜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장 눈에 띄는 것은 황토와 돌을 이용해 쌓은 담장과 병영천 물길이다. 일명 ‘하멜식 수로’로 불리는 물길은 국내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구조다. 다른 지역의 수로는 보에 연결되는 수로를 파서 물을 보내지만 병영의 수로는 돌을 쌓아 보에서 분리된 수로를 만들었다.

강진에는 방죽과 저수지, 웅덩이(둠벙) 등이 약 200곳이 있다. 그중에서 연(蓮)이 자생하는 연방죽은 7곳이다. 원래는 30여 곳이 있었으나 둑을 높이는 공사로 사라졌다. 연방죽은 물이 귀한 병영의 저장고 역할을 했다. 병영천의 물은 수로를 따라 마을을 관통하면서 생활용수로 사용됐다. 다시 병영성 해자로 유입돼 군사용으로 활용되다가 연방죽에 저장돼 농업용수로 재사용됐다.

강진의 ‘연방죽 생태순환 수로 농업 시스템’이 제16호 국가중요농업유산으로 최근 등재됐다. 국가중요농업유산은 농민이 지역의 환경, 사회, 풍습 등에 적응하면서 만들어낸 유무형의 농업자원 중에서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것을 국가가 지정한 것이다.

등재된 농업유산은 병영면과 작천면의 연방죽 5곳과 순환 생태수로 3.4km다. 이 지역 농민들은 오래전부터 물이 부족한 환경을 극복하기 위해 연방죽을 설치하고 물을 이중 삼중으로 활용했다.

순환 체계의 역사는 600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417년 전라병영성이 지금의 광주 광산구에서 강진군 병영면으로 옮겨왔다. 전남에서 두 번째로 넓은 한들평야에서 군량미를 쉽게 확보하기 위해서였다. 병영성 내 주둔 병력이 1000명에 이르렀고 병영성을 중심으로 경제권이 형성돼 많은 주민들이 이주하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나 이들에게 물을 공급할 수 있는 하천은 수인산에서 발원한 병영천과 상림 쪽에 흐르는 성동천이 전부였다. 병영성은 성을 보호하는 해자에 상시 물을 공급해야 했다.

수자원 확보가 급선무여서 수인산 하류에 보 수백 개를 설치했고 이곳에서 물을 끌어들여 성곽 주변 해자를 채웠다. 생활과 방어에 쓰인 용수는 가뭄 때 인근 들판으로 돌려져 벼농사를 짓는 데 활용되는 순환 시스템을 구축했다. 이 시스템은 아직도 일부 활용되고 있다.

연방죽 등 수자원을 활용한 농업 공동체 문화도 보전할 가치가 있는 것으로 평가됐다. 이 지역 농민들은 해마다 10, 11월 벼 수확이 끝나고 물을 빼면 흙을 파는 데 쓰는 기구인 가래로 연방죽에서 고기를 잡는다. 일명 ‘가래치기’는 이웃과 정을 나누고 선조들의 지혜를 되새기는 소중한 자산이 됐다.

강진 향토사를 연구하는 주희춘 씨(55·강진일보 대표)는 “병영성 복원과 하멜 표류기 등 역사적인 자료와 문헌, 주민 증언을 바탕으로 수십 차례 현장 조사를 거쳐 옛 농업기술의 흔적을 발굴하고 입증한 것이 국가중요농업유산 지정으로 이어졌다”고 말했다.

강진군은 앞으로 3년 동안 국비 등 15억 원으로 실태 조사, 수로 복원, 농로 정비 등을 추진한다.

이승옥 강진군수는 “전승 가치를 인정받은 농업유산을 세계관개시설유산으로 격상하기 위해 올해 안에 모로코에 본부를 둔 세계배수위원회에 등재를 신청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정승호 기자 shjung@donga.com
#강진#연방죽 생태순환 수로 농업시스템#국가농업유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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