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잘 못하는데 회견하라니…” 오사카, 프랑스오픈 끝내 기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6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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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인터뷰 거부’ 벌금 징계 파장
“늘 긴장하고 ‘최선의 답’ 부담감… 내 정신건강 위해서 최선의 선택
헤드폰도 우울증 때문에 쓰는 것”
힝기스 등 스타들도 비슷한 고통

1일 프랑스 오픈에서 기권을 선언한 오사카 나오미(일본)는 평소 헤드폰과 마스크를 즐겨 쓴다. 오사카는 이날 자신의 우울증 사실을 밝히며 헤드폰과 마스크 역시 자신의 불안 증세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드리드=AP 뉴시스
1일 프랑스 오픈에서 기권을 선언한 오사카 나오미(일본)는 평소 헤드폰과 마스크를 즐겨 쓴다. 오사카는 이날 자신의 우울증 사실을 밝히며 헤드폰과 마스크 역시 자신의 불안 증세 때문이라고 밝혔다. 마드리드=AP 뉴시스
여자 테니스 인기 스타 오사카 나오미(24·일본)가 메이저대회인 프랑스오픈에서 기권했다. 인터뷰 거부로 징계를 받은 지 하루 만이다.

세계 랭킹 2위 오사카는 1일 자신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잠시 휴식기를 갖겠다”는 글을 올리며 프랑스오픈 2회전 기권을 선언했다. 1회전에서 파트리치아 마리아 치그(63위·루마니아)를 2-0으로 꺾은 오사카는 아나 보그단(102위·루마니아)과의 2회전을 앞두고 있었다. “내가 의도하거나 상상하지 못한 상황이 됐다. 다른 선수들이 테니스에 집중할 수 있도록, 또 내 정신 건강을 위해 기권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가 밝힌 기권 이유다.

오사카는 자신의 우울증 증세도 고백했다. 오사카는 “2018년 US오픈 이후 우울증 증세로 힘들었다. 저를 아시는 분들은 제가 내성적이라는 사실도 알고 있을 것”이라며 “프랑스오픈에 와서도 이런 느낌이 계속됐다”고 했다. 2018년 US오픈에서 처음 메이저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한 오사카는 2019년 호주오픈과 2020년 US오픈, 올해 호주오픈까지 4차례 메이저대회 단식 우승을 차지하는 맹활약을 펼쳤다. 오사카의 상징으로 여겨지던 헤드폰 역시 우울증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는 “모두가 대회에서 내가 헤드폰을 쓰고 있는 것을 봤을 것이다. 이것은 사회적 활동에 대한 불안함을 줄이기 위한 것”이라고 했다.

오사카는 앞서 1회전에서 승리한 뒤 공식 기자회견에 불참해 대회 조직위원회로부터 벌금 1600만 원의 징계를 받았다. 조직위는 “인터뷰 거부가 계속될 경우 최대 실격까지 가능한 징계가 내려질 수 있다”며 “더 많은 벌금과 향후 메이저대회까지 적용될 징계가 예상되는 만큼 미디어 관련 의무를 이행하기 바란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오사카는 “나는 많은 사람들 앞에서 말을 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다. 그래서 기자회견에서 늘 긴장감을 느꼈고, 최선의 답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었다”고 밝혔다.

오사카의 결정은 찬반 논란을 일으켰다. 전 세계 랭킹 1위 마르티나 나브라틸로바는 “선수와 대회, 테니스에 모두 슬픈 날”이라며 아쉬움을 드러냈다. 오사카는 지난해 역대 여자 선수 최고액인 약 610억 원을 벌었다. 이 가운데 미디어 노출에 따른 스폰서 수입이 80%를 차지하는 오사카가 선수 의무 사항인 경기 후 인터뷰를 거부하고 대회까지 포기한 것은 지나친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선수 보호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여론도 많다. 세리나 윌리엄스는 “나도 그런 경험을 했기 때문에 오사카를 이해할 수 있다. 그를 안아주고 싶다”고 말했다. 스테픈 커리(농구), 우샤인 볼트(육상) 등도 오사카의 용기 있는 결정을 존중한다는 의견을 밝혔다.

스포츠 스타들의 우울증 사례는 드물지 않다. 테니스 천재 소녀였던 마르티나 힝기스(41·스위스)는 메이저대회 5회 우승 등 최정상을 달렸다. 하지만 22세 때인 2003년 부상과 부진으로 인한 우울증 등으로 조기 은퇴를 선언한 뒤 다시 복귀했으나 2007년 윔블던에서 코카인 양성 반응을 보이며 다시 코트를 떠났다. 아이티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오사카의 언니 마리는 프로 테니스 선수를 하다 올해 3월 25세 나이로 은퇴를 선언하기도 했다.

정용철 서강대 교수(스포츠심리 전공)는 “오사카가 자신이 원하지 않는 기자회견을 거부한 것에 대해 징계를 준 주최 측의 대응도 오사카의 정신 건강에 악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이번 기회에 선수들이 원하지 않는 것을 강요하는 문화를 되돌아보면 좋겠다”고 했다.

김정훈 기자 hun@donga.com
#테니스#오사카 나오미#기권#우울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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