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도의 AI가 대체할 수 없을 만큼… 인간은 정말 특별할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8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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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만에 SF신작 ‘클라라와 태양’ 발표한 노벨문학상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 인터뷰
한국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 봉준호 감독 작품은 새롭고 신선
내책, 한국서 읽히는 건 신나는 일… 日, 식민통치 기억 묻어 전진못해

가즈오 이시구로는 새 장편 ‘클라라와 태양’에 대해 “주인공 클라라는 시각 정보를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입체파 그림 같은 이미지로 세상을 인식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 Lorna Ishiguro
가즈오 이시구로는 새 장편 ‘클라라와 태양’에 대해 “주인공 클라라는 시각 정보를 인간과 같은 방식으로 받아들이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입체파 그림 같은 이미지로 세상을 인식하는 모습을 상상했다”고 말했다. ⓒ Lorna Ishiguro

“나 같은 사람에게는 한국 영화가 매우 중요합니다.”

2017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일본계 영국 작가 가즈오 이시구로(67)는 7일 서면 인터뷰에서 “최근 15년간 세계가 흥미진진한 최첨단 한국 문화의 등장을 잘 인식하게 된 것 같다. 내 책이 미래지향적 문화가 만들어지는 한국에서 읽힌다는 건 매우 신나는 일”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이시구로는 노벨 문학상 수상 후 첫 작품인 ‘클라라와 태양’(민음사·사진)을 최근 펴냈다. ‘파묻힌 거인’을 선보인 후 6년 만이다. 신작은 ‘고도의 인공지능(AI)이 대체할 수 없는 인간 고유의 특별함이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한 공상과학(SF) 소설이다. 클라라와 태양은 ‘AF(Artificial Friend·인공 친구)’로 불리는 AI 로봇이 어린이들의 친구로 생산돼 팔리는 가까운 미래를 배경으로 한다. 인간의 감정과 소통 방식을 익히는 데 관심이 많은 AF 클라라가 소녀 조시를 만나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뤘다. 그는 “클라라는 과거나 편견에 짓눌려 있지 않은 세상에 갓 나온 아기 같은 존재”라며 “내 전작 중 어떤 인물도 이런 백지(白紙) 상태의 존재는 없었다”고 말했다.

클라라는 조시의 친구라는 자기 소임을 다하기 위해 헌신한다. 조시를 관찰한 정보를 취합해 그의 내면을 기민하게 포착하는가 하면, 조시가 맞닥뜨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위험한 선택도 마다하지 않는다. 그는 “이 소설은 세상에 희망과 선함이 존재한다는 믿음을 담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소설을 통해 우리가 인간의 특별함을 과대평가하는 건 아닐까라는 질문 역시 던지고 싶었다. 독자들은 책을 읽으며 답을 찾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시구로는 한국 문화에 깊은 관심을 나타냈다. 그는 “지난 10∼15년간 한국의 문화는 국제적으로 중요해졌다”며 “과거 한국은 삼성처럼 첨단 제품을 생산하는 곳으로 인식됐지만 지금은 케이팝 같은 흥미로운 문화의 근원지”라고 밝혔다. 특히 그는 봉준호 감독의 영화에 대해 “서양인 대부분이 한국을 현대적이고 젊은 나라로 보는 것 같다. 봉준호 감독 같은 사람들은 젊지 않지만 이들이 만드는 작품은 새롭고 신선하고 미래 지향적인 국제 문화로 간주된다”고 했다. 영화 ‘기생충’에 대해선 “미국 영국 등 우리 사회 안에는 큰 격차가 존재한다. 기생충은 한국 사회에 존재하는 큰 격차를 다뤘다. 바로 여기에 분열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는 감상 평을 내놓았다.

식민지배 등 국가와 집단의 기억과 망각에 대한 견해도 피력했다. 그는 노벨 문학상 수상 당시 “한 민족이나 공동체가 과거를 기억하는 방식에 관심이 있다”고 밝힌 바 있다. 이에 대해 그는 “영국과 일본이 과거 식민 통치와 관련한 역사와 기억을 묻었다. 이런 것들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앞으로 나아가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했다.

자유주의 가치에 대한 고민도 털어놓았다. 그는 “2016년 영국에서 유럽연합(EU) 탈퇴 국민투표가 이뤄졌고 미국에선 도널드 트럼프가 대통령에 당선됐다. 거대한 분열을 목도하면서 ‘자유세계’에 살며 점점 강화된 나의 가치관이 어쩌면 잘못됐을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그의 다음 질문은 무엇일까. “나는 AF의 탄생이 과학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해선 별로 신경 쓰지 않는다. 내가 묻는 건 이런 존재가 우리의 관계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이다. 우리가 인간이 무엇인지에 대해 다르게 생각한다면 서로에 대한 사랑과 다른 감정의 본질이 바뀌게 될까?”

전채은 기자 chan2@donga.com
#ai#인간#클라라와 태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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