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다운 꽃에 반드시 필요한 곤충[서광원의 자연과 삶]〈35〉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입력 2021-04-08 03:00수정 2021-04-08 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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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알 만한 사람은 다 안다. 꽃은 사실 식물들에게는 ‘성적인 도구’라는 걸 말이다. 움직일 수 없기에 벌과 나비 같은 곤충을 불러 ‘성스러운’ 의식을 대행하도록 하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실을 알게 된 건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200여 년 전쯤인 1793년, 독일의 아마추어 생물학자였던 크리스티안 슈프렝겔이 책을 한 권 펴냈다. ‘꽃의 구조와 수정에 관한 자연의 새로운 비밀’이라는 제목을 단 책은 곤충이 꽃의 성생활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 ‘새로운 비밀’이라고 했던 건 당시만 해도 꽃은 신의 섭리에 따라 스스로 수정(자가수분)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슈프렝겔은 당시 학술서에 쓰이던 라틴어 대신, 일반인들이 쉽게 접할 수 있도록 독일어로 쓰고 동판화까지 넣는 등 쉽고 재미있게 읽히도록 정성을 다했다. 반응이 어땠을까?

요즘 식으로 말하면 ‘폭망’ 그 자체였다. 그가 발견한 ‘새로운 비밀’이 사람들의 심기를 지극히 거슬렀기 때문이었다. 독일 과학저술가인 폴커 아르츠트는 그의 책 ‘식물은 똑똑하다’에 당시 사람들이 이렇게 생각했다고 썼다. “(세상에) 하필 곤충이라니! 아름답고 고귀한 꽃이 저 혐오스러운 벌레들에게 도움을 받는다고?”

전문가인 학자들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순결한 꽃이 식물의 생식기라는 사실을 마지못해 겨우 받아들인 상태였는데, 그런 아름다운 꽃이 보기도 싫은 곤충들에게 ‘성스러운 의식’을 맡긴다니 말도 안 되는 소리라고 치부해버렸다. 아니, 백번 양보해서 누군가 수정을 도와준다고 해도 “그런 곤충들이 제대로 일을 할 것 같지도 않았다”는 반응이었다. 심지어 당시 대문호로 존경받고 있던 괴테까지 분노에 가까운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학교 교장이긴 했지만 슈프렝겔이 아마추어라는 점도 한몫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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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주류사회는 한 번이라도 직접 관찰했다면 금방 알 수 있는 사실을 외면한 것도 모자라 조롱했고 없는 사람 취급까지 했다. 멋진 사무실과 연구실에 앉아 품위 있게 살면서 가지게 된 ‘당연히 그럴 것’이라는 생각과 ‘그럴 리 없다’는 신념으로 엄연한 사실을 짓눌러버렸다. 무려 70년이 지나서야 인정을 받았으니 그만큼 발전이 늦어졌던 셈이다.

생각이 사실을 이기고, 책상이 현장을 누르고, 힘 있는 사람들이 자신들이 알고 있는 것과 다르다는 이유로 새로움을 외면해서는 발전이 없다.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 이런 일은 지금도 어디선가 일어나고 있다. 사실을 보고 판단해야 하는데 사람을 보고, 전문가가 아니라는 이유로 무시하며, 지금까지 그렇게 생각해왔기에, 아니 내 생각이 틀릴 리 없기에 엄연하게 일어나고 있는 사실을 눈 밖으로 밀어내는 일 말이다.

서광원 인간자연생명력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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