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안함 재조사’ 역풍 맞자… 軍진상위, 회의 30분만에 “철회”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4월 3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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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인 위원 만장일치 ‘각하’ 결정… “진정인, 사고 목격 등 요건 해당 안돼”
작년 12월 재조사 개시 결정 번복… 유족회 “위원회 사과 성명 내야”
靑 “위원회 결정 과정 관여 안해”
軍, 작년 12월 ‘재조사’ 통보받고도 상부 보고 않고 실무자가 전결처리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2일 서울 중구 진상위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진상위는 이날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각하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2일 서울 중구 진상위 회의실에서 전체회의를 열고 있다. 진상위는 이날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재조사해 달라는 진정을 각하했다. 김재명 기자 base@donga.com
대통령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진상위)가 2일 천안함 피격 사건을 재조사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천안함 민군합동조사단(합조단) 위원으로 활동하면서 좌초설을 계속 제기한 신상철 씨의 진정을 지난해 12월 수용해 재조사 개시를 결정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자 이를 뒤집은 것이다.

진상위는 이날 보도자료에서 “2010년 3월 26일 발생한 천안함 진정 사건에 대해 위원회 전체회의 결과 7인 위원이 모두 참석해 만장일치로 ‘각하’ 결정했다”고 밝혔다. 각하 결정은 오전 11시 회의 개시 후 30분 만에 ‘속전속결’로 이뤄졌다. 이인람 위원장은 전날(1일) 전사자 유족 등을 면담한 뒤 “사안의 성격상 최대한 신속하게 각하할 수 있는지 등에 대해 결정할 예정”이라면서 긴급회의 개최를 예고한 바 있다.

진상위는 각하 이유에 대해 “진정인(신 씨)이 천안함 사고를 목격했거나 목격한 사람에게 그 사실을 직접 전해 들은 자에 해당한다고 볼 만한 사정이 보이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부터 1일까지 신 씨가 진정인 요건에 해당된다고 판단해 재조사를 결정했다는 입장을 고수하다가 돌연 번복한 경위에 대해 진상위 관계자는 “유족 면담 등의 결과를 두루 고려한 게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군 안팎에선 유족과 생존 장병의 반발, 비난 여론 확산 등 파장이 커지자 진상위가 ‘백기’를 든 걸로 보고 있다. 진상위의 재조사 결정을 접한 유족들은 즉각 철회와 사과를 요구했고, 전준영 천안함 생존자 예비역 전우회장은 소셜미디어에 “나라가 미쳤다. 몸에 휘발유 뿌리고 청와대 앞에서 죽고 싶은 심정”이라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인터넷에도 진상위와 정부를 비판하는 댓글이 줄을 이었다.

특히 군은 지난해 12월 진상위로부터 재조사 개시 결정문을 통보받고도 상부에 보고하지 않고 실무 선에서 전결 처리한 것으로 드러났다. 당시 진상위가 국방부 조사본부에 통보한 19건의 결정문에 천안함 재조사 건도 포함돼 있었는데 실무자가 제대로 살펴보지 않고 전결 처리했다는 것이다. 진상위의 재조사 결정에 대해 “타 기관 업무에 대해 언급하는 건 적절치 않다”며 소극적 태도로 일관하던 군이 어처구니없는 실수로 사안의 중대성을 간과하는 바람에 유족과 생존 장병에게 더 큰 상처를 주고 논란을 키웠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진상위가 논란이 불거진 지 이틀 만에 각하를 결정한 데 대해 4·7 재·보궐선거를 앞두고 이번 사태가 정치적 역풍으로 번지자 청와대가 진화에 나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온다. 청와대는 이날 브리핑에서 “위원회 결정 과정에는 청와대가 전혀 관여하지 않았다”면서도 “대통령은 지난달 26일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서 당시 장병들에게 위로와 함께 깊은 경의를 표했다. 이것이 대통령의 진심”이라고 했다. 이어 “문재인 대통령은 당시 함장 장병들에 대한 보답을 한시도 잊은 적이 없다”고 말했다.

이성우 천안함 46용사 유족회장은 “진정이 접수된 때부터 지난해 말 조사 개시를 결정하게 된 과정을 소상히 밝히고 위원회 차원에서 유가족과 생존 장병들에게 사과 성명을 발표하기를 바란다”고 말했다. 천안함 생존 병사 안재근 씨(30)는 “대통령이 ‘서해수호의 날’ 기념식에 참석해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는 생존 장병들을 돕겠다’고 말한 지 며칠 지나지 않아 위원회의 재조사 소식을 듣게 돼 배신감을 느꼈고 먼저 간 전우들에게 죄책감까지 들었다”고 말했다.

2015년 북한군의 목함지뢰 도발로 두 다리를 잃은 하재헌 예비역 중사도 2일 페이스북에 “천안함 재조사가 무슨 말이냐”며 “북한이 왜 그리도 좋냐”고 분노했다.

윤상호 군사전문기자 ysh1005@donga.com·박효목·조응형 기자
#천안함 재조사#철회#각하 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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