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스톡홀름의 밤[동아광장/김금희]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31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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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를 넘어 소통하던 현장에서 겪은 ‘차별’
누구나 폭력의 피해자, 목격자가 될 수 있기에
우리는 더 가까이 모여 혐오를 이겨내야 한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이태 전 예테보리 도서전 참석차 스웨덴에 방문했을 때의 일이다. 도서전 개막 전 스웨덴 한 문예지가 주최한 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스톡홀름에 잠시 머물렀다. 유럽권 독자들을 처음 만나는 터라 긴장과 기대를 가지고 행사장에 갔고 담당자들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북 콘서트가 시작되기를 기다렸다. 그날 행사는 두 명의 시인과 내가 각자의 작품을 낭독하는 자리였다. 작가들이 올라가 한국어로 읽으면 스웨덴 배우들이 발췌 부분을 다시 스웨덴어로 읽었다. 대기 시간이 지나 우리는 호명과 함께 무대로 올라갔다. 약간의 쑥스러운 웃음으로 관객과 첫 인사를 하고 박수로 화답을 받는 사이 나는 몸이 쿵, 하는 듯한 충격의 장면을 보게 되었다. 객석의 중간에 앉은 한 남녀가 손가락을 자기 양 눈가에 가져다대고 ‘찢는’ 행위를 해보였기 때문이었다. 그건 아시아인들에 대한 일종의 혐오의 제스처였다.

이제 막 행사를 시작한 터라 나는 우선 그 장면을 무시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우리 앞에는 한국 문학 낭독을 듣기 위해 모인 많은 청중이 있었기 때문이다. 시간도 늦은 저녁이었고 무료가 아닌 유료 행사였다. 행사 시작 전 낭독을 맡은 배우들이 한껏 부푼 얼굴로 오늘 밤 낭독할 수 있어 기쁘고 기대된다고 했기에 더더욱, 만석을 채운 스웨덴 청중들이 놀라울 정도로 집중해 우리의 시와 소설을 듣고 있었으므로 더더욱 이 ‘안전한’ 밤을 망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선배 시인들이 낭독하는 동안에도 나는 그 두 명에게서 눈을 뗄 수는 없었다. 그들이 인종주의자라는 사실은 그 홀의 누구도 알지 못하고 무대에 서서 목격한 나만 알고 있으니까.

최근 일련의 아시안 혐오 범죄를 보면서 나는 그날의 스톡홀름을 떠올렸다. 그해 스웨덴에서 느낀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과 열기는 작가로서의 내 삶에 활기가 되었지만 그 환대의 기억은 늘 두 명의 인종주의자들의 제스처와 함께 시작되기 때문이다. 나는 행사요원과 주최 측이라는 안전장치 속에서도 그들이 보여준 적대에 공포를 느꼈다. 그들이 길을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것이 아니라 자신들의 적의와 혐오를 보여주기 위해 자기 돈까지 지불하고 직접 그곳을 찾아왔다는 사실이 공포와는 또 다른 ‘훼손’을 남기기도 했다. 그곳은 인간의 고독과 슬픔, 상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찾아나가는 평화와 미래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였고 무대에 선 작가들은 그 메시지의 전달자였기 때문이다.

다행히 행사는 무사히 끝났고 나도 긴장에서 좀 풀려났다. 나는 내 작품을 읽은 배우에게 스웨덴 청중들이 와르르 웃었던 대목이 어디인지를 물었다. 그렇게 감정을 표현하게 했다는 것은 내 소설이 상대에게 가닿아 마음을 움직였다는 의미이기 때문이었다. 그때의 소설은 인간으로부터 상처받고 고양이들과만 살기로 결심한 한 인물이 외톨이 아이를 만나 서서히 고립에서 벗어난다는 내용이었다. 배우는 한 대목을 짚어주며 감동적인 밤이었다고 내 손을 잡았다. 그리고 한국에서 일고 있는 미투 운동에 대해 들었다며 스웨덴에서 노벨 문학상을 취소한 일을 이야기했다. 한국도 스웨덴도 같다고. 그 같다는 말과 짧은 악수가 아니었다면 나는 그날 밤을 훨씬 더 나쁜 쪽으로 기억했을 것이다.

아직도 눈에 선한 그 인종 차별의 제스처가 떠오를 때면 나는 그날 밤 그들은 무엇을 가져가고 우리는 무엇을 가져갔을까 분별하기 위해 애쓴다. 그날 우리는 이질적인 언어가 불러일으키는 언어적 아름다움에 귀 기울이며 지적 자극을 누릴 줄 아는 사람들이었다. 서로 다른 대륙에서 살아온 이들이기에 시와 소설로 주고받는 우리의 이 대화가 더 특별하며 삶을 평화롭게 만든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이었다. 그래서 그날 밤 우리는 같은 자리에 머물며 서로를 존중하고 포용하는 인간이기를 택했고, 그들은 양 눈을 찢는 혐오의 제스처로 그 밤의 연대에서 스스로를 열외시킨 채 돌아가기를 선택했다. 앞으로 우리에게는 어떤 날의 밤을 원하는 사람들이 늘어날까.

나라 안팎으로 들리는 불행한 소식들이 쌓여가는 지금, 나는 종종 그날의 스톡홀름에 서게 된다. 실제 스톡홀름의 밤이 그랬던 것처럼 다수의 사람들이 함께 있다고 생각하면 두려움은 줄고 안전하리라는 생각이 들고, 만약 곁에 아무도 없다고 생각하면 더한 공포를 상상하게 된다. 누구나 무대에 선 채 느닷없는 피해자가 될 수 있는 일, 누구나 객석에 서서 그 폭력의 목격자가 될 수 있는 일. 우리가 더 가까이 모여 혐오 문제에 대해 이야기하고 행동에 나서야 하는 이유다.

김금희 객원논설위원·소설가



#스톡홀름#밤#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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