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을 바라보는 사회의 시선에 대한 질문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3월 10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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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불 작가 개인전 ‘이불-시작’
관습적 가치에 질문 던져온 작가
5월 16일까지 서울시립미술관서 조소-퍼포먼스 등 초기작 선보여

1996년 일본 도쿄 스파이럴 와코루 아트센터에 설치됐던 이불 작가의 ‘I Need You(모뉴먼트)’. 이번 전시에도 관람객이 펌프로 바람을 넣는 작품 ‘히드라’가 배치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1996년 일본 도쿄 스파이럴 와코루 아트센터에 설치됐던 이불 작가의 ‘I Need You(모뉴먼트)’. 이번 전시에도 관람객이 펌프로 바람을 넣는 작품 ‘히드라’가 배치됐다. 서울시립미술관 제공
“가시나이, 각시, 간나이, 겨집애, 규수, 낭자, 누이, 딸내미, 아가씨, 아주머니, 어미, 언니, 처녀, 할망….”

5월 16일까지 서울 중구 서울시립미술관에서 열리는 이불 작가(57)의 개인전 ‘이불-시작’ 3전시실에 자리한 누비이불 작품 ‘제목 없음’(1994년)에 적힌 단어들이다. 가로 1m, 세로 2m 크기의 직물 위에 실크스크린으로 여성의 정면 나신 이미지를 찍은 후 ‘여성’을 지칭하는 수십 가지 단어를 재봉틀로 몸 곳곳에 박아놓았다. 높임말로 여기기는 어려운 단어들이 허벅지, 무릎, 발등까지 빼곡하게 바늘로 찔러 씌었다.

권진 학예연구사는 “이 작가는 여성에 대한 우리 사회의 오랜 관습적 인식과 이미지에 대한 비판적 질문을 다양한 방식으로 던져 왔다”고 말했다. 이번 전시는 한국을 대표하는 전위예술가인 이 작가가 1980년대 홍익대 조소과 재학 시절부터 1990년대 후반까지 어떤 재료, 방법, 무대를 동원해 고착된 관념을 흔들어 왔는지 보여준다.

첫 전시실에는 전통적 조소 제작법에 의문을 가졌던 젊은 이불이 초창기에 선보인 ‘소프트 조각’ 3점을 배치했다. 손발 등 신체 일부와 장기(臟器)가 뒤얽힌 형태로 제작한 직물주머니에 솜을 채워 넣은 말랑말랑한 조형물. 이 작가는 1988년 개인전에서 처음 소개한 이 작품을 몸에 착용하고 괴물처럼 신음하며 움직이는 퍼포먼스를 같은 해 전남 장흥과 경기 과천 국립현대미술관에서 선보였다.

840m² 면적의 2전시실에는 가로 6m, 세로 4m의 대형 스크린 12개를 양 벽면에 늘어세우고 주요 퍼포먼스 기록 영상을 틀어놓았다. 1990년 김포공항에서 시작해 일본 각지를 오가며 12일간 진행한 퍼포먼스 ‘수난유감-내가 이 세상에 소풍 나온 강아지 새끼인 줄 아느냐?’ 영상에는 소프트 조각을 입고 지하철역, 공원, 도쿄대에 출현한 작가를 바라보는 행인들의 아연실색한 표정이 담겨 있다. 작가의 요청에 따라 유광 타일을 씌운 전시실 바닥에 영상이 난반사된다.

출입구 앞 로비에 설치된 ‘히드라’는 지나는 관람객들이 여러 개의 펌프를 밟아 커다란 풍선에 바람을 불어넣도록 한 작품이다. 4만 회 이상 밟아야 완성된다. 바람을 다 집어넣은 형태가 무엇인지는 공개되지 않았다.

영상 중 하나인 ‘낙태’(1989년)는 로프에 묶여 공중에 매달린 작가의 비명을 듣다 못한 관객들에 의해 중단됐던 퍼포먼스다. 2전시실 앞뒤 벽에 설치해 관람객에게 바람을 보내는 선풍기 개수는 ‘번뇌’라는 단어와 연결되는 108개다. 권 연구사는 “의도한 게 아니다. 설치하다 보니 우연히 그 수가 됐다”고 말했다.

손택균 기자 sohn@donga.com
#이불 작가#개인전#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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