X세대 IT 창업자들 ‘은둔의 경영자’ 벗어나 재계 ‘인싸’로

곽도영 기자 , 신동진 기자 입력 2021-03-02 03:00수정 2021-03-02 1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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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상의 신임 부회장 7명중 4명… 이례적 스타트업 창업자 포진
수십조 기업가치 일군 프런티어들… ‘선한 영향력’ 새 가치관 무장
김범수-김봉진 등 기부에도 앞장… “기존 대기업과 소통하며 새 문화”
지난달 23일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제24대 서울상의 회장에 오르던 날, 세간의 관심은 첫 4대 그룹 총수로 상의 회장에 오른 최 회장뿐만 아니라 상의 역사상 처음으로 부회장단에 줄줄이 합류한 정보기술(IT) 창업자들에게도 쏠렸다.

서울상의 새 부회장 7명 중 4명이 김범수 카카오 의장(55),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54), 장병규 크래프톤 의장(48), 이한주 베스핀글로벌 대표(49) 등 스타트업 창업자다. 이는 ‘X세대’ IT 창업자들이 재계 주류로 부상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장면으로 꼽힌다.

IT 창업자 그룹은 ‘사업보국’을 내세워 대한민국 산업화에 앞장선 재계 1세대 창업주들처럼 ‘통 큰 기부’ ‘선한 영향력’ 등 새로운 세대의 가치와 기업관을 제시하고 있다. 이한주 대표는 “스타트업을 통해 조 단위의 재산을 모으는 등 부의 창출 규모가 달라졌다. 재계 서열만 보더라도 더 이상 변두리에 있는 기업이 아니다. 자신이 일군 부에 대해 비교적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는 창업자들이 적극적으로 미래 세대에 기여하고 사회적 소통에 적극 참여하게 된 것”이라고 풀이했다.

IT 창업자들은 사회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위한 투자와 비전 제시에 적극적이다. 10조 원이 넘는 자산 중 절반을 기부하겠다고 발표한 김범수 의장은 지난달 말 기부 아이디어를 모으기 위한 온라인 직원 간담회를 열었다. 김 의장은 “자본주의의 불완전한 상태를 해소해 나갈 책임감을 느낀다”며 기술과 교육을 통해 미래를 바꿀 인재를 키워내겠다는 자신의 생각을 드러냈다. 그는 “(재단을 만들고 기부하는)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창업자를 보고 ‘기업가가 저렇게 갈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됐다. 이런 문화가 형성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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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의장과 마찬가지로 재산 절반 기부를 밝힌 김봉진 우아한형제들 의장은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의 기사를 보면서 만약 성공한다면 기부 선언을 하고 싶다고 막연하게 꿈꿔 왔다. 이 꿈이 세상을 변화시키고자 도전하는 수많은 창업자들의 꿈이 된다면 더없이 기쁠 것 같다”고 밝혔다. 김범수 의장과 김봉진 의장은 자신들의 계획을 함께 논의해 온 것으로 전해진다.

승계에 대해서도 한국 기업계에 실리콘밸리식 모델을 뿌리내리겠다는 의지가 강하다. 김정주 NXC 회장(53)의 회고록 ‘플레이’에는 “마지막에 꼭 하고 싶은 일은 못 하고 누군가에게 회사를 넘겨줘야 우리도 살고 회사도 산다. 그땐 좀 건실한 친구한테 잘 주고 가자”고 다짐하는 대목이 나온다. 김범수 의장도 “우리처럼 자녀한테 기업을 물려줄 의향도 별로 없는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역할”이라고 강조한다.

한때 은둔의 경영자로 불리기도 했던 IT 창업자들이 재계의 인사이더로 등장한 것은 한국 산업계의 구조 변화와 관계가 깊다. 비약적 성장을 이뤄 수십조 원의 기업 가치를 인정받았다. 성공한 창업자의 수도 늘었다. 디지털 전환 혁신이 시급한 기존 대기업이 적극적으로 손을 내밀며 협업의 주도권도 확보했다.

인터넷 시대 네이버(1999년), 카카오(1995년), 넥슨(1994년) 창업에 이어 모바일 시대 우아한형제들(2011년), 크래프톤(2007년) 등의 창업이 뒤를 이었다. 지난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언택트 시장이 성장하면서 이들 기업의 몸값이 높아졌다. IT 기업의 사업 모델이 사람들의 삶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사회적 민감도와 영향력을 키웠다. 플랫폼 사업 모델 등으로 한편에선 갈등의 수위도 높아져 사회적 책임도 함께 커졌다. 동시에 디지털 혁신으로 위협을 받는 기존 대기업이 업을 바꾸려 안간힘을 쓰면서 최근 재계 3, 4세와 IT 창업자 그룹이 공식, 비공식적으로 경영전략을 논의하는 자리가 늘고 있다.

한 대기업 관계자는 “기존 재계 3, 4세대도 최근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고려해야 할 이유와 대상이 너무 많아 적극적으로 나서기 쉽지 않다”며 “큰 부를 창출하고 산업의 구조를 바꾼 IT 창업자들이 한국 사회에 비전을 제시하고, 기존 재계와 소통하며 새로운 문화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곽도영 now@donga.com기자페이지 바로가기>·신동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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