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의 향기]“사람 간 전염 안 된다”는 말이 비극을 불렀다

  • 동아일보
  • 입력 2021년 1월 2일 03시 00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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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한일기/팡팡 지음·조유리 옮김/444쪽·1만6500원·문학동네
◇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박현 지음/400쪽·1만6000원·부크럼

우한일기의 저자 팡팡은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스스로의 적 혹은 공범자”라며 “우리는
2003년(사스가 발생한 해)을 지나왔지만, 금세 그 일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
쫓아와 우리를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우한일기의 저자 팡팡은 “적은 바이러스뿐만이 아니다. 우리들 역시 스스로의 적 혹은 공범자”라며 “우리는 2003년(사스가 발생한 해)을 지나왔지만, 금세 그 일을 잊어버렸다. 우리가 경계하지 않으면 그것은 다시 쫓아와 우리를 고통스럽게 잠에서 깨울 것”이라고 강조했다. 문학동네 제공

1년 가까이 계속된 팬데믹은 일상의 모든 걸 바꿨다. 이쯤 되면 익숙해질 법도 한데 우린 이 질긴 싸움이 여전히 낯설다. 더구나 바이러스의 정체를 거의 파악하지 못했던 초창기, 각국 정부 사회 개인은 바이러스와 맞닥뜨린 모든 상황을 알아서 해결하고 생존해야만 했다. 혼돈스러운 당시 실상을 보여준 에세이 두 권이 출간됐다. 각각 중국과 한국에서 미지의 바이러스와 싸우던 우리의 서툰 모습이 담겼다. 싸움은 지금도 진행 중이기에 이 거친 기록들은 더없이 소중하다.

“人不傳人 可控可防(사람 간에는 전염되지 않으며, 막을 수 있고 통제 가능하다).”


전염병의 그림자가 스멀스멀 퍼지던 2019년 12월 중국의 우한, 이 여덟 개의 글자가 당국 지침으로 내려졌다. 의문의 폐렴 환자가 속출하던 중에도 당국은 대중을 안심시키려는 의도인지, 뭔가 은폐하려는 의도인지 이 입장을 한동안 고수했다. 하지만 당시 우한에 머물며 사태를 지켜본 중국 작가 팡팡(方方·65·사진)은 “이 여덟 글자가 도시를 피와 눈물로 적셨다”고 털어놓는다.

세계로부터 철저하게 고립됐던 중국 우한의 참상을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기록한 팡팡 작가의 일기가 출간됐다. 공장 노동자 출신인 저자는 하층민의 삶을 생생하게 그리며 중국 신사실주의 대표작가로 불리던 인물. 1월 말 그가 거주하던 우한이 봉쇄되자 SNS에 도시에 펼쳐진 풍경을 신랄하게 적기 시작했다.


국수주의적 중국인 누리꾼의 비난과 정부 검열은 그가 감내할 몫이었다. “이 비극은 인재(人災)”라며 치부를 세계에 알리는 그가 곱게 비칠 리 없었다. ‘매국노’ ‘반역자’라는 오명이 붙었지만 그를 응원하는 이들은 그를 ‘중국의 산소호흡기’라 불렀다. 그를 지지한 중국 지식인은 정부 조사를 받고, 그의 SNS 계정이 차단·삭제 당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는 3월 24일까지 봉쇄 62일 차의 기록을 이어갔다.

정부 대응에 대한 비판보다 더 눈길을 끄는 건 공포감과 고통에 휩싸인 시민들의 모습이다. 마스크가 없어 사용한 마스크를 빨아 다리미로 다려 쓰고, 혼자 남겨진 아이는 굶어 죽었다. 비닐에 싸인 시신들이 매일 트럭에 실렸고 아무도 없는 새벽 거리에는 울음소리만이 가득했다. 병상이 부족하자 암 환자인 딸을 우한 밖으로 내보내 달라고 한 어머니의 절규도 눈물을 적시게 한다. 한국에서 ‘우한’은 곧 ‘폐렴’ ‘감염병의 온상’이라는 원망스럽고 혐오적 시각이 가득한 곳. 하지만 그곳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있었음을 일깨운다.


‘부산 47번’ 확진자로 알려진 박현 부산대 기계공학과 겸임교수(48)는 확진 이후 230일간의 기록을 남겼다. 그가 ‘부산47’이라는 SNS 페이지를 통해 세상에 꺼내 놓은 투병기와 후유증 극복기는 환자, 시민들에게 큰 울림과 용기를 줬다.

저자는 방역에 밀려 놓치고 있는 환자의 후유증 관리에 대해 깊게 논하며 방역 당국을 질타한다. 바이러스를 이겨낸 뒤에도 여전히 호흡곤란, 두통, 불면증으로 신음한 그는 누구도 알려주지 않았던 외신 보도, 해외 연구 결과를 직접 찾아 적었다. 그는 “체계적인 후유증 치료를 미뤄 만성질환 환자가 되게 하는 실수를 저지르지 말아야 한다”며 “코로나19에 정말 완치가 있는지” 되묻는다. 매일 수십 번씩 오가는 그의 육체적, 정신적 질곡에도 그는 끝내 희망을 얘기한다.

김기윤 기자 pep@donga.com
#우한일기#삶이 있는 한 희망은 있다#팡팡#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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